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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9 (화)

이슈 경찰과 행정안전부

고액사기만 年1000건 '과부하'···"퇴직경찰 활용 등 특단책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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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집중 리포트] 화려한 강남의 그늘

강남4구 사기범죄 서울 30% 육박

피해금액은 4년반새 1.8조 달해

수법 진화에 수사부서 한계 봉착

사이버 사기 검거율 매년 떨어져

인력보강·인센티브 등 대책 시급

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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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6월 검찰에 송치된 가상화폐 ‘아고브(AGOV)’ 발행사 클럽레어의 대표 정 모(44) 씨는 “강남·서초 일대에서 각종 사업을 성공시켜왔다”면서 투자자들로부터 수백억 원을 가로챘다. 그의 범죄 수법은 지난해 ‘재벌 3세’ 행세로 수십억 원대 투자 사기를 쳐 논란이 된 전청조(28) 씨가 서울 송파구 잠실 시그니엘에 월세로 거주하던 중 피해자들을 초대해 부를 과시한 것을 떠오르게 했다.

서울 강남구는 자치구별 지역내총생산(GRDP) 규모에서 독보적인 1위를 차지할 만큼 경제 범죄에 대한 민감도가 가장 높다. 최근에는 전통적인 강력 범죄에 더해 가상자산 등을 활용한 신종 경제 범죄까지 강남 일대를 중심으로 기승을 부려 경찰 수사력이 한계에 부딪혔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급증하는 강남 범죄 특성을 고려해 수사관 보강 등 경찰관 인력 재배치와 관련 시설 마련 등 대책 수립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제언했다.

28일 서울경제신문이 2020년부터 올해 7월까지 서울에서 발생한 사기 범죄(사기, 준사기, 컴퓨터 등 사용 사기, 부당이득, 특경법 위반, 보험사기방지특별법 등)를 분석한 결과 강남구에 접수된 사건은 총 3만 6375건으로 서울시 전체(28만 4824건) 중 12.77%를 차지했다. 서울 내 자치구 25곳 중 단일구 지분이 10%를 넘긴 것은 강남구가 유일하다. 그 뒤를 서초구(1만 8706건), 송파구(1만 7579건)가 이었다.

집계 지역을 넓힐 경우 ‘강남 4구’의 존재감은 더욱 두드러진다. 강남·송파·강동·서초·방배·수서 등 강남 4구를 관할하는 6개 경찰서에서 발생한 사기 범죄는 총 8만 3026건으로 전체의 30% 가까이를 차지했다. 전체 피해 금액은 1조 8385억 원으로 웬만한 지방 관청의 한 해 예산 규모를 넘어선다.

특히 특경법상 고액 범죄(5억 원 이상 사기) 건수만 분석했을 때 강남구 내 발생 빈도가 압도적으로 잦았다. 올해 1~7월까지 강남서(210건)와 수서서(94건)에 접수된 고액 사기 범죄 건수는 총 304건으로, 피해 액수는 4328억 원에 달한다. 송파·서초·강동구의 고액 사기 범죄를 모두 합해도(208건, 4063억 원) 강남 1개 구에 못 미친다. 강남 4구를 모두 합칠 경우 약 반년 만에 발생한 고액 사기만 500건이 넘어간다.

이처럼 대규모 사기 피해가 자주 발생하는 것은 강남 4구의 막강한 경제력과 무관하지 않다. 지난해 서울시가 발표한 ‘서울 GRDP’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기준 구별 GRDP 규모는 강남구가 77조 9240억 원 으로 1위에 올랐다. 이는 가장 규모가 작은 강북구(3조 4630억 원)의 22배가 넘는 수치다. 권역별 GRDP 규모 역시 ‘강남4구’인 동남권(157조 4580억 원)이 서울의 33.4%를 차지하며 가장 비중이 높았다.

금융·정보기술(IT) 등 첨단 기업과 백화점 등 대형 유통 업체, 고급 주택가가 밀집해 큰 돈을 굴리다 보니 한 번 사기를 당했을 때 피해 금액 규모도 어마어마한 수준이다. 또한 범죄 수익으로 호화 생활을 영위하거나 성공한 사업가 행세를 하는 사기범의 경우 범행 무대 및 실거주지가 강남 일대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한몫했다는 평가다.

실제 올해 1월 강남의 한 대형 교회 집사 신 모(66) 씨는 교인들에게 고수익을 보장한다고 속여 투자금 535억 원을 가로챈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신 씨는 “하나님이 고수익을 보장한다”면서 수백억 원을 편취한 뒤 강남 유명 주상복합 아파트에 거주하며 외제차를 몰고 자녀 해외 유학, 사치품 구입 등에 썼다. 담당 재판부는 “신 씨가 자신이 대단히 성공한 사업가인 것처럼 부를 과시해 높은 수익금을 줄 수 있는 것처럼 현혹했다”고 지적했다.

가상자산·주식 등 투자 열풍과 함께 이를 미끼로 한 사이버 사기도 기승이다. 강남 4구 내 관할서가 접수한 사이버 사기 범죄는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연평균 4500건에 달한다. 우려할 점은 사이버 사기 양상과 수법이 나날이 진화함에 따라 발생 건수 대비 검거율이 매년 하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강남 4구 내 사이버 사기 검거율은 2022년까지 60%대를 웃돌다가 올해 1~7월 기준 44%까지 내려앉았다. 단순 검거 건수만 봐도 2020년 3298건에서 2021년 2908건, 지난해 2290건 등 꾸준히 줄었다. 초기에는 단순히 투자 리딩방 등을 운영하며 리딩비를 요구하는 방식이 유행했다면 최근 들어서는 정교한 가짜 투자·해킹 애플리케이션까지 제작되고 사이버 사기 조직도 ‘점조직’ 형태로 운영돼 검거가 쉽지 않은 것으로 풀이된다.

전문가들은 수사 인력 보강과 함께 수사관들에 대한 성과급 제공, 승진 확대 등의 인센티브를 함께 제공하는 등 종합적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봤다. 전국 경찰관의 1인당 담당 인구는 해를 거듭할수록 감소하고 있지만 강남경찰서의 경찰관 1인당 담당 주민 수는 되레 늘었다. 강남경찰서 치안 행정 현황에 따르면 올해 4월 기준 강남서의 지구대·파출소 인원은 433명으로 경찰관 1인당 주민 458명을 맡고 있다. 이는 지난해 1인당 426명에서 32명가량 늘어난 수준이다.

2021년 검경 수사권 조정의 여파로 경찰의 사건 처리 부담이 높아졌지만 인력과 예산은 충분히 보강되지 못해 수사 부서가 과부하 상태라는 해석도 있다. 검사의 직접 수사 개시 대상 범죄를 축소한 개정 검찰청법 및 형사소송법이 2021년 1월 1일부터 시행된 뒤 베테랑 수사관들이 업무 과중을 버티지 못하고 이탈하는 현상은 꾸준히 지적돼왔다.

임준태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강남 등 대형 사기가 많이 발생하는 일부 관서에 한해서라도 퇴직한 베테랑 수사관들을 계약직으로 재채용해 숙련 인력을 충원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며 “고액 사기의 경우 피해액 규모에 비례해 수사관들에 대한 경제적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등 보다 과감한 정책적 발상의 전환이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장형임 기자 jang@sedaily.com채민석 기자 vegem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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