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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2 (화)

이슈 김정은 위원장과 정치 현황

"가족도 모르게 1만명 사지 보내고…" 김정은 잔혹 '애민 코스프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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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월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대규모 열병식에 등장한 북한 특수작전군의 모습. 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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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러시아에 대규모 지상군 파병을 감행한 가운데 이 자체가 잔혹한 북한 정권의 인권 유린 실태를 보여준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크라이나 측은 규모를 1만명까지도 추산하는데, 이들이 선택권 없이 당의 명령에 의해 사지로 몰려 총알받이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이런 와중에도 지난 7월 말에 수해를 입은 북부 국경지역 복구 현장을 찾아 ‘애민 지도자’ 이미지 연출에 골몰했다.



수해 석 달 뒤에야 자강도 방문



노동신문은 22일 김정은이 전날 자강도 피해복구 건설 현장을 돌아봤다고 보도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건설 성과에 대해 만족을 표시하면서도 "건설물의 질을 경시하고 있는 편향들이 일부 제기되고 있는데 바로 잡아야 한다"며 "사소한 결점도 완전무결하게 극복하고 완벽성 보장에 더 큰 힘을 넣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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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신문은 22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전날 "자강도 피해복구 건설현장을 현지지도했다"면서 "11월 초까지 끝내게 되어있던 재해 지역 살림집 공사를 12월 초까지 연장하여 완결할 것"을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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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어 "11월 초까지 끝내게 되어 있던 재해 지역 살림집 공사를 12월 초까지 연장하여 완결할 데 대하여 결정할 것"이라면서 "살림집 건설이 지연되게 된 것과 관련해 평양에 체류하고 있는 수해지역 주민과 학생들의 생활 보장에 지장이 없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김정은의 이런 행보는 국제사회의 전방위 제재와 경제난으로 인한 물자 부족으로 수해 피해 복구가 더딘 상황에서 민심 이반을 막기 위한 연출로 보인다. 직접 현장을 찾는 애민 지도자 이미지를 부각하려는 것이다.

다만 김정은이 자강도를 찾은 건 수해가 난 지 3개월이나 지나서다. 북한 군수공업의 '메카'로 불릴 정도로 군수 관련 시설이 집중된 곳이라 방문을 꺼렸다는 분석이었다.

앞서 국정원은 지난 8월 말 국회 정보위원회 보고에서 북한 북부지역에서 발생한 수해와 관련해 "실제적 물적 피해가 많은 곳은 자강도로 분석되는데, 자강도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과 외부 노출이 없다. 상당히 흥미롭고 특이하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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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러시아 극동연해주 우수리스크 소재 군사시설에 북한군으로 추정되는 400여명의 병력이 운집해 있는 모습. 국정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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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친지도 모르는 깜깜이 파병



이런 연출이 무색하게 북한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전쟁에 가담한 것은 그 자체로 불법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이미 유엔 총회에서 국제법 위반으로 규정했다. 또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은 한반도와 유럽을 넘어 전 세계 평화에 심각한 위협을 가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으로 보는 시각이 대체적이다.

이 과정에서 이뤄지는 인권 유린도 간과할 수 없다. 탈북민 등의 증언에 따르면 해당 장병들은 가족들에조차 파병 사실을 알리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탈북민 출신 북한학 박사인 김병욱 북한개발연구소장은 "통상적으로 볼 때 파병 장병들은 가족들과 서신 교환도 차단됐을 가능성이 크다"며 "북한 당국이 파병 사실을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가족들 사이에선 관련 소식이 퍼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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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11일 북한 특수작전부대 훈련기지를 현지 시찰하면서 전투원들의 훈련실태를 점검하는 모습.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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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 사이에선 김정은의 이번 대규모 파병 결정은 러시아와 피로 맺은 혈맹 관계를 구축하는 것보다는 외화벌이 목적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체제 유지와 통치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장병들이 죽거나 다칠 가능성이 큰데도 파병을 결정했단 얘기다.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는 주민들을 얼마든지 희생시킬 수 있는 독재자 김정은의 잔학성이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정보 역유입, 체제에 위협될 수도



하지만 체제 보위라는 당초 의도와 달리 이번 대규모 파병이 역설적으로 체제 균열의 위험성을 키울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러시아 측이 장병 통제에 힘을 보태겠지만, 해외에 나가면 아무래도 정보 차단이 느슨해지고 이들을 완전히 통제·감시하는 것도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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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군이 획득한 북한제 KN-23 잔해의 모습. 국정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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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북한군의 주력인 MZ 세대의 이탈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1990년대~2000년대 출생한 북한 MZ 세대는 이념에 매몰되기보다는 시장에 친화적인 세대로 평가받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크라이나 매체 키이우 인디펜던트는 지난 21일(현지시간) 군 정보 소식통을 인용해 러시아 당국이 쿠르스크주(州)에서 근무지를 이탈한 북한군 병사 18명을 체포해 구금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전했다.

북한 당국이 파병 사실을 철저히 숨기고 있지만 최근 외부 정보 유입이나 내부 정보 공유가 활발한 점을 고려할 때 주민들에게 알려지는 것은 시간 문제라는 게 정부 안팎의 관측이다. 장병들의 희생이 알려질 경우 북한 내부에 미칠 파급력은 물론이고, 전장에서 외부 문화를 경험한 장병들이 북한으로 복귀했을 때 미칠 수 있는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이들은 해외 파견 노동자들과 더불어 북한 당국이 장기적으로 떠안아야 할 체제 내 균열 요소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오경섭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북한이 전범국가인 러시아에 대규모 병력을 보낸 건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라며 "장병들이 전장에서 참혹하게 희생된다면 내부 동요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정영교·이유정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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