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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1 (월)

"트리플 스타, 이 노래와 닮았다"…'흑백요리사'를 보며 떠올린 음악 [스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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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저격] (글 :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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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쏟아지는 콘텐츠 홍수와 나도 헷갈리는 내 취향, 뭘 골라야 할지 고민인 당신에게 권해드리는 '취향저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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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요리사>의 잔향이 가시지 않는다. 결승전은 물론이거니와 1차 예선 탈락자 중에서도 스타, 혹은 셀럽이 탄생했다. 출연자들이 풀어놓은 비하인드 스토리는 업로드와 동시에 유튜브 인기 급상승 동영상이 된다. 인기 출연자들의 레스토랑은 예악이 하늘이 별 따기가 된 나머지, 예약권이 암거래되고 있다. 한 끼에 몇십만 원짜리 디너를 프리미엄까지 주고 먹다니, 과연 최악의 경제위기가 맞나 싶기도 하지만 사회적 스트레스와 우울도가 높은 상황에서 그렇게라도 자기만족도를 높일 거리가 나타난 게 다행이라고 봐야 할까.

맛집탐방가이자 요리 애호가인 나에게 기존 요리 프로그램이나 유튜브 채널은 정보제공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먼 옛날 요리 연구가 한복려가 나오던 프로그램부터 <편스토랑>까지 마찬가지다. 요리하는 법을 알려주고 그걸 따라 하면 그만인, 소중하지만 도파민 분비에 도움이 되지는 않는 그런 정도. 그런데 <흑백요리사>는 요리 서바이벌, 또는 오디션을 표방한 캐릭터 서바이벌이었다. 다양한 미션을 설정해 놓고 참가자들이 어떤 캐릭터를 구축하는지, 요리라는 과정을 통해 그들이 어떤 서사를 만들어내는지를 보여주는 전개였다. <오징어게임>을 비롯한 서바이벌 배틀물이었던 것이다. 이 프로그램이 순위를 막론하고 많은 스타를 배출할 수 있었던 요인이다. 인기를 끄는 모든 오디션 프로그램과 마찬가지로, 최종 결과가 나온 후에도 순위를 놓고 시청자들의 갑론을박이 멈추지 않은 이유 또한 여기서 기인할 것이다. 단순히 '요리'에만 포커싱을 뒀다면 감정이입을 할 일도 없을 테니 말이다.

출연진의 다양한 캐릭터, 요리 과정과 언행을 통해 구축되는 서사를 보면서 나는 그들이 음악 같다고 생각했다. 시각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요리 프로그램과 청각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음악은 상상을 통해 다른 감각을 소환한다는 점에서 공통적이기 때문일까. 여러 뮤지션과 음반이 떠올랐지만, 그중 몇 명과 몇 장을 매치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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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결승에 진출하진 못했지만 가공할 조리 기술과 섬세함을 보여준 트리플스타는 존 콜트레인의 <Giant Steps>를 떠오르게 한다. 어린 나이에 미슐랭 3 스타 레스토랑에서 경력을 쌓은 과정부터 그렇다. 텔로니어스 몽크, 디지 길레스피, 그리고 마일즈 데이비스가 떠오르는 색소포니스트를 품었다. 재즈를 넘어 대중음악사에 길이 남을 걸작, 마일즈 데이비스의 <Kind Of Blue>에 참여한 이듬해 내놓은 솔로 작품이 <Giant Steps>이다.

▶ 존 콜트레인 <Giant Steps>

찰리 파커가 개척한 비법을 완성했을 뿐 아니라 '콜트레인 체인지'라 불리는 특유의 연주를 더했다. 마일즈가 선법을 도입하여 조바꿈을 자유롭게 했다면, 그는 12음계 간의 새로운 질서를 발견했다. 메인 테마만 던져놓고 즉흥 연주를 통해서, 게다가 콜트레인의 현란한 속주까지 곁들여 만들어지는 세계는 재즈를 또 한 번 새로운 곳으로 인도했다. 함께 녹음하는 뮤지션들도 콜트레인의 연주에 어떻게 화답해야 할지 몰라 침묵하는 게 음반에서 느껴질 정도다. 밤새도록 신라 금속공예 장인처럼 재료를 손질하고, 자기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미분된 재료로 복잡하지만, 감탄이 나오는 요리를 적분하는 그의 모습이 꼭 <Giant Steps>시절의 존 콜트레인과 같다. 복잡하되 직관적이고, 섬세하되 단아한 음악과 요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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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T였기에 가능했던 비속어를 남발하고 그 누구보다 강렬한 얼굴과 본명(윤남노)으로 첫 회부터 주목을 끈 요리하는 돌아이. 초기의 힙합과 펑크에 가깝다. 그러나 결승행 티켓을 놓고 끝까지 다툴 수 있던 건 거친 언행에 가려진 노력과 열정이 있기 때문이리라. 그런 모습에 반한 사람이라면 한국 펑크 불후의 명반인 노브레인의 <청년폭도맹진가>를 권하고 싶다. 한국 펑크가 태동하던 90년대 후반 '바다 사나이'로 데뷔, 2000년 첫 정규앨범으로 낸 작품이다. 더블 앨범으로 구성된 이 음반에는 25년이 지난 지금 들어도 세기말 청춘들의 여과 없는 분노와 패기가 고스란하다. 독립군 군가에서 영감을 받은 동명의 타이틀 곡뿐만 아니라 '잡놈 패거리' '호로자식들' 같은 질주하는 에너지가 필터링 없이 뿜어져 나온다.

▶ 노브레인 <청년폭도맹진가>

이 앨범은 한국 대중음악 명반을 뽑는 작업에서 가장 최상위에 랭크되곤 했는데, 그 이유는 단순히 펑크의 거친 모습만 담겨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전면에 배치된 펑크 곡들이 지나간 후 등장하는 '이 땅 어디엔들' 같은 블루스 기반의 트랙, '성난 젊음' '너 자신을 알라' 같은 스카의 그루브, 그리고 '청춘은 불꽃이어라' 같은 발라드적 노래까지. 당시까지, 그리고 지금까지의 인디 밴드들이 도달하지 못한 다양한 장르적 소화력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팀전에서 안절부절못하는 모습, 다른 셰프들에 비해 정교함은 떨어져도 맛으로는 최상위 라운드까지 올라가는 모습, '돌아이'라는 언행에 가려진 서사와 섬세함이 딱 <청년폭도맹진가>다. 이 앨범이 LP로 재발매됐을 당시, 노브레인의 첫 기타리스트이자 작사 작곡을 주도했던 차승우의 말을 인용한다. "이것은 '응답하라 OOOO' 같은 류의 신파가 아닙니다. 당신의 '젊은 영혼에 불을 댕길' 펑크록 앨범입니다." 스스로를 검열하고 가공하여 완성된 모습만을 SNS에 전시하는 요즘, 요리하는 돌아이는 인류가 탄생한 이래 늘 존재해 왔던, 열혈 청춘의 음과 양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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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에드워드 리. 요리가 문학이자 철학이며 재미교포 서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 경외의 주인공. 남들이 다른 요리사와 경쟁하고 심사위원을 의식할 때 스스로를 증명하고 탐구했던 사람. 재료의 본질을 재해석하고 응용해서 새로운 결과물을 만들어낸 사람. 두부 요리 전 과정을 하나의 코스로 구현하는 그를 보면서 떠오른 앨범은 하나다. 라디오헤드의 <OK Computer>. 블러와 오아시스가 주도하던 브릿팝 시대의 흐름을 바꾸고, 1997년이라는 세기말의 정서를 형상화했으며, 향후의 록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방향을 제시한 명반 말이다. 마일즈 데이비스의 <Bitches Brew>를 비롯하여 엔니오 모리코네, 1970년대 독일 크라우트 록 같은, 당대의 록과는 상관없는 음악을 바탕으로 하였으나 처음 들었을 때는 그 영향을 알아채기 힘든 독창적 해석력에 놀랐다. 역시 당대의 록의 고정관념을 깬 악기 사용 및 사운드 배치에 또 한 번 빠져들었다.

첫 싱글 'Paranoid Android'는 6분 30초에 달하는 대곡이지만 크게 3개의 파트로 나눠진 구성 내내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게 하지 않는다. 무척이나 실험적이지만, 'No Surprise' 'Karma Police' 같은 아름다운 곡들이 여전하고, 그 외의 곡들도 대중이 좋아할 만한 곡이 아닌 대중이 좋아하게 만든 곡들로 가득하다. 노엄 촘스키의 철학,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가이드' 같은 인문학 레퍼런스를 따온 가사들은 난해하면서도 명징한 시적 은유로 듣는 이를 상상에 빠지게 한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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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구 기자 so5wha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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