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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7 (목)

이태원 참사 때 “국가 기능 안 했다“는 법원…경찰 ‘최고 윗선’엔 무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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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입구에 2022년 11월22일 시민들이 놓고간 꽃다발과 추모메시지가 가득 놓여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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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당시 경찰 ‘최고 윗선’ 책임자로 검찰 수사심의위원회(수사심의위) 끝에 재판에 넘겨진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에게 무죄가 선고됐다. 지난달 법원은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에게 유죄를 선고하며 ‘참사를 예견할 수 있는 정보가 있었지만 이에 대비하지 않았다’고 판단했지만, 김 전 청장은 참사를 예견할 정도로 구체적 정보를 파악하지 못했다고 봤다. 법원은 “국가 기능이 제대로 작용하지 않았다”고 지적하면서도, 책임 소재는 일선 경찰서로 한정 지었다.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2부(재판장 권성수)는 17일 이태원 참사 당시 부실 대응한 혐의(업무상 과실치사상)로 기소된 김 전 청장과 류미진 당시 서울청 112상황관리관(총경), 정아무개 당시 서울청 112상황팀장(경정)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김 전 청장에 대해 “검사가 제출한 증거를 보더라도 참사 사전 대응이나 당일 단계에서 서울경찰청장으로서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주의의무를 위반했다고 보기에는 증명이 부족하다”며 “사전대책 마련 가능성이 있었다고 단정하기 쉽지 않다”고 밝혔다. 류 총경 등에 대해선 조처에 부실한 점이 있지만 “이것과 인명피해 발생·확대 사이에 인과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앞서 지난달 30일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재판장 배성중)는 “언론보도, 정보보고, 과거 핼러윈데이 치안대책 등으로 이태원 일대에 심각한 피해가 발생할 위험이 있음을 예견할 수 있었음에도 다중 인파 운집으로 인한 안전사고 대책은 전혀 마련하지 않았으며 혼잡경비와 정보 경력 전원을 집회·시위 현장에만 배치했다”며 이 전 용산서장에게 금고 3년을 선고한 바 있다.



두 재판부 모두 서울경찰청과 용산경찰서에 “국민의 생명·신체를 보호하고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해야 할 임무”가 있다고 봤지만, 치안의 직접적 책임이 있느냐를 놓고 유·무죄 판단이 엇갈렸다. 치안의 일차적 책임은 용산경찰서에 있으며, 관내 31개 경찰서를 모두 챙기는 서울청은 용산서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게 이날 법원의 판단이었다. 안전대책을 마련하지 않은 데 대해 재판부는 “(용산서의 정보보고서나 당일 서장의 문자메시지를 종합해보면) 대규모 인파 사고 대비가 필요하다는 정보를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없었던 거로 보인다”며 “예외적 위험 상황이 있지 않는 한 용산서의 정보를 신뢰한 것이 잘못이라고 보긴 어렵다”고 밝혔다.



참사 당일 밤 9시 전후로 압사 위험 신고가 집중적으로 접수됐음에도 서울청 112상황실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데 대해서도 유사한 논리로 무죄를 선고했다. 법원은 “용산경찰서가 현장 조처한 뒤 종결 처리를 했고, 서울 시내 관할 31개 경찰서의 신고를 접수·처리해야 한다는 점 등을 봤을 때 특이사항이 감지되지 않는 신고를 일일이 재검토하기 힘들었을 거로 판단한다”고 짚었다.



유가족 법률 대리를 맡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의 백민 변호사는 “일차적으로 용산경찰서가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차적인 상급기관인 서울경찰청이 상황을 파악하긴 어려웠을 거란 결론으로 보인다”며 “법원은 서울경찰청의 참사 예견 가능성까지 인정하지 않았는데 이는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서울경찰청의 ‘구체적인 주의의무’를 둘러싸고는 검찰 수사단계부터 논란이 된 바 있다. 검찰 초기 수사팀은 김 전 청장을 구속 기소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지만, 한차례 수사팀이 바뀐 뒤로 검찰은 ‘구체적 주의의무가 없다’며 불기소 의견을 고수해왔다. 이후 검찰총장 직권으로 수사심의위가 열렸고, 심사위원들의 공소제기 의견에 따라 검찰은 김 전 청장을 기소했다.



다만 이날 법원은 김 전 청장에게 형사책임이 없다고 판단하면서도 국가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법원은 “안전관리가 이뤄질 거란 것이 일반 시민의 구체적인 기대와 신뢰였지만, 국가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실망과 깊은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며 “재난 예방과 관련된 경찰 조직 전반의 적극적이지 못하고 안일한 인식이나 문화가 있었다”고 밝혔다.



선고 직후 김 전 청장은 ‘무죄가 나왔는데 어떤 입장인지’, ‘유가족과 희생자에게 하실 말씀은 없는지’ 등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지 않고 법원을 빠져나갔다.



한겨레

이태원 참사 부실 대응 등 혐의로 재판을 받은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이 17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 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가족들의 거센 항의 속에 차량으로 향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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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가윤 기자 ga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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