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가족] 세대 걸쳐 대장·위·자궁에 암 발생하면 유전 변이 의심해 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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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을 피할 수 없는 운명으로만 받아들이는 시대는 지났다. 유전성 암은 더욱 그렇다. 어떤 암이든 일찍 찾아낼수록 치료가 잘돼 생존율이 올라간다. 하지만 진단 기술이 발전했음에도 유전성 암 가족력을 의심하고 검사받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린치 증후군이 대표적이다. 대장암과 자궁내막암 등 여러 암이 조부모·부모·형제·자매에서 최소 두 세대에 거쳐 발생하면 '린치 증후군'의 강력한 신호다.
우리 몸은 하루 수천 번의 DNA 복제 과정에서 오류가 생겨도 이를 스스로 고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수리공 역할을 하는 관련 유전자(MLH1·MSH2·MSH6·PMS2 등)에 돌연변이가 생기면 DNA 복구가 제대로 안 된다. 암이 발생할 위험이 커진다. 이들 유전자 변이가 유전되는 게 린치 증후군이다. 대장암·자궁내막암이 대표적이지만 난소·위·췌장·요관·뇌·담관·소장 등도 린치 증후군 관련 암이다. 이런 암들이 연달아 발생할 위험이 일반인보다 크다. 린치 증후군 진단이 늦어지면 다른 암을 예방할 기회를 놓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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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소·췌장·요관도 관련 암
린치 증후군은 낯설다. 그래서 대개 첫 번째 암 진단 시점에서는 놓치기 쉽다. 린치 증후군 유전자는 젊은 나이에 암 발병 위험을 높이는 경향이 있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또 첫 번째 암이 4기 상태에서 진단되면 다른 암이 발병하기 전에 환자는 사망할 가능성이 높다. 린치 증후군과의 연관성을 밝히기 어려워 자녀들도 모르고 살아간다. 이는 린치 증후군 보인자인 건국대병원 혈액종양내과 방경혜 교수의 실제 경험이다.
방 교수는 자신이 린치 증후군 보인자임을 2년 전에 알았다. 그는 "아버지가 10여 년 전 56세에 처음 대장암 진단을 받았을 땐 린치 증후군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하지만 6년 전 육종암, 2년 전 요관암까지 세 가지 다른 원발암이 생기자 유전성 암을 의심했고, 유전자 검사로 린치 증후군임을 확인했다. 돌이켜보니 할머니는 70대 후반에 위암 4기로 돌아가셨다"고 했다.
린치 증후군은 50%의 확률로 자녀에게 유전되므로 방 교수도 곧바로 검사를 받았고, 보인자로 확인됐다. 방 교수는 "확진 이후엔 매년 위·대장 내시경을, 2~3년마다 컴퓨터단층촬영(CT)을 한다. 전체적인 건강검진을 1년마다 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유전 정보는 암 예방, 치료 전략을 세우는 효과적인 이정표다. 미국 국립종합암네트워크(NCCN)에 따르면 대장암과 자궁내막암 발병 위험이 높은 린치 증후군 보인자들은 20대부터 대장 내시경을, 30대부터는 위 내시경을 1~2년마다 받길 권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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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아 선별해 질환 대물림도 막아
유전성 암은 가족력 검사를 통한 선제적 대응이 곧 치료다. 다른 가족 구성원의 생명을 구한다. 후손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방 교수는 "의료진이 먼저 린치 증후군 의심 상황이면 이를 염두에 두고 유전자 검사를 안내해야 한다. 환자에게 가족력이 있고 젊은 나이에 암 진단이 됐거나 두 곳 이상 장기에 암이 발생(중복암)했으면 집중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한다"며 "환자 스스로는 의심하기 어려워 모르고 사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실제 유병률은 보고된 것보다 훨씬 높을 것"이라고 봤다.
린치 증후군이 의심되는 암 환자가 유전성 암으로 확진되면 직계가족(부모, 형제자매, 자녀)도 검사해볼 수 있다. 린치 증후군 같은 유전성 암 검사는 전문의 처방이 필요하다. 암 환자가 아니면 검사비는 비급여다. 전체 유전자 검사는 비급여 기준 120만~150만원이지만 특정 유전자 변이만 검사하는 건 30만원 정도다. 방 교수는 "단순한 궁금증으로 린치 증후군인지를 알아보는 건 불필요한 검사로 바람직하지 않다. 유전성 암은 가족력을 바탕으로 진단돼야 한다. 감별해야 할 유전성 암이 많다"고 설명했다.
배아·태아의 유전자 검사 가능 질환에 린치 증후군을 포함한 개정안은 지난해 7월 통과됐다. 린치 증후군 보인자도 고민을 덜고 아이를 가지는 길이 열렸다. 착상 전 유전 검사(PGT-M)로 변이 없는 배아를 선별한다. 이 과정에 방 교수의 역할이 컸다. 의료인으로서의 사명감과 동병상련인 환자에게 공감하는 바가 컸다. 보건복지부 공청회에 참석하고 검사 항목 확대의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알리는 데 목소리를 높였다.
유전적 소인이 있어도 암이 나타나는 시기와 정도는 다르다. 생활습관도 암 발생에 영향을 미친다. 린치 증후군이면 암 발병 연령이 40, 50대라지만 평균일 뿐이다. 방 교수는 "부모님이 암 경험 없는 65세 이상이어도 유전성 암 가족력이면 건강검진을 촘촘히 받을 필요가 있다. 나이와 상관없이 암 발병 우려가 높으므로 내 몸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알고 대비한다는 개념으로 접근하는 게 좋다"고 권고했다.
이민영 기자 lee.mi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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