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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7 (목)

주식 백지신탁 거부하며 사퇴한 구청장 … 유권자 우롱하나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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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헌일 서울 구로구청장이 구청장 자리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법원이 170억원 상당의 주식을 백지신탁해야 한다고 판단하자 재산을 지키기로 결심한 것이다. 제도를 무시하고 출마했다가 문제가 되자 공직을 저버린 행위는 유권자를 우롱하는 처사로 비판받아 마땅하다. 구청 행정이 차질을 빚게 되면 지역 주민만 고스란히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다만, 백지신탁이 인재의 공직 진출을 가로막고 있다는 일각의 지적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개선 방안을 검토해볼 만하다.

문 구청장은 사퇴 입장문에서 "법원에서 제가 주주로 있었던 기업과 구청장의 직무 사이에 업무 연관성이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며 "사심 없이 공명정대하게 구정을 수행해왔는데 매우 아쉽고 가슴 아픈 결정"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주식백지신탁심사위원회는 문 구청장이 가진 '문엔지니어링' 주식이 공직자 업무와 상충한다고 보고 해당 주식을 백지신탁하라고 결정했다. 정보통신 설계·감리 회사인 문엔지니어링은 철도청 공무원 출신인 문 구청장이 1994년 인수해 현재까지 최대 주주로 있다. 심사위원회 결정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지만 1·2심 모두 패소했다. ICT(정보통신기술) 공학박사인 문 구청장은 2022년 지방선거에서 구로구를 4차 산업을 선도하는 스마트도시로 바꾸겠다고 공약하며 당선됐다. 12년 만에 민주당 소속에서 국민의힘으로 구청장이 바뀌었지만, 결국 '백지신탁' 문턱을 넘지 못했다. 애초 기업인 출신을 공천하며 보유 주식 처분에 관해 검증하지 못한 소속 정당도 책임을 피할 수 없다. 내년 4월 보궐선거를 위해 수십억 원의 국민 세금만 또 투입하게 됐다.

'백지신탁 제도'는 공직자가 직위를 이용해 보유 주식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법안이나 정책 추진을 막기 위한 취지로 도입했다. 하지만 유능한 기업인 출신을 공직에 발탁하고 싶어도 보유 주식 처분 때문에 고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현장도 모르는 정치인·교수·관료 출신이 공직에 넘쳐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평생 일궈온 회사를 포기하지 않고도 나라를 위해 일할 수 있도록 제도 미비점을 손볼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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