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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0 (수)

‘오너 리더십’의 한계, 삼성만 문제인가? [아침햇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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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당시 부회장)이 2010년 이건희 선대회장, 이부진 호텔 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과 함께 CES2010 행사장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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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정수 |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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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후 10년 내 삼성을 대표하는 사업과 제품은 대부분 사라질 수 있다.”



2010년 이건희 선대회장이 경영복귀를 하며 던진 경고다. 그로부터 14년이 흐른 2024년 10월. ‘삼성전자 위기론’이 본격화하고 있다. 전영현 반도체 담당 부회장이 예상을 밑돈 3분기 실적에 대해 사과문을 낸 뒤 위기 진단과 처방 기사가 하루도 쉰 날이 없을 정도로 쏟아진다. ‘일등주의’와 ‘도전정신’을 잊은 직원들, 경직되고 관료화된 조직 등… 모두가 쇄신과 혁신을 통한 경쟁력 회복을 주문한다.



하지만 이런 진단과 처방에는 핵심이 빠졌다.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병사들의 용기만으로 안된다. 유능한 장수가 필수다. 기업도 다를 게 없다. 전 부회장도 “모든 책임은 경영진에게 있다”고 인정했다. 당연한 얘기다. 일부 언론은 고대역폭 메모리(HBM) 개발에 실기한 전 경영진의 책임을 제기한다. 하지만 재벌의 실질적인 최고경영자는 누구인가? 사실상 임직원의 생사여탈권을 쥔 이른바 ‘오너’를 빼고, 월급쟁이 경영진에게 위기의 최종 책임을 묻는 게 타당한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2022년 취임했다. 하지만 선대회장이 쓰러진 2014년 이후 사실상 총수 역할을 해왔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다. 경영자의 능력과 성과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삼성맨을 만날 때마다 이 회장이 그동안 어떤 경영철학과 성과를 보여주었는지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거의 같다. “(이 회장은 분명한) 메시지가 없다.” 이건희 선대회장 하면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자”는 1993년 프랑크푸르트 신경영선언이 떠오르는 것과 대비된다. 총수의 핵심 역할은 조직 전체가 한 방향으로 뛰도록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이다. 총수가 메시지가 없다는 것은 미래비전과 방향제시가 없다는 뜻이다. ‘리더십 실종’이다.



이 회장의 경영성과도 특별한 게 없다. 야심차게 세계 1위를 목표로 제시한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은 용두사미 꼴이다. 바이오는 분명 성과지만, 반도체 위기로 빛이 바랬다. 사실상 지난 10년간 ‘이건희 유산’으로 버텨왔다고 봐야 한다. 어쩌면 총수 리더십 실종 상황에서 당연한 결과일 수 있다. 이 회장은 의사결정이 필요한 사안을 보고하면 “이 방안이 최선이냐”고 묻는다고 한다. 한 임원은 “그런 상황에서 자신있게 ‘그렇다’고 답할 경영진은 거의 없다. 결국 원점에서 재검토가 이뤄지면서, 의사결정이 늦어지고, 리스크 있는 사업은 뒷전으로 밀린다”고 말했다.



최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취임 4주년을 맞았다. 현대차는 삼성과 정반대로 쾌속 질주 중이다. 지난 4년간 순이익은 3배, 시가총액은 2배로 증가했다. 글로벌 기업 순위도 5위에서 3위로 도약했다. 비결로는 총수의 리더십이 꼽힌다. 한 간부는 정 회장의 리더십을 “미래 비전 제시, 여러 의견을 경청하지만 필요한 시점에는 과감한 결정을 피하지 않는 결단력”이라고 말한다. 삼성과 대조적이다.



요즘 삼성 임직원들이 더욱 불안해하는 것은 “위기 속에서도 총수의 메시지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난 25일 이건희 선대회장 4주기 추모식, 27일 회장 취임 2주년 때도 침묵을 지켰다. 평상시라면 상관없다. 하지만 회사가 창사 이래 최대위기를 맞은 상황에서도 총수가 침묵으로 일관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충격이다. 굳이 위기 때마다 특유의 리더십으로 돌파한 이건희 선대회장을 거론할 필요도 없다. 위기 극복의 리더쉽을 발휘하지 못하는 총수는 어느 기업에도 치명적이다.



삼성전자는 3대 쇄신책을 내놓았다. 기술의 근원적 경쟁력 복원, 미래에 대한 철저한 준비, 신뢰와 소통의 조직문화 재건이다. 모두 필요한 얘기지만, 총수의 리더십이 없으면 사상누각이다. 그러나 그 누구도 정면으로 이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경영진은 총수 눈치를 본다. 언론은 최대광고주의 눈치를 본다. 한술 더떠 사법 리스크, 주52시간 근무제, 국가지원 부족 같은 핑계거리만 늘어놓는다. 삼성준법감시위원회가 제시한 이 회장의 등기이사 취임과 컨트롤타워 복원도 마찬가지다. 총수가 등기이사가 아니어서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했나?



총수의 리더십 실패로 위기에 처했는데도 제대로 처방을 못하는 것은 삼성뿐이 아니다. 신세계는 지난해 이후 경영실적 부진으로 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신상필벌 원칙을 내세워 전문경영진을 대거 경질했다. 하지만 10년 이상 경영을 총괄해온 정용진 부회장은 오히려 회장으로 승진했다. 에스케이도 경영부실로 인해 고강도 구조조정과 인적쇄신을 하고 있다. 부실의 진앙은 전지사업으로 대규모 적자가 누적된 에스케이온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이노베이션과 이앤에스(E&S)의 합병까지 강행했다. 하지만 에스케이온의 대표이사인 최재원 수석부회장(최태원 회장의 동생)은 합병사의 수석 부회장으로 건재하다.



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진단과 처방이 제대로 내려져야 한다. 재벌이 한국경제의 성장동력 역할을 해온 것을 부인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재벌이 3·4세 체제로 넘어오면서, 총수의 리더십 위기라는 구조적 한계가 분명해지고 있다. 능력검증이 안된 후계자로 인한 재벌의 ‘승계 리스크’는 오래전부터 예고된 일이다. 그동안은 이를 무시했지만, 이제 너무 늦지 않게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재계 상위 20대 재벌(총수없는 그룹 제외)만 놓고 보면, 창업 1세대는 카카오·셀트리온·중흥건설·미래에셋·네이버 등 5개에 불과하다. 나머지 15개(75%)는 재벌 3·4세 체제로 이미 전환했거나 준비 중이다. 현대차처럼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는 재벌은 기업을 개인 소유라는 생각부터 버려야 한다. 과욕을 부리다가는 모든 것을 잃을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일부 재벌은 이미 지금의 방식으로는 기업을 유지·발전시키는 게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다. 3세 체제인 중견그룹의 전문경영인은 “총수가 사석에서는 더는 이런 (승계)방식으로는 안된다고 말한다”고 털어놨다. 과연 이런 생각을 하는 총수가 한사람 뿐일까?



모범답안은 없지만, 핵심은 리더십의 재건이다. 기업 내 최고경영자의 리더십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새로운 경영체제를 찾아야 한다. 오너체제가 아니면 전문경영인체제라는 양자택일식 접근이 능사는 아니다. 전문경영인이 제대로 성과도 내지 못하면서 주인행세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구심점이 되는 대주주와, 경영역량이 뛰어난 전문경영인의 장점을 결합한 오너-전문경영인 간 파트너십 방식도 생각할 수 있다. 우리의 강점을 살리면서,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창조적 발상이 필요하다. 치밀한 사전준비로 불필요한 혼란과 충격이 없도록 해야 한다. 재벌이 자율적으로 승계구조를 포함한 새로운 기업지배구조 구축에 성공한다면 한국 기업과 경제에 전화위복의 전환점이 될 것이다.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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