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도 그렇다. “북한이 핵무기 사용을 기도한다면, 그날이 바로 북한 정권 종말의 날”이 될 거란다. 북한이 수십개의 핵무기를 한국을 향해 사용한다면, 그 결과는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1945년 이후 과학기술의 발전을 생각해보면, 북한의 핵무기 공격 능력은 가공할 수준일 거다. 1945년엔 히로시마, 나가사키에서 20만명 이상이 죽었지만, 서울 상공에서 핵무기가 터진다면….
끔찍한 참화를 겪고 난 다음에 북한 정권을 종말시키는 게 어떤 의미일까? 수백만명의 국민이 죽고 난 다음에 북한 정권을 없애버린다면, 그건 어떤 의미가 있을까? 대통령의 말만 믿고 생업에 종사하고 단잠을 이룰 수 있을까? 만약 북한이 자살을 결심한다면? 대통령의 생각이 틀렸다면? 의문은 계속되고, 불편한 마음은 진정되지 않는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대한민국을 공격할 의사가 전혀 없다”면서도 “우리 국가를 반대하는 무력사용을 기도한다면” ‘핵무기 사용’을 포함한 “모든 공격을 주저 없이 사용할 것”이라고 했다. 굳이 자살을 결심하지 않더라도, 한국이 북한을 반대하는 무력 사용을 한다면, 언제든 전쟁이 터진다는 거다. 주고받는 말이 거칠어지면 행동도 거칠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두렵다.
당장 북쪽은 남쪽에서 보낸 무인기(드론) 때문에 세게 반발하고 있다.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은 연일 담화를 내놓으며 “무모한 도전 객기는 대한민국의 비참한 종말을 앞당길 것”이라 했다. 남북이 상대의 종말을 말하며 도발적 언사를 주고받고 있다. 이번에도 다만 언쟁만으로 끝날 수 있을까?
북한이 경의선, 동해선 남북 연결도로를 폭파할 때, 한국군은 대응 사격을 했다. 다행히 북한의 군사적 대응이 없었지만, 왜 이런 위험천만한 대응을 했는지 모르겠다.
그동안 전쟁이 없었던 것은 남북과 주변 국가 사이에 ‘전쟁 억지력’이 작동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북관계는 엉망이 되었고, 주변 정세도 나빠졌다. 한국은 한·미·일 동맹을 강화하는 쪽으로만 치닫고, 북한과 러시아는 강력한 군사동맹을 과시하고 있다.
그러니 억지력은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는 취약한 힘에 불과하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지만, 단박에 현실이 되었다. 전쟁은 963일째 계속되고 있다. 전쟁은 시작보다 끝내는 게 더 어렵다는 말처럼 두 나라는 전쟁의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안보 위협이 커지고 있지만 윤석열 정권은 목소리를 높이는 것 말고는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고 있다. 게다가 윤 대통령은 군 복무 경험이 전혀 없는 미필자다. 군과 관련해서는 국군의날 기념식에 참석했다거나 몇 가지 보고서를 읽은 게 전부일 거다. 상황이 이래도 우리는 우리의 운명을 윤 대통령에게 맡겨야 한다. 80% 이상의 국민이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데도 그렇다. 누군가의 말처럼 “무식”한 데다 “철없이 떠드는” 사람에게 우리의 운명을 맡겨야 한다.
노벨 문학상을 받게 된 한강 작가는 “러시아, 우크라이나 또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전쟁이 치열해서 날마다 주검이 실려 나가는데 무슨 잔치를 하겠느냐”는 말로 기자회견을 대신했다. 이런 마음,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 사람들의 고통을 진지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전쟁은 곧 공멸이다. 북한 지도부만 사라지는 게 아니라, 수백만명, 어쩌면 그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거나 다칠 거다. 산업기반은 죄다 파괴되고 도시는 제 기능을 할 수 없게 된다. 한반도 전역이 사람이 살 수 없는 끔찍한 지옥이 될 것이다.
그러니 이제라도 이성을 되찾아야 한다. 상황 관리를 치밀하게 하면서 위기를 줄여나가야 한다. 대통령과 그의 참모들부터 말조심하는 게 변화의 시작이다. 이런 기본조차 할 수 없다면, 그만두는 게 맞다. 더 이상 국민의 생명을 두고 위험한 도박을 벌여서는 안 된다. 하긴 윤 대통령은 자신에게 맞지 않는 옷을 너무 오랫동안 입고 있었다. 국민은 물론 대통령 부부에게도 불행한 일이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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