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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0 (일)

지구에서 100광년, 이곳에 ‘우주 한증막’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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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J 9827d’ 외계 행성 대기 분석

수증기로 꽉 차 있어…이례적 현상

중심별과 가까워 온도 400도 이상

‘지구형 생명체’ 존재하기는 어려워

물 기반 다른 외계행성 연구 발판

경향신문

지구에서 100광년 떨어진 우주에 존재하는 외계 행성 ‘GJ 9827d’ 상상도. 행성 전체를 감싼 대기 성분 대부분이 수증기인 것으로 밝혀졌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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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미래의 지구, 전 세계적인 병충해로 곡식 생산량이 갈수록 줄어든다. 대부분의 작물은 사라지고 남은 것은 옥수수뿐이다. 인류는 수십년 뒤 생존을 장담할 수 없는 처지에 빠진다.

그러던 어느 날, 태양계 행성인 토성 주변에서 돌파구가 발견된다. ‘웜홀’이다. 웜홀은 우주의 특정 공간을 잇는 일종의 지름길이다. 인간이 속한 은하계에서 다른 은하계로 단 수십 분 만에 이동할 수 있다. 빛의 속도로도 수백만년은 걸릴 거리다. 웜홀로 이동해 숨쉴 공기와 마실 물이 있는 외계 행성을 찾는다면 인류는 새로운 삶을 누릴 기회를 잡는 것이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 비행사였던 쿠퍼(매튜 맥커너히 분)와 물리학자인 브랜드(앤 해서웨이 분)는 웜홀을 통과할 탐사대원으로 선발된다. 이들의 도착지 중 하나는 ‘밀러 행성’이다.

그런데 희망을 잔뜩 품고 밀러 행성에 도착한 이들은 곧 당혹스러움에 빠진다. 마른 땅 하나 없이 넓게 펼쳐진 바다만 있었기 때문이다. 시시때때로 고층 빌딩 높이의 쓰나미까지 닥치는 밀러 행성은 ‘물의 지옥’ 이었다. 미국 공상과학(SF) 영화 <인터스텔라> 얘기다.

밀러 행성은 과학 이론이 깔리기는 했지만 영화적인 상상력을 중심으로 묘사된 곳이다. 하지만 실제 우주는 인간의 상상보다 훨씬 희한하다. 대기 대부분이 뜨거운 수증기로 이뤄진, 숨막히는 한증막 같은 외계 행성이 존재한다는 관측 결과가 나왔다. 이런 행성이 발견된 것은 우주 연구 역사상 처음이다.

최신 우주망원경으로 확인


이달 초 캐나다 몬트리올대와 미국 미시건대 등에 소속된 연구진은 지구에서 100광년 떨어진 외계 행성 ‘GJ 9827d’가 수증기로 가득 찬 대기를 갖고 있다고 밝혔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천체물리학 저널 레터스’ 최신호에 발표됐다.

지구처럼 딱딱한 지각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는 GJ 9827d는 2017년 케플러 우주망원경으로 발견됐다. 지름은 지구의 약 2배, 질량은 약 3배다. 그동안 우주과학계는 수증기로 둘러싸인 외계 행성이 우주 어딘가 존재할 수 있다고 예상은 해왔다. 하지만 관측을 통해 직접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발견된 외계 행성의 대기 성분은 대부분 수소와 헬륨이었다. 특이한 일이 생긴 것이다.

직접 가보지도 않은 GJ 9827d 대기가 수증기로 가득찼다는 사실은 어떻게 알았을까. GJ 9827d가 공전하는 중심 별의 빛이 GJ 9827d 대기를 통과할 때 나타나는 특징을 NASA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으로 원거리 관측했기 때문이다. 2021년 지구에서 가까운 태양계 내 우주로 발사된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은 근적외선 감지기와 최신 분광기 등 성능 좋은 관측 장비로 무장하고 있다.

이런 관측 장비는 코로나19 바이러스와 만나면 붉은 줄이 생기는 검사 키트처럼 특정 기체를 만나면 고유한 신호를 뿜는다. 외계 행성에 날아가서 대기를 빨아들이지 않아도 우주망원경만으로 조사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올해 초에도 ‘허블 우주망원경’이 GJ 9827d에서 수증기를 탐지하기는 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대기에 수증기가 꽉 차 있는지, 아니면 소량만 첨가돼 있는 것인지 정확히 알기 어려웠다. 허블 우주망원경은 1990년에 발사된 구형 장비였기 때문이다. 최신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이 GJ 9827d 대기가 수증기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외계 생명체 연구 발판


수증기는 물에서 비롯된다. 물은 생명의 근원이다. 그렇다면 GJ 9827d에는 생명체가 살고 있을까. 연구진은 “GJ 9827d 환경은 우리가 익숙하게 생각하는 것과는 크게 다르다”고 밝혔다. 신중한 태도를 보인 것이다.

이유가 있다. GJ 9827d 표면 온도는 400도 이상일 것으로 추정된다. 납도 녹일 온도다. GJ 9827d가 수증기로 꽉 차 있는 것도 이런 고온 때문이다. GJ 9827d와 중심 별 거리가 지구와 태양 거리의 5%밖에 안 될 정도로 가까워서 생기는 일이다.

이렇게 뜨거운 곳에서는 적어도 지구에서 볼 수 있는 생명체는 살기 어렵다. 몸을 이루는 기본 성분인 단백질이 변형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구진은 ‘워터 월드’, 즉 물 성분으로 꽉 찬 외계 행성을 확인한 것에 중요한 의의를 두고 있다. 온화한 온도와 액체 상태의 물을 지닌 다른 외계 행성이 어딘가에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는 희망을 품고 탐색을 이어갈 동기가 생긴 것이다.

연구진은 “GJ 9827d에 대한 연구는 향후 생명체 서식이 가능한 새로운 형태의 외계 행성을 찾기 위한 중요한 단계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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