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0.22 (화)

‘김건희 주가조작’ 수사지휘권 박탈되자 ‘탈원전’ 수사 드라이브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2020년 10월22일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이 국회 대검찰청 국정감사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하면서 주먹을 불끈 쥐어보이고 있다. 공동취재사진단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검찰총장은 법무부 장관의 부하가 아니다!”



2020년 10월22일 국회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은 이 말을 시작으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향해 날 선 비난을 쏟아냈다. 앞서 추미애가 ‘윤석열 사단’을 해체한 검찰 인사와 검찰총장에 대한 수사지휘권 발동 등으로 자신을 압박한 것에 대한 불만을 공개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그의 비난은 추미애에 그치는 게 아니라 그 너머 문재인 정권까지 겨냥한 것이었다. 윤석열은 조국 법무부 장관을 겨냥한 검찰 수사에 불만을 품은 친문들이 추미애를 내세워 자신을 제거하려는 것이라고 봤다. 반면 친문들은 윤석열이 딴마음을 먹고 정권을 향해 칼을 겨누려 한다고 의심했다.



(한겨레 ‘오늘의 스페셜’ 연재 구독하기)



한겨레

2020년 7월25일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를 듣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윤석열 사단’ 포진한 대전지검에 ‘탈원전’ 수사 맡겨





감사원의 ‘월성원전 1호기 조기 폐쇄’ 감사 결과가 검찰에 넘어온 시기는 이처럼 ‘추(미애)-윤(석열) 갈등’이 정점을 향해 치달을 때였다. 최재형 감사원장은 문재인 정권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던 윤석열 사단에 훌륭한 먹잇감을 던져 준 셈이었다. 최재형은 2020년 10월19일 감사보고서가 의결되자마자 감사 자료를 대검에 전달하게 했다. 공문서 전달은 보통 등기로 한다. 하지만 이 자료는 감사원 직원이 직접 챙겨 들고 대검을 찾아갔다. 등기로 보내는 데 걸리는 시간까지 아끼려는 의도였다. 최재형은 하루라도 빨리 검찰이 수사에 착수하기를 바랐던 것이다.



감사 자료를 넘겨받은 대검은 이를 대전지검에 배당했다. 이 배당이 의미하는 바는 컸다. 이미 월성원전 1호기 관련 고발 사건 수사가 서울중앙지검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통상적으로는 관련 수사가 진행 중인 검찰청에 사건을 배당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최종 결정권자인 윤석열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수사 대상인 산업통상자원부가 대전지검 관할이라는 이유를 들어 그곳으로 보낸 것이다. 물론 속내는 달랐다. 대전지검에는 윤석열 사단 소속 검사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우선 대전지검장이 대표적 ‘친윤’ 검사로 알려진 이두봉이었다. 이두봉은 2018년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 시절 1·4차장으로 함께 일했고, 윤석열 검찰총장 취임 이후 단행된 인사에서 검찰총장 참모인 대검 과학수사부장에 임명됐다. 이두봉은 월성원전 사건을 역시 ‘친윤’인 이상현 대전지검 형사5부장에게 배당했다. 이상현은 2013년 윤석열이 팀장을 맡았던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팀에 파견됐었고, 2019년에는 울산지검 공공수사부장을 맡아 문재인 정권을 겨냥한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수사를 한 경력이 있었다.



대전지검에는 또 ‘윤의 심복’ 이복현(현 금융감독원장)이 있었다. 이복현은 한동훈, 이원석과 함께 윤석열이 가장 신뢰하는 후배로 알려져 있었다. 지금 한동훈과 이원석은 윤과 적대적(한)이거나 소원한(이) 관계가 됐지만, 이복현은 여전히 윤의 신임을 받고 있다. 당시 대전지검 형사3부장이던 이복현은 탈원전 수사팀에 소속되지는 않았으나 수사를 열심히 돕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나중에 ‘수사의 절반은 이복현이 다 했다’는 말까지 돌았다.



한겨레

2022년 2월18일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경북 상주시 풍물시장에서 유세를 마친 뒤 어퍼컷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단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야권 대권 후보 1위’ 여론조사 뒤 산업부 압수수색





반면, 서울중앙지검장은 문재인의 대학 후배인 이성윤이었다. 이성윤은 대표적 ‘친문 검사’로 찍혀 윤석열 사단과 사사건건 대립했다. 그는 감사원이 넘긴 월성원전 사건을 서울중앙지검에 배당해 달라고 대검에 요구했다. 수사팀에서 이미 고발인 조사를 마친 상태였다. 하지만 윤석열이 이를 들어줄 리 없었다. 서울중앙지검에 배당하면 사건이 흐지부지될 것으로 의심한 것이다. 게다가 이성윤은 윤석열의 부인 김건희와 장모 최은순이 연루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수사를 지휘하고 있었다. 또 한동훈과 채널에이(A) 기자의 ‘검언유착’ 의혹 수사도 그의 지휘 아래 있었다. 이미 한동훈의 아이폰을 압수하는 과정에서 몸싸움이 벌어지는 등 한바탕 난리가 벌어진 뒤였다. 이성윤은 윤석열 사단에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국감에서 추미애를 맹비난한 윤석열은 일주일 뒤인 2020년 10월29일 대전지검을 방문한다. 검찰총장의 일선 검찰청 방문은 흔히 있는 일이지만, 이 방문은 때가 때인 만큼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윤석열은 “과거에 (내가) 근무했고, 총장으로서 애로사항도 들어 보고, 등도 두드려 주려고 왔다”며 통상적인 방문인 것처럼 말했다. 그러나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언론은 없었다. 언론은 월성원전 사건 수사와 연관시켜 보도했다. 실제로 7일 뒤인 11월5일 대전지검은 산업부와 한국수력원자력 본사를 전격 압수수색했다. 무려 100명 넘는 검사와 수사관이 투입돼 이틀 동안 진행된 대규모 압수수색이었다.



이보다 이틀 전인 11월3일 윤석열은 충북 진천 법무연수원에서 열린 신임 부장검사 리더십 교육 강연에서 “국민이 원하는 진짜 검찰개혁은 살아 있는 권력의 비리를 눈치 보지 않고 공정하게 수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나중에 대선 출마할 때 업적으로 내세운 ‘살권수’(살아 있는 권력 수사)를 띄운 것이다. 앞서 국정감사에서 추미애를 맹공한 후 여론조사에서 야권 대선 주자 선호도 1위를 기록한 직후였다. 문재인 정권을 겨냥한 수사가 여론의 지지를 받을 것이라는 확신이 든 걸까. 윤석열은 탈원전 수사의 타깃을 청와대로 정조준하기 시작했다.





2020년 총선 여당 압승으로 수세 몰린 윤 사단, ‘탈원전’ 호재 만나





윤석열은 2021년 3월4일 대선 출마를 위해 검찰총장을 사퇴한 뒤 언론에 ‘탈원전 수사가 정치참여의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고 말한 적이 있다. 수사를 시작하자 자신에 대한 감찰과 징계 청구 등 압박이 들어와 사퇴를 결심했다는 것이다. 정당한 수사 지휘에 대해 정권이 부당한 방법으로 사퇴 압력을 가했다는 취지다. 실제로 대전지검의 산업부 압수수색 10여일 후(2020년 11월17일) 법무부 감찰관실 소속 검사 2명이 대검에 감찰 공문을 전달한 것을 시작으로 초유의 검찰총장에 대한 감찰이 개시됐다.



그러나 윤석열의 탈원전 수사 드라이브는 수사 목적으로만 한 게 아니다. 앞서 감사위원회에서도 직권남용이나 배임 혐의가 인정되지 않아 검찰 고발 및 수사 의뢰가 부결된 사건이었다. 아무리 수사 경험이 많은 검찰총장이라도 다른 기관이 수사 참고 자료로 넘긴 것을 근거로 대대적인 수사를 지시한 것은 다른 의도가 있지 않고서는 설명이 안 된다.



단서는 2020년 10월19일 추미애가 발동한 수사지휘권에 있다. 추미애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에 대해 검찰총장 부인과 장모가 수사 대상이라는 이유를 들어 검찰총장의 수사지휘권을 박탈했다.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이 독립적으로 수사한 뒤 그 결과만 총장에게 보고하도록 했다. 추미애는 앞서 7월2일 ‘검언유착’ 사건에 대해서도 똑같은 내용의 수사지휘권을 발동했다. 윤석열로서는 자신의 최측근(한동훈)에 이어 부인 사건까지 지휘권을 박탈당한 것에 위기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2020년 4·15 총선에서 여당(더불어민주당)이 ‘조국 사태’에도 불구하고 예상 밖의 압승을 거두는 바람에 윤석열 사단은 매우 위축돼 있었다. 당시 윤석열은 야당(미래통합당)이 이길 것으로 예상했었다. 탈원전 수사는 이처럼 수세에 몰린 윤석열이 공세로 전환할 수 있는 호재였다.



한겨레

조상원 서울중앙지검 4차장검사가 지난 17일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수사 결과 발표를 마치고 인사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성윤, “도이치 사건 검사들 수사 의지 잃었다”





추미애는 ‘도이치’ 수사팀이 검찰총장의 눈치를 보느라 수사를 못 하고 있다고 봤다. 실제로 이 사건 수사는 2020년 4월7일 최강욱 당시 열린민주당 후보가 김건희를 고발한 후 9월25일 고발인 조사만 한차례 한 뒤로 진척이 없었다.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었던 이성윤은 자신이 쓴 책 <그것은 쿠데타였다>에서 “실질적인 인사권을 가진 총장이 서슬 퍼렇게 내려다보고 있는데 어느 검사가 나서서 감히 총장 부인을 수사하고 기소한단 말인가” “서울중앙지검장의 부하 검사들은 수사 의지를 잃었고 그들에 대한 인사권도 없는 나는 이른바 왕따가 되어 있었다”라고 했다.



이성윤은 애초 이 사건을 형사1부에 배당했다가 2020년 9월 형사6부로 재배당했다. 형사1부는 ‘검언유착’(채널에이 사건) 수사에 올인하느라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수사를 제대로 하려면 수사 경험이 많은 검사들로 구성된 반부패부에 배당해야 했다. 하지만 ‘서슬 퍼런’ 윤석열이 지켜보는 상태에서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다. 이성윤은 추미애가 윤석열의 수사지휘권을 박탈한 뒤(2020년 11월5일)에서야 사건을 반부패강력수사2부에 배당할 수 있었다. 그마저도 수사가 본격화된 건 윤석열이 검찰총장을 사퇴한 뒤였다.



고발된 지 4년여만인 2024년 10월17일 검찰은 김건희 여사를 무혐의 처분했다. ‘찐윤’으로 구성된 서울중앙지검 수뇌부와 수사팀은 “주가조작 사실을 몰랐다”는 대통령 부인의 말이 맞다고 한다. 김건희 소환 조사를 주장했던 ‘원조’ 친윤들이 쫓겨난 뒤 임명된 검사들이다. 당시 이원석 검찰총장은 이 인사에 반대했다. 윤 대통령이 임명한 박성재 법무부 장관은 “총장 요구를 다 받아들여야 하는 건 아니다”라고 했다. 인사를 결재한 윤 대통령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4년 전 “검찰총장은 장관의 부하가 아니다”라는 말은 왜 한 걸까.



다음 회로 이어집니다.





이춘재의 ‘검찰 수사의 재구성’은?



‘검찰’하면 떠오르는 말은 ‘법치주의’입니다. ‘법에 의한 지배’를 의미하는 법치주의는 민주주의를 떠받치는 기둥입니다. 검찰에 막강한 권한을 준 이유도 법치주의를 통해 민주주의를 지키는 데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검찰은 오히려 민주주의를 위협합니다. 대통령 명예훼손 수사를 한답시고 정권에 비판적인 기자들을 탄압합니다.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의 핵심 정책(공약)에 사법적 잣대를 마구 휘두르기도 합니다. 검찰개혁을 추진했던 전 정권 인사들에 대한 보복 수사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반면,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 부부를 비롯한 제 식구는 철저하게 감쌉니다. 법치를 가장한 ‘가짜 법치주의’입니다. 이런 검찰 수사에는 책임을 물어야 하지 않을까요. 주권자인 국민의 시각에서 수상한 검찰 수사를 톺아보겠습니다.





논설위원 cjlee@hani.co.kr이



▶▶권력에 타협하지 않는 언론, 한겨레 [후원하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

▶▶행운을 높이는 오늘의 운세, 타로, 메뉴 추천 [확인하기]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