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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6 (수)

중앙이 쓸고 간 선거전, 앙상해진 생활정치 [아침햇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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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2일 부산시 금정구에서 시민들과 사진을 찍으며 자당 후보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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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현| 경제사회연구원장 겸 논설위원



이번 재보궐선거전은 대통령선거 만큼 치열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열기가 뜨거웠다. 서울시교육감을 제외하면, 4곳의 군수와 구청장을 뽑는 기초단체장 선거이지만 지난 봄 총선의 연장전인 양 달아올랐다. 한동훈, 이재명, 조국 등 각 당 대표가 현지에서 전력투구했고 중앙정치 이슈가 선거전을 압도했다. 지역선거에 ‘지역’이 없다는 게 어제오늘 얘기는 아니다. 그럼에도 내 고장을 살릴 인물이 누구일지는 뒷전인 선거를 계속할 거면 지방자치가 무슨 소용이 있나 싶다.



‘소멸’ 위기에 처한 지역뿐 아니라 수도권 지방자치단체도 중앙정치와는 다른 소명이 있다. 주민이 참여해 공동체를 튼실히 하고, 지역민의 삶을 실감 나게 개선하는 일이다. 고령화, 인구 감소, 경제적 쇠락을 체감하는 현장이기에 거대 담론이나 구조적 대응보다는 생활형 정치가 필요한 곳이다. 더 나은 정책이 있다면 정파를 떠나 서로 배우고 참고할 수 있는 게 지역정치이다.



요즘은 사회연대경제라 부르는 사회적 경제 정책들이 생활형 정치의 좋은 사례이다. 이명박 정부가 사회적기업 육성을 100대 국정과제로 선정하고, 2012년 말 협동조합기본법이 시행된 이래 사회적 경제는 지역의 잠재력을 발굴하고, 주민이 참여하고 협력해 공동의 부를 만드는 지역사회를 추구해왔다. 진보와 보수를 가릴 것 없이 많은 지자체가 사회연대경제를 활성화해 주민의 삶을 개선하려 노력을 해왔다. 큰 공장이나 공항 같은 시설을 유치해 발전을 꾀하는 종래의 접근법이 벽에 부딪치자, 안에서부터 답을 찾는 내발적 접근에 눈을 돌렸다. 유엔이 지난해 4월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사회연대경제 활성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듯이, 세계 여러 나라가 불평등, 고용위기, 고령화, 기후위기의 해결책으로 사회연대경제의 역할에 주목한다.



현장에 뿌리내린 생활정치는 문제는 같아도 답이 다양하고 창의적이다. 이달 초 방한한 영국 프레스턴시의 의장인 매슈 브라운과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프레스턴은 오래 공들여온 대자본의 유통센터 투자가 2008년 금융위기로 좌절되자, ‘부유한 지역공동체 만들기’(CWB)란 지역경제 선순환 모델을 채택해 위기를 극복했다. 최저임금보다 많은 생활임금을 공공부터 지급해 민간으로 확대했고, 역내 대학, 병원 등(앵커 기관)의 지역 업체 조달 비중을 높였다. 노동자 협동조합, 사회적기업 설립을 촉진해 주민이 주도하는 경제를 일궈냈다. 그 결과 영국에서 낙후한 순위로 하위 20%에 있던 프레스턴은 2018년에는 가장 개선된 도시로 평가받게 됐다. 시의원으로 이런 전략을 주도한 그의 방한 중에 프레스턴 모델에서 아이디어와 영감을 얻고자 하는 강연과 콘퍼런스가 전남 영암, 대전, 경기도 등 여러 곳에서 열렸다.



하지만 지난 15년간의 노력으로 만개해야 할 지역의 생활정치는 지금 거무죽죽하게 말라가고 있다. 정파적 대립이 심화할수록 지역정치가 중앙에 종속되는 게 한가지 이유이다. 대통령선거 직후 치러진 2022년 지방선거가 대선의 자장에서 놓여나지 못했던 것처럼, 아무리 4년간 세심히 노력했어도 중앙정치 바람에 휩쓸리면 재선을 기약하지 못하는 게 단체장들이다. 또 다른 이유는 생활정치에 무지한 정권과 그런 뜻을 충실히 집행하는 관료들이다. 중앙집중형 톱다운 경제를 금과옥조로 여기는 윤석열 정부는 분산형, 풀뿌리형 접근에 별 관심이 없다. 그 결과는 사회적 경제 예산의 뭉텅이 삭감이다.



올해 예산은 4899억원으로 지난해 대비 56.3% 줄었다. 특히 행정안전부의 마을기업 육성이나 고용노동부의 사회적 경제 육성 및 지원 사업은 61.5%와 69.5% 삭감됐다. 중앙과 매칭으로 예산을 집행하는 지역의 사회적 경제 예산도 결국 줄어들었다. 2025년도 사회적 경제 관련 예산(안)은 올해보다 더 삭감됐다. 지역의 부를 역내에서 순환시키는 게 목적인 지역 화폐 예산은 전액 삭감됐다. 이런 ‘사회적 경제 지우기’에 따라 오래 노력해 구축한 사회적 경제 전달체제가 무너지고, 여기에 종사하던 취약계층이 일자리를 잃고 있다.



다양해야 할 지역정치가 중앙정치의 필터를 통해 무채색으로 변하는 관성에서 언제쯤 벗어날 수 있을까? 우선 윤석열 정부는 ‘사회적 경제=사회주의’라는 얼토당토않은 편견에서 벗어나야 한다. 사회적 경제가 민주당이 키워가는 의제라는 속 좁은 생각도 내려놔야 한다. 아울러 생활 밀착형 정치결사체, 즉 지역 주민들로 구성된 지역정당의 출현을 가로막는 정당법의 ‘전국정당 조항’도 손봐야 한다.



bh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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