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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8 (월)

중국 경제 나빠지면 더 세게 지워지는 그 이름… 리커창 1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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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집권 3기 폐기한 '리코노믹스', 경제실정론 도화선 되나
中정부 추모 차단… 추모 열기가 높았던 곳 마라톤 대회도 연기

머니투데이

2023년 10월 29일 중국 안후이성 수도 허페이에 있는 리커창 전 중국 총리가 살던 집 앞에 리커창 전 총리를 위한 꽃 더미가 놓여 있다. 중국 관영 언론에 따르면 한때 중국 최고 지도자로 꼽혔던 리커창 전 총리는 전날 상하이에서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그의 나이는 68세였다. ( 요미우리 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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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사실상 유일한 정적이었던 리커창 전 중국 국무원 총리 사망 1주기. 하지만 중국 내에서는 어떤 추모 움직임도 찾아보기 어렵다. 시진핑 정부의 '경제실정론'이 제기되는 가운데 그와 경제 정책 노선을 달리했던 리 전 총리를 재조명하는 게 자칫 반정부 여론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리 전 총리는 지난해 10월 27일 한 호텔 수영장에서 향년 68세로 돌연 사망했다. 한 때 시 주석의 경쟁자이자 중국 경제개혁의 적임자로 꼽히던 리 전 총리의 허무한 최후였다. 중국 정부가 밝힌 사인은 심장마비. 당시 리 전 총리는 시 주석의 3연임 성공과 동시에 국무원 총리 자리에서 밀려나 백수로 지내던 터였다.

이에 앞선 지난해 3월 퇴임 당시엔 중국 국무원 직원 800여명이 운집해 그를 환송했다. 직원들 앞에서 리 전 총리는 "사람이 하는 모든 일은 하늘이 보고 있다"는 인삿말을 남겼다. 중국 언론은 당시 발언에 대해 국무원 직원들에게 인민을 위해 성실히 복무할 것을 당부했다고 해석했지만, 세간에선 본인을 축출한 시 주석을 겨냥한 게 아니냐는 설이 파다했다.

27일로 리 전 총리 서거 1주기를 맞았지만 어떤 추모 분위기도 읽히지 않는다. 기념행사는 커녕 현지 언론의 관련 보도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중국 정부의 사전조치와 무관치 않다. 중국 정부는 리 전 총리 사망 당시에도 관련 영상을 검열했고 대학 동아리 활동은 물론 시민 단체행사까지 통제했다. 교직원들에겐 수업시간에 리 전 총리에 대한 언급을 자제하도록 지시했다.

1주기를 앞둔 최근에도 중국 정부의 추모 통제는 강력했다. 20일과 27일 각각 안후이성 추저우와 잉상에서 마라톤 대회가 열릴 예정이지만 홍콩명보 등에 따르면 대회가 이유 없이 연기됐다. 주최 측은 참가자들의 비용 손실을 보상하겠다고만 밝혔다. 미국 중국화교방송 NTDTV는 "마라톤 대회가 연기된 지역은 대부분 리 전 총리 추모 열기가 유독 높았던 곳"이라고 보도했다.

마라톤 대회를 실제 중국 정부가 막은 것인지는 확인하기 어려우나, 시민들이 모여 리커창의 이름 석자를 말할 '기회'를 차단하려는 움직임이 감지된다. 이를 두고 침체된 중국 경제를 두고 리커창이 시진핑 정부 '경제실정론'의 도화선이 될 수 있기 때문이란 해석이 나온다. 리커창을 그리워하면 할수록 시진핑의 경제 실정에 대한 한숨과 분노가 커질 수 있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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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의 리커창 중국 총리./로이터=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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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주석 입장에선 억울할 수도 있다. 리 전 총리는 시진핑 치세 1~2기를 함께했다. 실정이 있다면 책임도 함께, 성공이 있다면 영광도 함께다. 그러나 상황을 뜯어보면 중국인들의 리커창 향수가 이해된다. 리 전 총리는 2020년 시 주석이 '탈빈곤 사회'를 목표로 제시하자 "아직도 중국에선 월 수입 1000위안(약 18만원)으로 생계를 꾸리는 중국인이 6억명이나 된다"고 지적하는 등 시종 다른 노선을 제시했다.

그러자 시 주석은 리 전 총리가 2015년 발표해 리코노믹스(리커창+이코노믹스)라는 별명을 얻으며 시장에 반향을 일으켰던 '중국제조 2025 경제정책'을 3기 집권 이후 곧바로 폐기해버렸다. 후진타오 전 국가주석 직계 '공청단(공산주의 청년단)'의 기수인 리커창을 어찌 하지 못하고 마지못해 총리로 권력을 나눴다가 3기에 접어들며 권력이 공고해지자 바로 실각시키고 정책까지 지워버렸다.

리 전 총리는 석연찮은 사망 이후 시 주석에게 더 큰 아킬레스건이 됐다. 중국의 경제 상황이 어려울수록 그 이름은 더 세게 지워질 터다. 사망 당시 중국 정부의 통제에도 그의 안후이성 허페이 생가 앞에 끝없이 추모화를 던지던 중국인들은 이 상황을 어떤 심경으로 바라볼까.

베이징(중국)=우경희 특파원 cheerup@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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