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지구 내 식량난 등 인도주의적 위기가 심화되는 가운데 15일(현지시간) 남부 칸유니스에서 어린이들이 쓰레기를 뒤지고 있다. AFP연합뉴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대선을 20여일 앞둔 미국 정부가 이스라엘에 무기 지원을 제한할 수 있음을 시사하며 가자지구에서 인도주의적 상황을 조속히 개선하라고 압박했다.
15일(현지시간) 악시오스 등 미 언론 보도에 따르면 토니 블링컨 국무부 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국방부 장관은 지난 13일 이스라엘 국방 및 전략부 장관에게 보낸 공동명의 서한에서 30일 이내로 구체적인 조치를 취하라며 이같이 밝혔다.
미국은 가자지구 내 인도주의적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구체적인 조치로 ▲매일 최소 350대의 구호트럭 진입 허용 및 추가 국경검문소 개방 ▲구호품 이송을 위한 전투 일시 중단 ▲작전상 필요성이 없는 경우 민간인에 대한 강제 대피령 철회 ▲북부 고립 작전 중단 등을 거론했다.
미국은 이스라엘이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미 국가안보각서(NSM-20)와 법률에 따라 이스라엘 무기 지원에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NSM-20은 미국이 국외 안보 지원 시 국제인도법 등에 부합하도록 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매슈 밀러 국무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지난 4월에도 미국 정부가 유사한 서한을 이스라엘 측에 보냈고 이후 구호품 반입이 늘어났으나 오래 가지 못했다며 현재 구호품 보급이 “정점에 달했을 때보다 50% 이상 감소했다”고 지적했다.
최근 이스라엘 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결정하는 등 이란에 맞서 이스라엘 방어를 강화하기로 한 미국이 동시에 ‘무기 지원’을 빌미로 이스라엘을 재차 압박하고 나선 것은 그만큼 가자지구 상황이 심각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선을 앞두고 자국 내 비판 여론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이스라엘군이 가자 전역에 공습을 강화하는 한편 북부 지역 포위 작전을 벌이면서 인도주의적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 봉쇄된 북부 지역에는 보름 가까이 구호 트럭이 진입하지 못해 주요 병원과 피란민 대피소가 심각한 의약품 및 식수, 식량 부족을 겪고 있다.
스테판 뒤자리크 유엔 사무총장 대변인은 북부 지역에 이달 들어 총 54차례 구호품 반입을 시도했으나 이스라엘군이 단 한 차례만 허용했다고 밝혔다. 그는 “북부 주민들에게 배급할 식량이 거의 남지 않았고, 대부분의 빵집이 연료 부족으로 며칠 안에 문을 닫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미국은 이스라엘 정부가 가자 북부에 민간인 소개령을 내린 뒤 이곳을 완전히 봉쇄하고 구호품 공급을 중단하는 이른바 ‘굶겨 죽이기 작전’을 단행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북부를 떠나지 않는 자는 모두 하마스로 간주해 사살하거나 굶기겠다는 것으로, 국제사회에선 식량을 무기로 한 강제 이주가 그 자체로 전쟁 범죄라고 경고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미국 정부의 서한을 검토하고 있으며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 이스라엘 당국자는 “서한에서 제기된 우려들을 미국 측 카운터파트들과 함께 대처할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미국이 지난 1년간 수 차례 이스라엘에 경고 메시지를 보냈지만 이를 무시해온 이스라엘에 별다른 불이익을 주지 않았다면서 이번 경고 역시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론 데이비드 밀러 카네기국제평화재단 연구원은 “이란과 이스라엘 간 위기가 고조되는 상황에서 미국이 이스라엘에 대한 군사 지원을 제한한다는 것은 믿을 수 없는 일”이라고 미 뉴욕타임스에 말했다.
조 바이든 정부 고위 관리 출신으로 난민지원단체 대표를 맡은 제러미 코닌디크는 “만약 무기 지원 중단 경고가 사실이라면, 백악관은 훨씬 더 명확한 표현을 썼어야 했다”면서 “그렇지 않다면 이번 경고 역시 그간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무시해온 과거의 경고 만큼 효과를 내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은 이스라엘의 최대 무기 지원국으로, 최근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역대 어느 행정부도 나보다 이스라엘을 더 많이 돕진 않았다”고 밝힐 만큼 막대한 양의 무기를 공급해 왔다. 미 브라운대학 전쟁 비용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지난해 10월 전쟁이 시작된 이후 지난 1년간 이스라엘에 최소 179억달러(약 24조4000억원)에 이르는 군사 지원을 했다. 그러나 가자지구 내 민간인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며 무기 지원을 중단해야 한다는 국내 비판 여론에도 직면했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 매일 라이브 경향티비, 재밌고 효과빠른 시사 소화제!
▶ 창간 기념 전시 ‘쓰레기 오비추어리’에 초대합니다!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