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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5 (금)

[단독]보유주식 파느니 공직 포기… 올해만 506건 직무관련성 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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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구청장 사퇴로 본 ‘백지신탁’

83건 “직무 관련성 인정” 판정… ‘심사 결과 불복’ 마포구청장 소송

이의 제기 행정심판도 크게 늘어… “소송 등 시간끌기” 개선 목소리

최근 문헌일 전 서울 구로구청장이 자신이 운영해온 회사의 170억 원 상당의 주식백지신탁 결정에 불복해 사퇴한 가운데 올해 들어 8월까지 주식백지신탁 심사위원회에서 진행한 직무 관련성 심사가 500건을 넘긴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심사 건수는 809건으로 8년 전(356건)과 비교하면 2.3배 수준으로 급증했다. 심사위 결정에 불복해 행정심판을 청구한 사례도 최근 2년 새 부쩍 늘었다.

● 백지신탁 심사 건수 8년새 127% 늘어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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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양부남 의원이 인사혁신처, 국민권익위원회 등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들어 8월까지 인사처 주식백지신탁 심사위에서 직무 관련성을 심사한 사례는 총 506건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83건(16.4%)은 직무 관련성이 인정돼 주식을 매각해야 한다는 판정을 받았다.

주식백지신탁은 고위 공직자가 보유한 주식으로 인해 그가 담당하는 직무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주식을 매각하거나 처분·관리를 제3자에게 맡기도록 한 제도다. 국내에서는 2005년부터 도입됐다. 국회의원과 장차관을 포함한 1급 이상 고위 공직자와 기획재정부의 금융 관련 부서와 금융위원회의 4급 이상 공직자 본인과 배우자, 직계존비속 등이 대상으로, 3000만 원이 넘는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경우 임명일로부터 두 달 이내에 직접 매각하거나 수탁기관(금융회사)에 백지신탁해야 한다. 공직자는 해당 주식과 본인의 직무 관련성을 따져보기 위해 주식백지신탁 심사위에 심사를 청구할 수 있다. 심사위 결과에 불복하는 경우 권익위의 행정심판이나 행정소송을 청구할 수 있다.

주식백지신탁 심사 건수는 늘어나는 추세다. 2015년 356건에서 지난해 809건으로 8년 새 127.2% 증가했다. 같은 기간 ‘직무 관련성이 있다’고 판정한 비율도 10.1%(36건)에서 22.9%(185건)로 늘었다.

● 행정심판 제기 건수, 최근 2년 새 급증

심사위의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며 권익위에 백지신탁 행정심판을 제기한 건수도 최근 2년간 급증했다. 2005년부터 올해 10월까지 20년간 권익위에 청구된 행정심판은 총 14건으로 지난해와 올해에만 8건이 접수됐다. 연도별로 보면 행정심판 청구 건수는 2006년과 2014년, 2019년, 2021년 각 1건 등 2005∼2021년 총 4건에 불과했다. 하지만 2022년 2건, 2023년 5건에 이어 올 들어 4월까지 3건이 청구됐다. 최근 20년간 청구된 행정심판 중 57.1%가 2년 새 이뤄진 셈이다.

박강수 서울 마포구청장도 지난해 8월 행정심판을 청구했다 기각당해 현재 직무 관련성 인정 결정 처분 취소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박 구청장은 2022년 당선 당시 본인 및 배우자, 자녀가 보유한 언론사 주식의 직무관련성이 인정돼 매각 또는 백지신탁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마포구 관계자는 “현재 구청장 본인이 소유하고 있는 주식은 없는 상황으로 직무 관련성을 두고 (심사위와) 이견이 있는 만큼 그 여부를 가려 보겠다는 것”이라며 “2심의 판단을 기다려보고 만약 처분을 해야 한다면 그때는 처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공직자 사익 추구 막되 ‘현실화’ 고민 필요

보유 주식에 직무 관련성이 있다고 판정받더라도 행정심판이나 행정소송의 절차로 ‘시간 끌기’를 하는 경우가 늘면서 백지신탁 제도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양 의원은 “이번 문 전 구청장 중도 사임 사태로 그동안 지적돼 온 백지신탁 제도의 허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셈”이라며 “공직자들이 이를 악용하고 주민들이 선거를 다시 치러야 하는 일을 방지할 수 있는 개선안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공직자들이 권력을 통해 사익을 추구하는 것은 막되 기업인 등 유능한 인재의 공직사회 진입을 막지 않도록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주식을 강제로 매각하거나 백지신탁하게 하기보다는 주식 거래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어떤 지위에 있는 동안에는 주식 거래를 정지하는 방안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소정 기자 so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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