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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6 (수)

53년 만에 ‘돈 받는 전시’로…간송미술관 새 장 여는 ‘근역화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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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간송미술관에서 열린 '위창 오세창: 간송컬렉션 감식과 근역화휘' 전시에서 관계자가 근역화휘를 살펴보고 있다. 근역화휘는 위창 오세창이 우리나라 역대 서화가의 회화 작품을 선별해 엮은 화첩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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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사설(개인) 박물관인 간송미술관이 1971년 제1회 ‘겸재전’부터 53년간 고수해온 ‘정규 기획전 무료 공개’ 원칙을 접고 16일 개막한 가을 기획전부터 유료(성인 5000원, 청소년·어린이 3000원)로 전환한다. 간송 컬렉션은 일제강점기 우리 문화재가 해외로 반출되는 것을 우려한 간송 전형필(1906~1962)의 유산으로 ‘훈민정음 해례본’ 등 국보·보물 42건이 포함돼 있다.

전인건 간송미술관장은 15일 기자간담회에서 “최근 인건비 상승 등 운영비용을 감안해 부득이하게 봄·가을 기획전의 입장료를 받기로 했다. 최대한 관객 부담이 되지 않게 검토한 결과 국공립박물관에 준하는 성인 5000원으로 결정했다”고 알렸다. 이렇게 확보한 수익을 “문화유산 유지·보존과 전시비용에 충당하겠다”고도 했다.

앞서 간송미술관은 서울 성북동 보화각을 떠나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특별전을 할 때나 지난 9월 개관한 대구 분관 전시에선 입장료를 받았지만 보화각 전시를 유료화하는 것은 처음이다. ‘우리 문화유산을 모두가 향유할 수 있게 하라’고 한 전형필의 유지를 받드는 취지에서였다. 하지만 3대째 계승 과정에서 경영상 어려움을 겪으면서 1938년 보화각 설립 후 86년 만에 이같이 결정했다. 전 관장은 “관람객들이 먼저 ‘도움이 되고 싶으니 소액이라도 받아라’라고 말해준 경우가 적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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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창이 혜원전신첩에 쓴 발문. 간송의 스승이었던 오세창은 간송이 살 작품을 감식하고 작품에 발문(跋文. 작품의 경위 등을 담은 글)이나 보관 상자에 상서(箱書: 상자 위에 쓰는 글씨)를 남겨 수장 내력 등을 파악할 수 있게 해 한국 회화사 연구에 중요한 족적을 남겼다. 사진 간송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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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윤복의 '혜원전신첩'에 수록된 월야밀회. 대구 간송미술관에서 혜원전신첩의 주요 그림들이 전시 중인 가운데 서울 보화각 전시에도 '월야밀회' '휴기답풍' 등 일부가 선보인다. 사진 간송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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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료 공개 첫 전시인 ‘위창 오세창: 간송컬렉션의 감식과 근역화휘’는 전형필의 스승이자 간송컬렉션 형성에 큰 영향을 끼친 오세창(1864~1953)의 탄생 160주년을 기념해 열린다. 3.1운동 때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33인 민족대표 중 한명이기도 한 위창은 그 자신이 빼어난 서예가·전각가였으며 뛰어난 감식안으로 간송이 수집한 서화 유물의 가치·의미를 정립하는 데 큰 도움을 줬다. 이번 전시엔 위창의 감식과 안목을 거친 대표적인 간송컬렉션 52건 108점이 선보인다.

특히 위창이 수집·제작해 간송이 소장하게 된 ‘근역화휘’가 7책본·1책본·3책본 등으로 이뤄져 총 3종류라는 사실이 처음 공개된다. ‘근역(槿域)’이란 우리나라를 뜻하는 표현으로 위창은 우리나라 역대 서화가의 그림과 글씨를 선별한 뒤 ‘근역화휘’라는 이름을 붙여 여러 차례 시리즈로 엮어냈다. 그 가운데 일부가 서울대박물관에 소장돼 있어 그간 출처 혼동을 부르기도 했다.

이번에 정리된 바에 따르면 1916년에 처음으로 고려시대부터 근대기까지 정리해 7책을 엮었고, 이듬해인 1917년 당대 글씨·그림을 1책에 추가해 엮으면서 ‘현대첩(現代帖)’이라는 부제를 달았다. 나머지 3책본은 1920년 이후 오세창이 경성의 수장가였던 김용진의 서화 수장품을 입수하면서 꾸며진 것으로 보인다. 똑같이 3책으로 구성된 서울대 소장본은 이 간송본보다 후대에 엮인 것으로 판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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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간송미술관에서 열린 '위창 오세창: 간송컬렉션 감식과 근역화휘' 전시에서 정명공주가 쓴 대형 서예 작품 '화정'이 공개되고 있다. 근역화휘는 위창 오세창이 우리나라 역대 서화가의 회화 작품을 선별해 엮은 화첩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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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에는 근역화휘에 수록된 작품 중 39건 46점이 나왔다. 고려 제31대 공민왕(1330∼1374)이 섬세하고 꼼꼼하게 양을 그려낸 ‘양도’(羊圖)부터 근대 서화가 이한복(1897∼1994)의 ‘성재수간’(聲在樹間)까지 고려부터 근대까지 서화가 작품들을 볼 수 있다.

전인건 관장은 “총 3종 11책의 근역화휘는 간송미술관이 50년 이상 서화 전시를 하는데 근간이 된 책”이라면서 “책의 형태로 공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연구자들에게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욱 전시교육팀장은 “수록된 작품들 면면이 대단한데 비로소 출처 연구가 이뤄짐으로써 국보·보물 등 국가지정문화유산에 등재 신청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됐다. 조만간 국가유산청과 관련 논의를 해가겠다”고 했다.

이번 전시는 지난 봄 ‘보화각(葆華閣) 1938: 간송미술관 재개관전’에 이어 간송미술관의 역사와 간송컬렉션의 형성 과정을 재조명하는 3개년 계획의 두 번째 기획전이다.

전시에는 위창이 간송에게 준 인장 44과 등 미공개 수집품들도 선보인다. 또한 그가 넘긴 서예 작품 중에 조선 선조와 인목황후의 첫째 딸인 정명공주가 쓴 대작 ‘화정’(華政)을 1층에서 만날 수 있다. 전시는 12월1일까지이며 온라인 사전예매(회차당 100명)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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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간송미술관에서 열린 '위창 오세창: 간송컬렉션 감식과 근역화휘' 전시에서 관계자가 오세창의 인장을 살펴보고 있다. 이 전시는 다음날부터 12월 1일까지 열린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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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란 문화선임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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