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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9 (화)

보이스피싱 현금 운반책 처벌은 판사 따라 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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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보이스피싱 범죄 현금수거책 역할을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부부가 2심 재판에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1심은 이들에게 징역형을 선고했지만, 지난 8월 열린 2심은 이를 직권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한 것이다. 2심은 "피고인들이 당시 범죄에 가담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최근 보이스피싱 범죄 피해가 급증하면서 현금수거책에 대해서도 엄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모호한 기준 등으로 제대로 된 처벌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28일 경찰청에 따르면 대출 사기형 보이스피싱 범죄 피해액 규모는 2016년 927억원에서 지난해 2108억원으로 늘었다. 같은 기간 관련 범죄 검거 인원 역시 9884명에서 1만4347명으로 증가했다. 현금수거책은 보이스피싱 조직의 하위 구성원으로 주범은 아니지만 피해자들의 돈을 받아 조직에 전달하는 등 금전 사기에 직접 가담한 범죄자로 볼 수 있다.

하지만 현금수거책 관련 사건을 심리하는 판사들은 현금수거책에 대한 엄벌이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며 어려움을 호소한다. 본인이 보이스피싱 범죄에 가담하는지 모르고 현금수거책 역할에 뛰어든 사례도 있는 만큼 억울한 피고인이 발생하지 않도록 '가담 정도'와 '범죄 인식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유무죄를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피고인 대부분은 재판 과정에서 '범죄인지 몰랐다'며 무죄를 주장한다. 이때 판사들이 가장 신중히 살펴보는 지점은 '범행 가담 인식 여부'다. 피고인이 범죄 가담 사실을 아예 몰랐는지, 범죄에 가담했을 가능성은 인식했지만 이를 용인한 미필적 고의가 인정되는지, 아니면 범죄임을 명확히 인식하고도 가담했는지 등이다. 그러나 무죄를 주장하는 피고인을 앞에 두고 판사가 눈에 보이지 않는 범행 인식 여부를 정확하게 꿰뚫어 보기는 쉽지 않다. 판사의 시각과 성향에 따라 유무죄가 갈리는 경우가 많은 이유다. 현금수거책 관련 재판이 3심제를 거치면서 유죄가 무죄로, 무죄가 유죄로 뒤집히는 일이 빈번히 발생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최근 서울중앙지법이 약 한 달 동안 32회에 걸쳐 은행 직원 등을 사칭해 피해자들에게서 수백~수천만 원을 받은 현금수거책에게 무죄를 선고하면서 이슈가 되기도 했다. 한쪽에서는 '어떻게 32번 가담할 동안 범죄임을 몰랐을 수가 있느냐'는 지적이 나왔다. 해당 사건을 심리한 판사도 "편취를 위한 범행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 상당한 의심이 들긴 한다"고 했다. 하지만 판사는 결국 "범행 가담 인식 사실이 충분히 증명되지 않았다"며 무죄 판결을 내렸다.

법조계에서는 통일된 기준에 따라 형량이 정해질 수 있도록 객관적인 처벌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현금수거책은 주관적으로는 범행 수법에 대한 인식이 불분명해 유무죄를 판단하는 기준이 모호하다"며 "피고인과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합리적 기준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박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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