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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4 (목)

AI에 압도당할 운명? [장석준의 그래도 진보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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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지난 14일(현지시각) 스웨덴 스톡홀름 왕립고등과학원에서 올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가 발표되고 있다. 스톡홀름/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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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준 | 출판&연구집단 산현재 기획위원

14일 스웨덴 왕립과학원은 미국의 세 경제학자, 다론 아제모을루, 사이먼 존슨, 제임스 로빈슨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 발표했다. 이 연구팀은 경제 발전과 정치-사회제도의 관계를 연구해왔고, 왕립과학원도 이 방면의 기여가 시상 이유라고 밝혔다. 이들의 저서 가운데 이 주제를 탐구하는 것은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오래도록 고전으로 읽힐 가능성이 큰 저작은 오히려 노벨경제학상 수상 이유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권력과 진보’(김승진 옮김, 생각의힘, 2023)다. 아제모을루와 존슨이 집필한 이 책의 주제는 과학기술 발전이 사회제도, 사회세력과 맺는 관계다.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와는 달리 이 책에서 저자들은 주류 경제학에 최대한 부합하는 설명 틀을 고안해내려고 애쓰지 않는다. 위대한 사회과학 저작들의 공통된 접근법, 즉 역사의 유장한 흐름 속에서 현재의 좌표를 확인하려는 태도를 취한다.



700쪽이 넘는 책의 내용을 짧은 지면에 요약하기란 불가능하지만,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현재의 과학기술 발전 방향과 속도가 필연적이라는 익숙한 주장에 대한 신랄한 논파다. 저자들은 기계가 인간을 추월하고 완전히 대체하는 ‘특이점’을 향해 달려가는 게 인류의 숙명이라는 식의 주장을 역사적 사실을 들어 논박한다.



이미 과거 산업혁명 과정에서 과학기술 발전을 담당한 사회 집단은 같은 주장을 반복한 바 있다. 기계가 인간을 대체하는 것이 곧 ‘진보’라는 이런 논리에 따라 더 거대한 사회 집단인 노동 대중이 참혹한 재난과 파국에 직면했다. 그러나 비록 상당한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어쨌든 사회의 반격이 시작됐다. 노동조합 등의 성장을 통해 ‘길항 권력’이라 불릴만한 새로운 요소가 대두했고, 이들의 개입에 의해 기술 발전과 적용이 과거와는 다른 방향으로 펼쳐지기 시작했다. 19세기 초에 노동자의 한 세대를 파멸로 몰아넣었던 기계화가 20세기 중반에는 괜찮은 새 일자리 창출과 복지 확대로 이어졌다. ‘필연적’ 경로 따위와는 아무 상관 없는, 길항 권력의 개입에 의한 사회적 선택의 결과였다.



지금 인공지능 개발을 막무가내로 몰아붙이는 사회 집단은 이제 인류에게 남은 일은 인공지능에 압도당하는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뿐이라는 21세기판 ‘진보’ 서사를 강요한다. ‘권력과 진보’는 이런 서사가 피지배 집단의 이의 제기를 선제적으로 제압하는 ‘설득 권력’의 사례라고 일갈한다. 이런 설득 권력의 현혹에서 벗어나 과학기술 발전에 개입할 길항 권력을 복원하는 첫걸음은 다름 아니라 이 ‘진보’ 서사에서 깨어나는 것이다. 저자들은 “테크 업계의 억만장자와 그들이 말하는 의제에 홀려 있는 데서 벗어나야 한다”고 노골적으로 주장한다.



이것은 과학기술 발전에 찬물을 끼얹는 ‘문과생들’의 도발에 불과할까? 아니다. ‘권력과 진보’가 환기하는 것은 바로, 인공지능으로 향하는 거대한 여정의 출발점이 된 사이버네틱스의 창시자 노버트 위너가 일찍이 1949년에 예언적으로 제시한 양자택일이다. “우리는 겸손하게 기계의 도움을 누리면서 좋은 삶을 살 수도 있고, 거만해져서 죽을 수도 있다.” 겸손해져야 할 것은 과학기술 발전을 담당하는 사회 집단, 즉 엘리트들이고, 선택의 주체는 노동 대중을 포함한 더 거대한 사회 집단, 즉 사회 전체여야 한다. 이것이 우리 시대에 누구도 결코 쉽게 무시할 수 없을 ‘권력과 진보’의 뜨거운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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