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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6 (토)

[사설] “여기가 법정인가” 피의자 취급당한 국감 증인의 항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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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지난 24일 오후 속개된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한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가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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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 전단 단체인 자유북한운동연합 박상학 대표가 24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전단의 위법성을 추궁당하자 “내가 지금 법정에 섰느냐”며 반발했다. 더불어민주당 의원 여러 명이 반복적으로 전단 살포 위법 가능성과 저작권법 위반까지 지적하자 박씨는 “자꾸 손가락질 말라. 모욕하지 말라” “여기가 북한 최고인민회의냐”고 말했다.

야당이 국정감사에서 일부 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의 문제점을 지적할 수는 있다. 그러나 형사 피의자도 아닌 국정감사 증인을 야당 의원들이 범죄자 취급 하며 “대북 전달 살포가 돈이 된다”는 식으로 모욕한 것은 국회의 월권이다. 검찰은 작년에 대북 전단 살포 혐의로 기소된 박씨의 공소를 취소했다. 헌법재판소가 박씨 기소의 근거가 된 대북 전단 금지법 위헌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국정감사법은 국정감사 대상으로 정부 기관과 지자체, 공공 기관으로 규정하고 있다. 민간 분야는 국정감사 대상이 아니라, 여야 합의로 증인이나 참고인 명목으로 제한적으로 부를 수 있다. 그러나 박씨처럼 자기들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범죄자 다루듯 세워 놓고 윽박지르는 일이 이번 국정감사에서 일상사처럼 벌어졌다. 정쟁 상임위로 지목된 국회 과방위의 일반 증인은 2022년 14건에서 이번에 149건으로 10배 이상 늘었다. 대부분 여야 합의가 아니라 거대 야당이 일방적으로 채택했다. 17명 고발에 동행 명령장 발부도 최소 26건으로 역대 최다 기록을 이미 넘어섰다. 국정감사가 범법 수사처럼 변질했다는 말이 나올 지경이다.

마구잡이로 일반 증인을 불러놓고 정작 국회가 보여준 모습은 추태에 가깝다. 24일 과방위 국감에서 피감 기관 직원이 쓰러지자 방통위원장 직무대행이 욕설을 섞어 “사람 죽이네”라고 하자, 야당 의원들은 공직자에게 “야, 인마. 이 자식아. 이 xx야, 법관 출신 주제에”라고 했다. 야당 과방위원장 발언이 전체의 20%를 차지했다며 “갑질 아니냐”고 따지던 여당 의원은 발언권을 박탈당했다.

국정감사는 10월 유신 때 폐지됐다가 민주화 이후 부활했다. 초기에는 권위주의 정부 견제 기능도 있었지만, 지금은 입법부의 정쟁 수단으로 전락하면서 국민이 넌더리를 낸다. 민주화의 성과였던 국정감사가 민주주의를 타락시키고 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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