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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1 (금)

‘만남·결혼 주선’ 맛들린 지자체들…여성 참가자 없어서 ‘공무원 차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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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서 최소 54회 행사 ‘붐’

‘나는 솔로’ 등 예능 인기에

저출생 탈출 등 명분 내세워

연간 수억씩 예산 들여 행사

“매칭률 40%, 커플 8쌍 탄생”

지자체의 과시성 홍보 뒤엔

공무원 차출·여성만 모집 등

기형·강제적 운영 등 폐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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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가 지난 7월 4박5일 일정으로 진행한 미혼남녀 만남주선 행사 참가자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경상북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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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랑나랑 두근대구’ ‘하늘이 무너져도 내 짝은 있다’ ‘오늘은 썸데이’…. 전국 지방자치단체들이 경쟁적으로 지역 내 ‘중매쟁이’를 자처하고 나섰다.

미국 코미디언 아지즈 안사리와 사회학자 에릭 클라이넨버그는 책 <모던 로맨스>에서 “국가가 싱글들의 만남에 돈을 대주거나 젊은이들이 얼큰하게 취할 수 있게 도와주는 나라는 일본 외에 어디에도 없다”고 했지만 바로 옆 한국에서도 연간 수천만~수억원의 예산을 들인 지자체 주도의 만남주선 행사가 열린다.

29일 전국 17개 광역·226개 기초자치단체에 정보공개청구로 입수한 사업계획서·결과보고서와 이연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받은 ‘미혼남녀 결혼 행사 건수’를 보면 올해 만남 주선에 관여한 지자체는 최소 54곳이다. 지자체의 만남 주선은 유행처럼 번지며 2019년 48곳에서 행사가 열렸다가, 이듬해 코로나19 확산으로 일부 지자체만 비대면으로 진행했다. 이후 회복세를 보여 현재까지 만남 주선 행사를 최소 1번 이상 개최했거나 개최를 시도한 지자체는 100곳에 가깝다.

<나는 솔로> <환승 연애> 등 연애 예능의 인기, 저출생 심화 등이 영향을 미쳤다. 경남 창원시, 전북 군산시, 충북 단양군 등은 중단했던 만남 행사를 올해 다시 시작했다.

지자체들이 추진하는 만남 주선 행사는 만남, 결혼, 출생을 유도하는 저출생 정책의 일환으로 실시되고 있다. 그러나 지역 내 젊은 여성 인구 비율이 낮아 행사 인원 모집조차 쉽지 않고, 공무원·대기업 등으로 참여 대상을 제한하는 곳도 있어 결혼의 계급화 현상을 부추긴다는 평가도 있다. 결국 여성의 설 자리가 좁은 지역사회, 출산을 기피하는 근본 원인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지자체의 중매 성공률을 높이기 어려울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지자체 만남 주선 행사는 남녀 수십명이 모이는 단체 미팅 형태로 하루 혹은 1박2일 동안 진행한다. 레크리에이션, 와인 파티나 요리 수업 등을 겸한다. 최근엔 연애 예능 프로그램처럼 일주일~한 달간 합숙 행사를 하기도 한다.

행사는 용역업체가 맡는다.‘건전한 만남 기회’(경북 울진군) ‘진정한 만남 기회 제공’(전남 영암군) ‘결혼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 제고’(경남 진주시) ‘만남의 안전한 창구 마련’(경남 김해시)을 내걸며 ‘남녀의 만남→결혼→출생’을 목표로 한다. 주로 지자체 출산보육과, 여성가족과, 청년정책팀, 인구정책팀이나 보건소가 행사를 총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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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나주시에서 추진한 미혼남녀 만남주선 행사인 ‘솔로엔딩, 해피엔딩’ 세부일정 내역. 나주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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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참가자가 없다

행사가 끝나면 지자체들은 앞다퉈 ‘매칭률 40%’ ‘커플 8쌍 탄생’처럼 성과가 담긴 보도자료를 내놓는다. 만남 주선 행사가 성황리에 끝나는 것 같지만 내막은 조금 다르다. 여성 참가자를 모으려 지자체는 개인정보 수집과 일대일 홍보, 공무원 강제 차출을 마다하지 않았다. 행사의 매칭률도 수시로 부풀렸다.

지자체의 만남 주선이 예능 프로그램과 달리 난항을 겪는 가장 큰 이유는 여성 참가자를 찾기 어렵다는 점이다. 단양군이 지난해 12월 경찰서·소방서·교육지원청에 수요조사를 해보니 예상 남성 지원자 18명, 여성 지원자는 2명이었다. 경북 김해시가 지난해 추진한 ‘나는 김해솔로’ 2기 신청자도 남성(120명)이 여성(32명)보다 3.8배 많았다. 전남 화순군은 지난해 6월 ‘커플매칭 화순사랑 더하기’ 공고를 냈다가 여성 참가자를 모집하지 못해 행사를 취소했다.

사업을 중단한 지자체들은 ‘성비불균형-여성 신청자 수가 적음’(충북 진천군), ‘상대적으로 여성의 참여율이 저조해 행사 진행을 못하게 됨’(제주 서귀포시), ‘미혼여성 참가인원 미달’(경남 함안군), ‘여성 참여자 신청인원 부족’(경기 가평군), ‘지역여건상 여성 참가자 모집이 어렵고 목적에 따른 효과가 매우 미흡’(경남 통영시) 등의 답변을 내놨다.

지자체는 여성 참가자 모집에 몰두한다. 올해 4월 전남 광양시는 ‘광양 솔로엔딩’ 참가자를 재모집하며 ‘여성 20명’이 더 필요하다고 했다. 경북 예천군은 올해 ‘1박2일 청춘공감 심쿵야행’을 추진하면서 운영계획서에 ‘여성참여자 위주 참여 유도’라고 적었다.

경남 김해시는 올해 내부계획에서 “여성 근무자 비율이 많은 어린이집, 호텔, 백화점 등에 ‘찾아가는 홍보 활동’을 하겠다고 했다. 올해 만남 주선 행사에 1억5000만원을 편성한 경북은 여성 참가자격을 지난해 ‘경북 또는 대구’에서 올해 ‘전국’으로 확대했다.

그래도 여성 참가자가 모이지 않으면 관내 공무원 차출로 이어진다. 2022년 해남군 보건소가 작성한 ‘땅끝 솔로탈출 여행 행사 결과 보고’ 문서를 보면 ‘여성 참가자 신청 저조(자발적 신청 1)’라고 쓰여 있다. 당시 여성 참가자는 15명이었는데 14명은 사실상 반강제로 참가한 것으로 보인다. 14명 중 8명은 행사 담당인 보건소 여성 직원이었다. 해남군은 2019년 행사 때에도 여성 참가자 16명 중 ‘자발적 신청자는 1명뿐’이라며 ‘행사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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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해남군 소속 보건소에서 작성한 ‘제7회 땅끝 솔로마을 여행 행사 결과 보고’ 문서. | 해남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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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없다

지난 7월 경북의 한 지방자치단체가 지역 명소 카페에서 진행한 미혼남녀 만남 주선 행사, 30대 남성 참가자 김서준씨(35·가명)는 맞은편 여성에게 “근무하는 데서 나가라고 해서 나온 거죠?”라고 따져 물었다. 여성은 “저 그런 거 아닌데…”라며 말끝을 흐리며 부인했다. 남성들은 의구심이 풀리지 않은 눈치였다.

발단은 여성 참가자 나이였다. 당시 행사는 28세부터 신청 가능했는데, 20대 중반의 여성이 참여한 것이 영 의심스러웠던 것이다. 김씨는 “지난해 행사에서 차출된 여성 공무원들이 대거 발견돼 남성 참가자들이 항의를 했다고 들었다”며 “억지로 나온 여성 지원자와 커플로 성사돼도 실제 만남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적으니 미리 확인하려 한 것”이라고 했다.

억지로 여성 지원자 수를 맞추더라도 끝이 아니다. 좁은 지역에서 연애와 만남이 회자될 때 수군거림의 대상이 주로 여성이 되는 점이나 지역의 가부장적 문화를 고려하는 지자체 노력은 눈에 띄지 않았다. ‘여성 참가자들은 나이가 어려 덜 적극적’(전남 고흥군)이라고 분석하거나 ‘접수 연령 조정 검토’나 ‘좁은 지역 내 보수적 성향으로 여성들이 참여를 꺼려 모집 범위를 거제·고성으로 넓혔다’(통영시)는 수준의 대안을 제시하는 데 그쳤다. 전남의 한 20대 여성 공무원은 “지자체에선 여성들이 왜 참여를 안 하는지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선 덜 고민한다”고 했다.

오히려 지역에선 비자발적으로 행사에 등록한 여성 참가자를 탓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2020년을 끝으로 사업을 종료한 충남 태안군은 내부 문서에 사업 중단 이유를 ‘여성 참가자의 소극적인 태도’로 들었다. “여성 참가자 대부분은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한 참여로 매년 참여 실적이 저조할 뿐 아니라, 행사 진행 시에도 소극적인 태도 및 형식적인 참가 등으로 남성 참가자들로부터 의욕 저하와 불만을 야기했다”는 것이다.

여론조사업체 한국리서치가 지난해 6월 진행한 ‘2023 결혼인식조사’ 결과를 보면, 만남 주선 행사의 필요성을 묻는 말에 18~29세 여성은 18%만 ‘필요하다’고 답했다. 같은 나이대 남성의 2명 중 1명(51%)이 ‘필요하다’고 답한 것과 차이가 크다.

최근 10년 사이 20~30대 여성들이 지역을 떠나며 행사에 참여 가능한 여성은 더 줄어들었다. 2015~2016년을 기점으로 20~30대 여성은 남성보다 더 가파르게 감소했다. 동남권에서 수도권으로 이동한 20~34세 여성의 순이동자 수는 2015년 4819명에서 2020년 1만2816명까지 늘었다. 지난해 여성 1명당 남성 비율을 나타내는 성비를 20대 기준으로 보면 경북(1.33), 울산(1.31), 강원·경남(1.28) 순이었다.

여성들이 지역을 떠나 수도권으로 향하는 가장 큰 이유는 취업 기회 때문이다. ‘특정 산업이 지배하고 있는 지역에서의 불균등한 성별 분업 구조가 만들어 내는 가부장제’를 뜻하는 ‘산업 가부장제’(양승훈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최근 20~30대 여성들이 지역을 떠나는 이유를 대표적으로 설명해주는 용어다. 특히 제조업 중심지일수록 여성에겐 공무원, 은행 등을 제외하면 양질의 일자리가 없어 ‘경력 봉쇄’ 도시가 된다. 여성이 일할 만한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한데, 지자체는 지역에 몇 안 되는 안정된 직장 근무자 위주로 행사를 운영하다 보니 청년층 여성을 찾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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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경상북도에서 진행한 미혼남녀 만남주선 사업의 참석자 직업. 경상북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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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만의 잔치? 만남기회 부족?

지자체 만남 주선은 주로 지역 공무원이나 대기업 사원 등 일부 직업군을 대상으로 한 ‘그들만의 잔치’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다. 각 지자체는 신분이 검증된 이들을 찾아야 하고, 결혼 상대로서 서로 선호하는 직업이라는 이유를 댄다.

고흥군에선 지난해 행사 참가자 45명 중 공무원이 29명이었다. 전남 광양군에서 취업 준비를 하는 안미영씨(28·가명)는 “만남주선 기획 자체는 좋다고 본다”면서도 “(행사에) 신청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본인이 ‘어느 정도 기준에 충족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했다.

남녀 불문하고 지역에서 공무원, 공공기관이나 대기업 재직자 중심으로 운영되는 만남 주선 행사에 소외감을 느끼는 이들이 적지 않다. 대구에서 도매업을 하는 강영준씨(36·가명)는 “벌이가 나쁘진 않지만 행사에선 아마 안정적인 직업을 가진 분들을 선호해, 저는 병풍만 될 것 같아 신청하지 않았다”고 했다. 부동산중개업을 하는 강씨의 지인도 “부모의 권유가 있었지만 직업이 신경 쓰여 나가지 않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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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지역에서 ‘만남의 기회가 수도권보다 훨씬 적다’며 만남 주선 행사를 옹호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세종시, 원주시처럼 20~30대 여성이 많은 정부기관 밀집 지역은 상대적으로 행사 선호도가 높은 편이다. 꼭 연애와 결혼이 아니더라도 지역에서 청년들 간 네트워킹을 할 수 있는 드문 기회라는 시각도 있다.

지자체 만남주선을 통해 결혼까지 이어진 사례도 발견된다. 강원 경찰공무원은 정지훈씨(31·가명)는 2022년 5월 원주시에서 열린 만남주선 행사에서 배우자를 만났다. 서로를 마음에 드는 1순위로 적어내 만남을 시작했고 올가을 결혼식을 치렀다. 정씨는 “만남의 기회가 적은 지역에서 행사가 조금 더 확대됐으면 한다”면서도 “신분조회 등 개인정보 문제 때문에 참여 대상자 범위를 늘리는 것은 쉽지 않아 보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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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손쉬운 사업

과도한 개인정보 확인은 만남 주선 행사 추진 과정에서 발생하는 논란 중 하나다. 한 지자체는 올해 초 명단을 돌려 소속 공무원들의 혼인 여부를 과별로 조사했다. ‘저출생과의 전쟁’을 선포한 경북은 올해 경북소방본부 직원의 38.2%가 미혼이라는 조사 결과를 냈다. 경북 칠곡군은 행사 추진을 하면서 ‘싱글탈출 회원 가입 후 체계적 관리’를 목표로 했다.

결혼까지 성공한 사례가 많다고 보기도 어렵다. 경남 진주시는 2011년부터 18회 행사에 852명이 참가했는데 이 중 12커플이 결혼을 했다. 결혼 성사율로 보면 2.8%에 불과하다. 전북 군산시는 2020년 “결혼 성사율이 0%”라며 사업을 접었다.

사업을 중지한 지자체는 만남→결혼→출생으로 이어지는 정책 목표 달성이 쉽지 않다고 판단한다. 강원 홍천군·동해시, 경남 함양군, 전북 정읍시, 충북 옥천군 등은 “사업 실효성, 효과성 부족”을 이유로 사업을 중단했다고 밝혔다.

‘근본적인 저출생 대책이 아니다’라는 여론에도 만남 주선 행사가 지속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자체 공무원들은 ‘옆 지자체가 하기 때문에’ ‘지자체장이 원해서’ 등으로 답했는데, 결국 만남 주선 행사가 ‘손쉬운 사업’이라는 결론으로 모아진다.

지자체와 계약을 맺은 용역업체의 손을 거치면 행사는 ‘매칭률 40%’의 성공적 사업으로 그럴싸하게 포장된다. 일부 용역업체는 높은 매칭률로 광역 단위 만남 주선 사업을 독식한다. 공무원과 용역업체 모두 이득을 본다.

높은 매칭률은 허수에 가까울 가능성이 크다. 사회자는 남녀에게 각각 1~3순위를 써내게 한다. 서로를 3순위로 써낸 이들도 ‘커플’이 된다. 행사 참여 경험이 있는 유성준씨(32·가명)는 “서로 원치 않는 매칭이 될 수 있어 3순위까지 쓰기 싫었지만 사회자가 반강제로 쓰도록 했다”고 했다. 유씨는 “행사 참여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저출생 극복을 위한 정책으로 만남 주선 사업을 1순위로 꼽는 참가자가 많은 이유도 사회자의 부탁 때문”이라고 했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긍정적인 인식 변화도 확인된다. 만남을 내세우기보다 지역 청년들의 소통을 촉진하는 데 힘쓰는 지자체들이 늘고 있다. 한때 만남 주선 행사를 운영했던 지자체가 ‘저출생 현상의 근본 원인을 고민하고 있다’고 밝힌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이들은 ‘저출생은 만남의 부족 때문이 아니라 직업, 주거 등 복합적인 문제’(경남도), ‘만남 주선보다 경제적 부담 경감과 보육 인프라 지원으로 저출생 시책 주력’(부산 금정구) 등의 의견을 밝혔다.


☞ 서울시 다시 미혼남녀 소개팅, ‘서울팅’의 기출 변형?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410300600001


김원진 기자 onejin@kyunghyang.com, 고희진 기자 gojin@kyunghyang.com, 탁지영 기자 g0g0@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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