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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5 (금)

'외국군 파병' 금단의 문 연 푸틴…유럽서 '맞파병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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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가 23일(현지시간)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을 사실로 확인하며 상응 조치의 수위가 주목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금단’으로 여겨지던 외국군의 개입을 허용한 건 중대한 국면 전환으로 볼 수 있어서다. 미 의회에서는 ‘직접적 군사 행동’ 필요성까지 제기된 가운데 한국은 향후 북·러 간 불법적 군사협력의 위협을 받는 직접적인 당사자로서 관련 논의에 참여하게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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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군 전략소통·정보보안센터(SPRAVDI)가 북한군으로 추정되는 군인들이 줄을 서서 러시아 보급품을 받고 있다고 공개한 영상. 우크라군 전략소통·정보보안센터 X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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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원산서 블라디로 이동"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국가안보소통보좌관은 이날 언론 브리핑에서 “10월 초순에서 중반 사이 북한 병력 최소 3000명이 북한에서 러시아 동부로 이동했다”며 “북한군은 배를 활용해 원산에서 블라디보스토크로 이동한 것으로 파악한다”고 밝혔다. 파라 다클랄라 나토 대변인도 이날 성명을 내고 “북한이 러시아에 파병한 증거를 동맹국들이 확인했다”고 밝혔다.

앞서 국정원은 지난 18일 북한 병력 최소 1500명이 이미 러시아로 이동했다고 밝혔다. 23일에는 1500명이 추가로 더 파견돼 총 3000여명이 이동했으며, 연말까지 1만여명이 파병될 것으로 보인다고 최신 정보 상황을 갱신했다.(국회 정보위원회 비공개 긴급현안 간담회)

한국과 미국의 발표에 닷새 정도 차이가 난 것은 미국이 독자적으로 관련 정보를 확인하고 어떤 기밀을 해제할 것인지 분류하는 과정 등에 시간이 소요됐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보 판단에서 의견 차가 있는 건 아니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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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은 지난 18일 “북한군 추정 인물 사진에 자체 AI 안면 인식 기술을 적용한 결과, 이 인물은 지난해 8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전술 미사일 생산공장 방문 당시 수행한 미사일 기술자(오른쪽)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국가정보원.





정보 분석에 시차…대선 의식 분석도



실제 백악관의 발표는 국정원의 발표와 대부분 일치한다. 그러면서도 원산에서 출발했다는 파병 경로는 새로 공개했는데, 미국의 독자 정보에 근거한 것으로 보인다. 국정원이 앞서 지목한 출발지는 북한 청진·함흥·무수단이었는데, 추가로 공개한 병력 1500명이 원산 경로로 움직였을 가능성이 있다.

일각에서는 미국이 10여일 앞으로 다가온 대선을 의식, 긴장 고조를 피하기 위해 적극적 대응을 꺼린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있다. 다만 외교 소식통은 “미국 입장에서는 파병을 사실로 공식화하는 순간 이에 따르는 대응을 마련해야 하기 때문에 이를 검토하느라 시간이 걸린 측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미국도 관련 징후를 파악하고 경고했겠지만, 파병 징후가 계속되자 대응 장치를 마련한 뒤 우크라이나 개전 때처럼 정보를 선제적으로 공개하는 방식으로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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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독립 언론기관이라고 주장하는 '아스트라'는 지난 22일(현지시간) 텔레그램 채널에 북한군으로 보이는 군인들이 건물 외부에 서 있는 모습을 촬영해 게시했다. 아스트라는 해당 영상에 대해 "블라디보스토크 '세르기예프스키에 위치한 러시아 지상군 제127자동차소총사단 예하 44980부대 기지에 북한군이 도착한 장면"이라고 설명했다. 아스트라(ASTRA) 텔레그램 채널 캡처.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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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제재, 군수 지원 확대 등 검토



백악관은 우선 독자 제재 대상을 확대하는 것으로 초기 대응 방향을 잡는 분위기다. 커비 보좌관은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안보 지원을 확대하고, 며칠 내로 러시아의 전쟁을 지원하는 이들을 겨냥해 중대 제재를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제재 대상에 북·러 고위급을 포함하는 식으로 정치적 압박을 가할 가능성도 있다.

커비 보좌관이 ‘안보 지원 확대’를 언급한 만큼 나토를 중심으로 군수 지원 등을 늘릴 가능성도 점쳐진다. 그는 “만약 북한군이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싸우는 데 배치된다면 그들은 정당한 표적이 된다”고도 했는데, 우크라이나가 미국 등으로부터 관련 정보를 공유받아 전장에서 활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북한군을 표적화할 수도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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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국가안보 소통보좌관.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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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T "北 파병, 분수령적 순간"



북한군이 러시아 전력에 가세해 우크라이나 전황을 바꾸거나 전쟁 장기화에 주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면 국제사회의 대응 수위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뉴욕 타임스(NYT)는 북한군 파병을 “분수령적(watershed) 순간”이라고 표현했다.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는 NYT에 “북한 군인들이 푸틴을 위해 죽어가는 상황이 현실화한다는 건 우리가 이제는 완전히 다른 시대에 살게 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그는 CSIS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도 북한군 파병은 “루비콘 강을 건넌 것”이라며 이는 결국 북한의 고립 심화, 한국-나토 간 관계 강화, 한국의 대우크라이나 지원 확대 등으로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당장 유럽에선 ‘맞파병론’도 다시 고개를 든다. 서방산 장거리 미사일로 러시아 본토를 타격할 수 있도록 허가해달라는 우크라이나의 요청은 더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커비 보좌관은 “아직 북한군 파병의 정확한 성격을 모른다”며 “대통령의 정책에는 변화가 없다”고 답했다. 파병된 북한군의 실제 역할에 따라 판단을 달리할 여지도 있어 보이는 대목이다.

미 의회에선 북한군을 겨냥한 군사 행동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공화당 소속 마이크 터너 정보위원장(11선)은 이날 성명에서 “북한군이 러시아 영토에서 우크라이나를 공격할 경우, 우크라이나가 미국이 제공한 무기로 대응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북한군이 우크라이나의 영토에 진입한다면 미국은 북한군에 대한 직접적인 군사 행동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적반하장' 러시아…"가혹 대응할 것"



러시아는 북한의 파병에 "허위, 과장 정보"라며 적반하장식 태도까지 보였다.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이날 "(북한군이) 어디에 있는지는 평양에 물어보라"고 잡아뗐다. 이어 "러시아는 국가와 국민의 안보를 위협할 수 있는 모든 조치에 가혹하게 대응할 것"이라며 "한국이 신중하고 상식적으로 판단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는 한국이 모호성을 유지하며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도 선택지에서 배제하지 않고 있는 데 대한 반발로 보이는데, 그만큼 러시아가 피하고 싶은 상황이란 방증이기도 하다.



우방과 '단합 대응' 유력



정부는 러시아의 행동에 따른 ‘단계별 조치’를 원칙으로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와 공동으로 대응 방안을 마련한다는 입장이다. 다만 미 대선이 변수다. 대선 결과에 따라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미국의 정책 기조 자체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불확실성이 큰 상황이라 대선 전 중요한 결정이 나오기는 어려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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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3일 김정은 당 총비서가 전략미사일기지들을 시찰했다고 보도했다. 노동신문.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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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대응이 한·러 관계에 미칠 여파와 국제 정세 등을 따져 정교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병철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한국이 필요 이상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에 발을 들일 경우 자칫 미·러 사이에서 흔들리다 국익만 해칠 수 있다”며 “살상 무기 지원 등 적시에 꺼낼 수 있는 카드를 미리부터 소진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워싱턴=김형구 특파원 kim.hyounggu@joongang.co.kr,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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