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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8 (월)

“천무 추락 때 잔해 건져 분해 연구… 이젠 이스라엘도 기술 탐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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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방산 신화를 만든 사람들] [5] ‘천무’ 개발 이끈 신현우 사장

조선일보

강원도 고성군에서 육군이 다연장로켓 시스템 ‘천무’를 테스트하고 있는 모습. 천무는 239mm짜리 미사일을 최대 80km까지 한 번에 12발 쏠 수 있고 목표와의 오차 거리도 평균 15m에 불과해, 화력과 정확도에서 미국 록히드마틴의 하이마스에 뒤지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는다. /육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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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말 이스라엘 남부의 한 보안 시설. 한화 방산 부문 개발팀 30여 명은 텔아비브에서 차로 3시간을 달려 보안 시설 정문을 통과한 뒤 또다시 비포장도로로 1시간을 달렸다. 도착한 곳은 미사일 발사 시험장. 이들이 이곳을 찾은 것은 당시 극도의 보안 속에서 개발 중이던 국산 다연장로켓시스템 ‘천무’의 사거리 80㎞ 발사 시험을 위해서였다. 국내엔 시험장이 없어 그동안 바다로 발사하는 시험만 했는데, 막바지 성능 입증 테스트를 하기 위해서였다. 튀르키예 등 여러 나라를 탐문한 끝에 이스라엘을 시험 장소로 낙점한 것이다.

발사대에서 미사일이 80km 떨어진 목표물을 향해 떠나고 3분여쯤. 개발팀 전원이 숨죽여 성공 여부를 기다린 끝에 사방에서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이 시험에서 미사일이 목표물인 깃대 반경 15m 안에만 들어가도 성공인데, 이 수준을 뛰어넘어 정중앙 깃대를 정확히 명중했기 때문이다. 골프로 따지면 홀인원(한 번에 홀에 공을 집어넣는 것)이었다. 당시 개발팀을 이끌던 신현우(60)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사장은 “시험장을 지켜보던 이스라엘 방산 업체 관계자조차 ‘정확도가 정말 대단하다. 우리와 협력하지 않겠느냐’고 제안했을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이듬해 말 천무는 우리 군의 최종 시험 평가를 통과했고, 양산에 돌입해 2015년 실전 배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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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이철원


◇바다 추락한 로켓까지 수거해 분석

천무의 개발 논의가 시작된 건 2005년. 사거리가 최대 60㎞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 북한의 장사정포·방사포가 집중 배치돼 수도권을 위협하고 있던 시기였다. 당시 우리 군의 주력 대응 무기는 자체 개발한 다연장로켓 ‘구룡’으로 사거리가 40㎞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짧은 창으로 긴 창에 맞서는 것은 불리하기에 우리도 발사 거리 늘리기가 급선무인 상황이었다. 더욱이 기존 구룡은 목표물을 추격할 수 있는 유도탄이 아니라 정밀도도 떨어졌다. 결국 북한에 대응하려면 사거리도 늘려야 하고 정밀도도 높여야 하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했다.

방산 기업 한화는 당시 군이 이런 무기를 미국에서 살지, 아니면 독자 개발할지 결정 나지 않은 상황에서 천무 개발에 뛰어들었다. 신 사장은 “‘우리가 먼저 시제품을 만들어 독자 개발을 제안해보자’는 판단에 수백억 원을 날릴 각오로 개발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김승연 한화 회장도 “실패해도 기술은 남지 않겠느냐”며 힘을 실어줬다.

2012년 이스라엘 시험장에서 성공을 확인하기까지 수많은 실패 과정을 겪었다. 특히 미사일 같은 유도무기에는 두뇌 역할을 하는 유도 조정 장치, 눈 역할을 하는 관성 항법 장치, 손발 역할을 하는 구동 장치 기술까지 완벽하게 조화를 이뤄야 한다. 신 사장은 국방과학연구소(ADD)부터 대학·기업 연구소까지 사방에서 인력을 끌어모아 설계와 조립, 구동 시험을 계속했다.

천무는 지대지 미사일이다. 땅에서 쏴 땅에 있는 적을 공격하는 것이다. 그런데 국내엔 이런 지상 시험장이 없었다. 2006년 여름, 한화 개발팀은 충남 태안으로 향했다. 바다를 향해 쏘는 시험을 하기 위해서였다. 첫 발을 쏘아올렸다. 결과는 실패. 목표점은 물론 발사 거리 80㎞도 못 날고 바다에 추락했다. 그런 실패는 이후에도 이어졌다. 발사 시험 한 번에 드는 비용도 엄청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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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서울 중구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본사에서 신현우 사장이 사무실에 걸린 세계 지도 앞에 서 있다. /김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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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팀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해저 수거 전문 업체를 고용했다. 바다에 추락한 로켓을 찾아 실패 원인을 분석해보기 위해서였다. 추락한 3개의 로켓 중 건져낼 수 있었던 건 단 하나. 개발팀은 그날부터 미사일을 분해하며 유도 조정 장치가 문제였는지, 날개 부문에 문제가 있었는지, 제품 재질이나 코팅·가공·조립 문제였는지 하나하나 분석했다. 신 사장은 “날개 구동 쪽이 문제였다고 잠정적으로 결론을 내리고 그때부터 수개월간 관련 부품을 보완하고 시험을 거듭했다”고 했다. 그렇게 시험을 반복한 끝에 정부가 내놓은 기준(두 발 연속 명중)을 통과하고 2009년 정식으로 개발 사업에 착수할 수 있었다.

정식 개발에 들어가면서 핵심은 명중 성공률이었다. 그 시험의 대부분을 이스라엘 시험장에서 진행했다. 바다로 발사해선 미사일이 정확하게 목표물을 타격하는지 정밀 측정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신 사장은 “2013년까지 이스라엘에서 6번 시험 했는데 한 번은 깃대에 정확히 맞혔고, 나머지 5번도 모두 반경 15m 안에 넣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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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1군단이 지난 17일 오후 강원도 고성 일대에서 동해상 표적지를 향해 130mm 로켓탄 천무 실사격을 실시하고 있다. /육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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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넘어 폴란드 뚫어, 다음은 동남아 해상

한화는 2015년 천무 실전 배치 후 본격적인 수출 세일즈에 나섰다. 첫 수출은 몇 년 후 중동 A 국가. A 국가는 당시 세계 최고 수준인 미국의 다연장로켓인 하이마스와 천무를 저울질하다 천무를 최종 낙점했다. 한 번에 장착할 수 있는 미사일이 하이마스는 6발, 천무는 12발이다. 브랜드 명성에서는 뒤처졌지만 빠른 납기 약속에 사후 관리 능력에서도 천무의 조건이 좋았다.

중동부터 유럽까지 방산 전시회를 훑은 끝에 이후 A국에 이어 또 다른 중동 B국가와도 계약을 맺었다. 비밀 유지 조항 때문에 국가 이름은 물론 계약 시점, 계약 금액도 비밀이다. 업계에서는 각각 조 단위로 추정한다. 재작년 11월부터 2차례에 걸쳐 폴란드에 천무 290대와 관련 탄을 수출했다. 당시 공개된 계약 규모는 7조2000억원이었다. 신 사장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벌어지기 전에 이미 유럽 정세가 심상치 않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당시 사장인 김동관 부회장의 지시로 TF팀을 구성해 유럽 시장에 공을 들였다”고 했다.

천무는 노르웨이·루마니아와 같은 유럽 국가는 물론 필리핀·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에도 수출을 준비하고 있다. 최근 필리핀 방산 전시회에서 섬이 많은 동남아 특성을 고려해 지상에서 함대 요격이 가능한 천무 실물을 전시했다. 신 사장은 “입사 2년 차인 1988년에 ‘미육군협회 방산전시회(AUSA)’에서 패트리엇 미사일 같은 미국 무기를 보고 기가 죽었었다”며 “그런 우리나라가 이제 방산 전시회에서 부스를 차릴 때마다 세계 각국 사람이 몰려드는 상전벽해가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신현우

서울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후 1987년 한화에 입사해 37년간 방산 분야에서 일해왔다. 한화 방산전략실장, 한화테크윈 항공방산부문 대표,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표를 거쳐 전략부문 사장을 맡고 있다.

[성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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