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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8 (월)

‘뒤틀린 몸’…나는 의료파업 생존자다 [6411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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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수술 전후를 비교하기 위해 파킨슨센터 복도에서 영상을 찍는 모습. ♣️H6s필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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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진영 | 대전여성장애인연대 활동가





나는 한마디로 설명하기 어려운 몸을 가졌다. 서류상 지체장애인이며, 지체장애 중에서도 하지장애인이다. 뇌병변장애인이기도 하다. 언어장애가 있으며, 온몸이 자연스럽게 이완되지 않고, 걷는 것도 위태로워 보인다. 머리가 왼쪽으로 쏠린 탓에 척추측만증이 진행 중이고 목디스크와 허리디스크도 진행 중이다. 심각한 두통으로 얻은 불면증을 해소하려 지역 대형병원 신경과를 찾게 된 이후로는 근긴장이상증 환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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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어린 시절부터 한의원, 정형외과, 재활의학과, 신경과, 신경외과 등 각종 병원을 돌아다녔다. ‘뒤틀린 몸’, 흔히 말하는 ‘정상적이지 않은 몸’을 이끌고 병원에서 검사를 받으려 할 때면 의사들이 불편해했다. 제멋대로 움직이며 뒤틀리는 몸을 보며, “움직이면 검사가 안 된다”,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살아야 한다” 같은 반응을 보였고, 진료를 거부당하는 일도 있었다. 열살 때 처음으로 수술 제안을 받았으나 두개골을 열어 신경을 잘라내는 수술이라 당시 기술로서는 위험성이 컸다. 성인이 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을 택했다.





2년 전 지역의 대형병원을 찾았다. 머리를 감싼 근육에 문제가 생겨 더 이상의 통증을 견딜 수 없었다. 신경과 의사는 몸이 이렇게 된 원인을 찾아보자 제안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온몸 검사를 시도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검사가 가능한 몸’, ‘유전적으로 아무 이상이 없는 몸’으로 인정받아, 서울의 빅5 병원 중 한곳을 소개받을 수 있었다. 시간과 비용을 들여 똑같은 검사를 받았고, 다행히 목의 신경과 근육이 고착되지 않아 ‘수술을 시도해볼 만한 몸’이라는 것을 확인받았다. 의사는 나와 같은 사례가 처음이라 예후를 장담할 수 없지만, 환자의 의지가 제일 중요하다 말했다. 통증이 심해지는 상황에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에, 나는 무조건 수술을 원한다고 대답했다.





지난 2월26일에 뇌심부자극술을 실시할 예정이었다. 40년 만에 찾은 수술 기회였다. 가족들은 지금보다 몸이 더 나빠질까 불안해했다. 재활·간호 기간을 걱정하며 서로의 마음에 비수를 꽂기도 했지만, 가족을 이해시키고 설득시키는 일도 수술의 일부였다. 수술 한달 전 가족여행을 다녀오며 온 가족이 나를 위해 애써주는 마음을 확인했다. 모두 수술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수술 열흘 전, 빅5 병원이 의료파업을 실시한다는 내용이 보도되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휴대전화에는 부재중 전화와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수술이 예정되어 있었던 병원에서 온 것이었다.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겼을까, 내 인생은 왜 이러나 싶었다. 혼란스럽고, 원망스러웠다. 지인들은 수술하지 말라는 하늘의 계시라며 위로인지 악담인지 알 수 없는 말로 나를 다독였다.





처음엔 의료파업이 금방 끝날 줄 알았다. 학창 시절 버스 파업으로 임시버스를 타고 등교한 적이 있었지만, 버스 파업은 오후가 되면 원상복귀되곤 했다. 이번에도 그럴 줄 알았는데, 고래 싸움에 새우등이 터지고 있었다. 혼란의 시기가 끝나고 빨리 병원에 갈 수 있기를 바라며, 한동안 내 시각과 청각은 언론사 속보에 고정되었다. 이전에는 관심도 없던 대한의사협회 사람들의 에스엔에스(SNS)까지 염탐하며 병원에서 연락이 오기를 기다렸다. 실망감과 우울감, 무력감을 피하려고 더욱 열의 있게 일상을 보내려 했다. 그러나 며칠째 이완이 되지 않는 머리, 목, 어깨, 허리의 불쾌함 때문에 도저히 잠을 이루지 못해 탈이 나버렸다. 현재는 지역 병원에서 신경을 마비시키는 약물을 맞으며 간신히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의사는 머리가 지난번보다 많이 기울었다며, 너무 힘들면 보톡스 주입 용량을 늘리겠다 한다. 익숙하게 하던 동작이 갑자기 되지 않을까 봐 일상생활을 하는 것조차 조심스럽다. 언제까지 이런 방식을 견디며 생존할 수 있을까 겁이 난다.





얼마 전 나와 비슷한 장애와 증상을 가진 분이 내가 받게 될 수술을 다른 병원에서 받고 예후가 좋아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기약도 없는 기다림에 지쳐 수술이 예정돼 있던 빅5 병원의 담당 교수 연락처를 수소문했다. 다른 병원에서 진료와 수술 상담을 받아볼 생각이니 내 데이터를 줄 수 있는지 문의했다. 가능한 병원에서 수술을 받아도 좋겠다는 회신이 왔다. 나는 과연 수술을 받을 수 있을까? 취약해서 더욱 하염없이 기다린 통증의 시간을 그 누구도 책임져 주지 않는다. 약자들의 시간은 도둑맞아도 되는 것인가.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일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2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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