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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4 (목)

‘차가운 똥’과 돌봄 위기 [똑똑! 한국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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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10·29 국제돌봄의날 조직위원회 제공


한겨레

조기현 | 작가



“돌봄은 내가 다 하는데, 아파트 단지 안에서는 남편을 ‘효자’라고 불러요.”



시어머니를 돌보고 있는 장년 여성의 말이었다. 시어머니는 거동이 힘들고 인지가 저하된 상태여서 24시간 돌봄이 필요했는데, 남편은 돌봄을 분담하려고 하지 않았다. 어머니의 ‘치매 증상’을 좋지 않은 모습으로 여기며 보고 싶어 하지 않는 눈치였다. 하지만 아파트 단지 내 이웃들은 아픈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효자라며 그를 칭찬했다. 돌봄을 하지 않으면서 사회적 인정은 받고 싶은 남편이 야속하기만 했다. 남편의 외면과 이웃들의 찬사 사이에서 돌봄을 짊어지는 건 자신뿐이었다.



돌봄이 버거울 때마다 그는 요양원을 얘기해보자고 했지만, 그때마다 남편은 극구 반대했다. 오랜 갈등 끝에 평일 낮 시간대에 이용하는 주간보호센터를 다니게 됐다. 처음 다닌 주간보호센터에서는 시어머니의 기저귀가 자주 식어 있었다. 시어머니가 똥이 차갑게 식어가는 것을 다 느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화가 났다. 몇번을 부탁하고 시정을 요청했지만 바뀌지 않았다. 새로운 주간보호센터를 찾아다녔다. 그저 똥이 식을 때까지 두지 않고 바로 기저귀를 갈아주는 곳이면 된다는 마음으로 사방을 살폈다. ‘차가운 똥’을 느끼지 않는 건 그가 생각하는 최소한의 존엄이었다.



지금 우리에게 최소한의 존엄이 보장되고 있을까? 노인장기요양기관 99% 이상이 민간에서 운영된다. 온전한 돌봄을 위해 노력하는 이들도 있지만, 대다수는 지출하는 비용을 줄이고 이윤을 남기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렇게 시장화된 돌봄은 악순환의 고리를 만든다. 돌봄노동자는 저임금과 불안정한 상태에 시달리고, 요양기관은 사람들이 요양보호사를 안 하려고 한다며 인력 수급을 어려워하며, 돌봄이 필요한 사람은 제때 양질의 돌봄을 받지 못한다. 이런 악순환은 노인이 아예 돌봄을 받지 못하거나, 가족이 과도한 돌봄을 짊어지는 결과를 낳는다. ‘차가운 똥’은 바로 이런 돌봄의 시장화의 한 증상이 아닐까.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돌봄 위기에 대한 논의가 많아졌다. 그저 돌봄을 맡아주는 기관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는 우리가 겪는 돌봄 위기가 해소되지 않는다는 것을 목격했다. 하지만 팬데믹 이후 우리의 돌봄은 얼마나 바뀌었을까? 돌봄의 공적 책임을 강화했던 서울시사회서비스원이 문을 닫았고, 돌봄노동을 여성 이주노동자에게 싼값에 넘기려는 흐름이 두드러진다. 지난 8월8일에 금융위원회는 보험회사의 요양서비스산업 진출을 허용하기까지 했다. 돌봄의 시장화를 넘어 금융화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된 것이다. 돌봄노동을 더 값싸게 구매할 수 있고 보험회사의 이름을 단 대규모 프랜차이즈 요양기관이 생긴다면 지금 우리가 겪는 돌봄 위기는 해소될 수 있을까?



우리는 지금 이 돌봄 위기를 해소하는 방안을 단지 돌봄을 맡아줄 곳을 늘리는 식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돌봄을 맡아줄 곳이 없다는 표면적인 위기 아래에 있는 돌봄의 부정의를 응시해야 할 때다. 왜 우리가 수행하는 돌봄의 가치는 이리도 값싼 취급을 받는지, 왜 여성들에게 더 많은 돌봄 부담이 주어지는지, 왜 국가가 이토록 돌봄의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하는지, 무엇보다 왜 우리는 서로와 자기 자신을 돌보지 못하게 됐는지. 만약 이런 고민을 막연하게 하고 있었다면 돌아오는 10월29일에 제대로 해보자.



2023년 7월24일에 열린 유엔 총회에서 10월29일을 ‘국제 돌봄의 날’로 하자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돌봄의 공공성을 강화하고 유급돌봄노동자와 무급돌봄자의 가치 인정과 권리 보장을 인식하자는 국제 기념일이다. 올해는 한국의 시민사회에서 이날을 처음으로 기념하는 해다. 그를 위해 10월28일~11월2일을 돌봄주간으로 정했다. 통합돌봄을 위한 토론회, 돌봄을 주제로 한 영화 상영, 돌봄 시민들의 증언대회, ‘제대로 된 돌봄을 요구하는 돌봄 시민 행진’까지 주간 일정이 가득하다. 팬데믹이 남긴 교훈을 제대로 곱씹고 시민들이 목소리를 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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