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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퉁소소리’에서 해설자 겸 주인공 최척의 늙은 모습을 연기하는 원로 배우 이호재. 세종문화회관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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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파랑 두루마기에 검은 베로 만든 유건을 두른 원로 배우 이호재(83)가 지난 24일 세종문화회관 연습실에 나타났다. 손주에게 옛날얘기라도 들려주듯 친근한 목소리로 해설자 역할을 하며 관객을 400여년 전으로 안내한다. 서울시극단 단장 겸 예술감독 고선웅이 연출을 맡은 연극 ‘퉁소소리’ 연습 장면 도입부다. 주인공 최척의 늙은 모습을 연기하는 관록의 배우 이호재는 묵직한 존재감을 발휘하며 경쾌하게 흘러가는 연극의 균형을 잡아준다.
원작은 조선 중기 문인 조위한(1567~1649)의 한문 소설 ‘최척전’이다. 임진왜란, 정유재란에 의병으로 참여한 최척과 그의 아내 옥영이 주인공. 전란의 소용돌이에 휩쓸린 두 사람의 이별과 유랑, 해후의 이야기를 중국과 일본, 베트남의 산과 바다를 배경으로 속도감 있게 풀어낸다.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등 고전을 비틀어 현실을 이야기하는 데 탁월한 재능을 보여온 고선웅이 각색과 연출로 나서 눈길을 끄는 작품이다. 고선웅 극단장 겸 예술감독 체제의 서울시극단이 전작 ‘연안지대’(김정 연출)에 이어 전쟁의 참상에 주목하는 연극을 선보이는 점도 예사롭지 않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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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극단 단장 겸 예술감독 고선웅. 세종문화회관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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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퉁소소리’는 전쟁의 참화 속에 내던져진 인간의 비극적 운명을 그리되, 시종 웃음을 자아낸다. 무거운 주제를 다룰 때도 유머를 잃는 법이 드문 ‘고선웅표 연극’의 특징이 잘 살아난다. “21세기에도 폭력적인 전쟁이 계속되고 있잖아요. 끊이지 않는 전쟁의 참상을 알리고 싶었어요.” 고선웅 연출은 “관객이 ‘위정자들의 우매함이 반복되어선 안 되겠구나’ 느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15년 전부터 ‘최척전’의 무대화를 꿈꿨지만 한정된 자원으로 장황한 이야기를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 게 쉽지 않은 일이라 작심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이호재도 “현시대를 투영한 작품”이라고 이 연극을 소개했다. “역사는 반복되고 또 반복돼요. 400여년 전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지금도 무대에 오르듯이 사는 사람들만 사라질 뿐 역사는 돌고 도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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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선웅 서울시극단 예술감독이 각색과 연출을 맡은 연극 ‘퉁소소리’ 리허설 장면. 세종문화회관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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퉁소는 최척과 아내 옥영의 재회를 이어주는 매개체다. 퉁소를 포함해 거문고, 가야금, 해금, 타악기 등 전통 국악기로 꾸린 5인조 악단의 라이브가 곁들여져 연극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일본과 베트남 사람의 대사를 원어로 살리되, 자막을 제공한다. 최척을 연기하는 배우 박영민과 옥영 역의 정새별 등 14명의 배우는 500여명이 참여한 오디션을 거쳐 무대에 오르게 됐다.
박영민은 “어떻게든 살아가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라면을 먹다가 합격 소식을 접했다”며 웃었다. 정새별은 “고난 속에서도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바로 사랑의 힘이라는 걸 깨닫게 해주는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11월11일부터 27일까지 세종문화회관 엠(M)씨어터.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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