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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0 (일)

중국은 왜 한국에 하급 대사를 보낼까[노원명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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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싱하이밍 전 주한 중국대사. 그의 후임으로 어느 정도 중량급 인사가 임명될지 관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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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싱하이밍 전 대사가 이임한 이후 주한 중국대사 자리는 3개월간 공석으로 있다. 대사 자리를 몇개월씩 비워두는 것은 어느 나라에서나 종종 있는 일이다. 국내 언론은 한중 관계 개선을 위해 이번에는 중량급 인사를 주한 대사로 보낼 가능성이 있다는 식의 희망 섞인 전망을 내보내곤 한다. 한국은 신임 중국대사 자리에 윤석열 대통령 측근인 김대기 전 대통령 비서실장을 내정했다. 상당한 중량급이다.

중국은 한중 수교 이후 부국장급 대사를 줄곧 보내다 2010년 장신썬 대사에 이르러서야 한국대사에 국장급을 보내고 있다. 싱하이밍도 국장급이었다. 통상 미국에는 차관급을 보낸다. ‘혈맹’ 북한의 대사 왕야쥔도 차관 출신이다. 주일 대사인 우장하오는 차관보급이다.

싱하이밍 후임으로 한때 유력하게 거론되었던 것이 천하이 전 미얀마 대사다. 지금은 에티오피아 주재 대사로 가 있다. 한국이 미얀마·에티오피아와 동급? 그렇게 단순한 문제는 아니겠지만 ‘홀대’ 당하는 기분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듣기로 중국은 대(對)한국 외교의 의전 순위를 베트남과 동일하게 가져간다고 한다. 상대적 한국 외교 경시는 사회주의 중국의 특성인가, 아니면 보다 뿌리가 깊은가.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 주도로 청과 일본 사이에 체결된 1895년 시모노세키 조약은 300여년에 걸친 청과 조선 간의 ‘종번 관계’를 종식했다. 그 1조는 “중국은 조선국의 완전무결한 독립과 자주를 확실히 인정한다. 따라서 이러한 독립과 자주를 훼손하는 중국에 대한 조공, 의례는 완전히 중단한다”고 되어 있다. 조공과 청을 상국으로 모시는 의례는 중단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수백 년 종번 질서에 익숙한 관념이 하루아침에 바뀔 리 없다. 청과 조선은 상호 대등한 국가관계 수립에 그후로도 어려움을 겪었다.

1898년 대한제국 정부는 여느 국가들처럼 북경에 외교 대표를 파견하고 한성에서 중국 대표를 맞겠다는 의사를 북경에 전달했다. 당시 협상에 관여했던 당국자 당소의는 중국 조정에 이렇게 건의했다. “과거 주인과 노복의 차이를 보여주고 제도가 훼손되지 않게 조선에 다른 나라에 파견하는 3급 대표와 달리 4급 관원을 보내자.” 여기서 다른 나라는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미국 일본 등 청나라가 ‘대등 국가’로 인정할수 밖에 없었던 당시 열강을 가리킨다. 대한제국은 그들과 같은 급이 아니니 격을 낮춰야 한다는 차등적 발상은 중국과 한반도가 처음 대등한 외교를 시작하던 시점에 이미 존재했다. 청대 중한관계사 전문가인 왕위안충 미국 델라웨어대 교수가 쓴 ‘조선은 청 제국에 무엇이었나’에 나오는 얘기다.

청의 종번 체제에서 조선은 베트남, 미얀마, 오키나와(유구) 등과 함께 ‘외번’에 속한다. 외번은 독립국은 아니지만 징세와 국방, 기타 내정에 있어 자주권을 갖는 ‘오랑캐’를 말한다. 몽골, 티베트 등 중국이 직접 관리를 보내 통치하는 오랑캐는 ‘내번’이다. 이 ‘외번’의 성격을 놓고 청나라와 서양 열강들은 여러 번 충돌했다. 가령 ‘조선은 우리의 속국이지만 자주국이다. 자주국이지만 독립국은 아니다’는 청의 설명을 열강은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들의 베스트팔렌적 세계관에서 모든 국가는 형식적으로 평등한 독립국이거나 아니면 식민지였다. 그들이 보기에 청에 대한 조선의 사대는 형식적인 것이었고 자체적으로 굴러가는 조선은 독립국이었다. 그런 나라가 조약 제의를 거부하며 ‘우리에겐 외교권이 없다. 청에 물어보라’하고 청은 ‘조선은 자주국이지만 독립국은 아니다’고 하니 말장난처럼 여겨졌을 것이다.

사회주의 국가인 현대 중국이 베트남과 우리를 외교 의전상 동급으로 분류한다는 사실은 묘한 기분이 들게 한다. 주 미얀마 대사가 한때 주한 대사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조선과 베트남, 미얀마는 청의 주요 외번이었다. 조선의 지식인들은 ‘외번 중에서는 우리가 으뜸’이라며 우쭐해했고 실제 조공의례에서 조선이 표준이 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청의 관점에서 조선은 동쪽 속국, 베트남은 남쪽 속국이었다.

말하고 나니 기분이 언짢아진다. 그러나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중국은 지금도 그런 종번 의식을 종종 드러내곤 한다. 몇 년 전 시진핑이 트럼프를 만나 한국을 ‘한때 중국의 속국’으로 표현한 것이 단적인 예다. 보통 중국인들의 인식이 그럴 것이다. 그런 중국에 가서 ‘중국은 큰 봉우리, 우리는 작은 나라’라고 한 대통령도 있었다.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는 중국에 ‘너희는 큰 봉우리’라고 하면 그건 비굴이지 예의가 아니다. 그게 예의가 되던 시절이 있기는 했다. 조선의 왕이 청의 황제를 우러러 ‘큰 봉우리’라 칭송하는 것은 종번의 예의였다. 대한민국 대통령씩이나 되어서 그런 짓을 하고 다닌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에 한편으로 비참해지고 한편으로 정신이 번쩍 든다. 우리가 스스로 존중하지 않으면 중국은 영원히 우리를 깔 볼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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