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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3 (수)

[사설] 버티기 선택한 윤 대통령, 이번에도 실기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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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윤석열 대통령이 10월 21일 대통령실 파인그라스에서 한동훈(가운데) 국민의힘 대표와 면담을 하고 있다. 왼쪽은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 [대통령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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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표 더 이탈하면 치명상인데 전향적 조치 없어





주요 고비 때마다 터닝 포인트 놓치며 화 키워



그제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의 회동이 아무 성과 없이 끝나 큰 후폭풍이 몰아닥칠 조짐이다. 두 사람의 회동은 김건희 여사 문제의 해법을 도출할 계기란 기대를 받았으나 서로의 입장 차이만을 확인하고 돌아섰다. 회동 뒤 양측에서 흘러나온 얘기를 종합하면 윤 대통령의 상황 인식은 종전과 달라진 게 조금도 없는 듯하다.

회동에서 윤 대통령은 김건희 여사 특검법에 대해 “우리 의원들이 헌정을 유린하는 야당과 같은 입장을 취할 경우 나로서도 어쩔 수 없겠지만 나는 우리 당 의원들을 믿는다”고 말했다. 지난 4일 국회의 ‘김건희·채상병 특검법’ 재표결에서 최소 4표 이상의 여당 이탈표가 나왔다. 다음 표결에서 이탈표가 불과 4표만 더 나오면 정권이 치명상을 입을 수 있는 절체절명의 위기다. 그런데 당사자인 윤 대통령이 아무런 전향적 조치 없이 그냥 여당에 지켜달라고만 하는 건 매우 무책임한 자세다. 여당 의원들도 전부 독립적인 정치인인데 민심이 계속 나빠지면 동요하지 않을 재간이 있겠나. 이런 와중에도 윤 대통령은 “어처구니없는 의혹에 대해선 대통령실에서 입장을 내면 당에서도 같이 싸워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니 참으로 안이한 상황 인식일 뿐이다.

한 대표가 직접 실명을 거론하며 쇄신을 요구한 ‘김건희 라인’ 문제에 대해서도 윤 대통령은 “누가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는지 소상히 적어서 비서실장에게 알려주면 잘 판단해 보겠다”고 말했다. 바꿔 말해 뚜렷한 불법이 없으면 교체할 수 없다고 못 박은 셈이다. 하지만 이는 정치의 문제와 법의 문제를 혼동한 것이다. 국민은 ‘김건희 라인’이 위법 행동을 해서가 아니라, 그 인사들을 통해 김 여사가 비공식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부분을 문제삼고 있는 것이다.

한 대표의 특별감찰관 임명 건의에 대해서도 “여야가 협의할 문제”라고 국회에 공을 떠넘겼다. 민주당이 북한인권재단 출범에 협조해 줘야 특별감찰관을 임명하겠다는 것인데 현실적으론 임명할 뜻이 없다는 소리로 들린다. 윤 대통령은 한 대표와 회동이 끝난 뒤 곧바로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를 불러 대통령실 참모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했다. 앞으론 한 대표는 건너뛰고 국회 일은 추 원내대표와 협의하겠다는 공개 시그널이다. 이런 식으로 여당 대표와 불화를 키우는 게 정권에 보탬이 될지 매우 의문이다. 이렇게 된 이상 여당 중진들이라도 중지를 모아 대통령을 만나 해법을 권고해야 하지 않을까.

윤 대통령은 주요 고비 때마다 터닝 포인트를 놓쳐 화를 키웠다. 명품백 사건이나 이종섭 호주대사 임명 논란 등이 그런 경우다. 이번에 명태균씨의 카톡 폭로로 메가톤급 이슈가 된 김건희 여사 문제는 대통령 취임 후 가장 심각한 형국이다. 이번에도 실기하면 다음 기회는 영영 없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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