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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텔의 흥망성쇠를 남일 보듯 할 수 없는 건 삼성전자가 떠올라서다. 최근 뉴욕 현지에서 만나는 국내 기업 관계자들은 입을 모아 '삼성전자 위기론'을 이야기한다. 삼성전자 위기론에는 일개 기업의 문제가 아닌 한국 경제 전반의 위기로 전이될 수 있다는 우려가 깔려 있다. 교역으로 먹고 사는 우리나라의 수출에서 삼성전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20% 가까이 되니 이 같은 우려는 과장이라 할 수 없다.
최근 삼성전자 주가 하락과 3분기 실적 부진은 회사 안팎에서 불거져 온 위기론에 불을 붙였다. 반도체 부문 실적 악화가 우려를 고조시키고 있다. 우선 오는 2030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분야에서 대만의 TSMC를 따라 잡겠다며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019년 내놨던 '시스템 반도체 2030' 비전은 도달할 수 없는 목표가 됐다는 게 중론이다. 경쟁업체 대비 최소 1~2세대 앞섰던 D램 시장에서의 공정 우위 또한 이제는 고대역폭메모리(HBM)에선 아예 경쟁업체에 밀리고 있고, 범용 칩에서도 공정 우위를 자신할 수 없는 상황이다. 시가총액 추이를 살펴보면 삼성전자 위기론은 더욱 명확해진다. 삼성전자는 2019년 11월 TSMC에 사상 처음으로 시가총액을 추월 당했고, 양측 간 시총 격차는 이제 도저히 좁힐 수 없는 지경까지 왔다. 이달 18일(현지시간) 기준 TSMC의 시가총액은 1조414억 달러(약 1426조2000억원)로 삼성전자 시총 2585억 달러(약 353조4000억원)의 4배 수준이다. 삼성전자는 5년 전과 마찬가지로 스마트폰·가전·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글로벌 1위, 파운드리 분야에서 2위지만 2019년과는 상황이 크게 다르다. 그동안 삼성전자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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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안팎에선 이 회장의 사법 리스크가 전사적 경영에 악영향을 주며 삼성전자의 기업가 정신이 사라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른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이 회장과 조직 전체가 사법 리스크 대응에 모든 힘을 소진했다. 지난 8년간 이 회장이 감옥에 두 차례 다녀오고 재판에 정신을 쏟으면서 삼성 특유의 도전과 혁신의 DNA는 실종됐다. 과감한 결단과 투자, 선택과 집중을 가능케 한 오너 경영의 장점도 발휘되기 힘들었다. 이 과정에서 리스크 관리, 보신주의에 갇히며 삼성전자 내부의 문제도 쌓여만 갔다. 엔지니어 보다는 재무 전문가들의 입김이 세지며, 기술 초격차 보다 매출과 영업이익 등 재무제표에 공을 들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삼성전자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주요 경영진을 손에 꼽으라면 황창규, 진대제, 권오현 등 공대 출신이 가장 먼저 언급된다. 일각에선 주 52시간제 시행에 따른 업무 강도 약화, 사내 노조 출범에 따른 경영 차질 등도 주요 이유로 손꼽지만 비슷한 환경에서도 성과를 내고 있는 SK하이닉스와 비교해 볼 때 주된 이유라고 보기 어렵다.
보호무역과 산업정책이 뉴노멀이 돼 가는 '탈(脫)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아래 대한민국 경제에서 삼성전자의 역할론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미 대선 후보들이 모두 '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우선주의)'를 강조하는 상황에서 삼성전자가 가진 반도체 경쟁력은 대미 교역에서 한국이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강력한 지렛대 역할을 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의 압도적 우위 및 파운드리 시장에서의 약진을 기반으로 미국, 일본, 대만 등과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며 핵심 국가로 인정받았다. 이 같은 상황에서 삼성전자가 인텔처럼 몰락의 길을 걷는다면, 한국 경제가 설 자리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재벌 밀어주기'라는 비난을 감수하고서라도 정부와 경제계가 삼성전자 살리기에 모든 역량을 동원해야 하는 이유다.
뉴욕=권해영 특파원 rogueh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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