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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1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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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찰 닮은 이슬람 사원…낯설지만 친근한 튀르키예 이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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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튀르키예 수도 앙카라는 도시 분위기가 단정하다. 인구가 1500만명이 넘는 대도시 이스탄불과 비교하면 더 그렇다. 사진은 일몰 명소로 통하는 앙카라성. 외국인 관광객보다는 젊은 세대가 많이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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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말 닷새간 튀르키예 중부 지역을 다녀왔다. 패키지여행 단골 코스인 이스탄불·파묵칼레·카파도키아는 들르지 않았다. 대신 튀르키예의 뿌리, 인류 문명의 시원(始原)을 헤집었다. 역사 여행은 따분하다고? 그렇지 않았다. 히타이트 문명, 프리기아 왕국 등 역사책에서 막연하게 느껴졌던 단어들이 생생하게 눈앞에 펼쳐져 도리어 흥미진진했다. 입에 짝짝 붙는 음식, 다정한 소도시 사람들을 만난 순간도 소중했다.



그리스 신화 속 ‘미다스’의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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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카라 아나톨리아 문명 박물관에는 고대 문명 유물이 20만 점 이상 전시돼 있다. 사진은 로마 시대 신전을 장식했던 조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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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 시간 여행은 수도 앙카라에서 시작한다. 1600년 동안 동로마제국과 오스만제국의 수도였던 이스탄불부터 시작하는 게 마땅하다고? 앙카라는 수도 역사 100년밖에 안 되는 행정 도시에 불과하지 않냐고? 모르시는 말씀. 앙카라는 인류 최초로 철기를 사용한 히타이트 제국(기원전 1700~1200년)의 주요 도시였고, 아나톨리아 반도에서 위세를 떨친 프리기아 왕국(기원전 1200~700년)의 수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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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기 시대, 다산을 상징했던 대지모신 '키벨레' 조각. 앙카라의 아나톨리아 문명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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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한복판, 아나톨리아 문명 박물관부터 찾았다. 오스만 시대, 시장과 숙소로 쓰던 건물에 들어선 박물관의 보유 유물은 20만 점에 달한다. 기원전 6000년경 신석기 시대의 여신 ‘키벨레’의 조각과 히타이트, 로마 시대의 방대한 유물들이 눈길을 끌었다. 쐐기문자로 적은 문서, 물소 모양의 대형 와인병 등이 찬란했던 문명을 대변했다.

박물관을 나와 전통시장 술루한 카르시시, 오스만풍 주택이 모여 있는 하마뫼누 거리, 일몰 명소 앙카라 성을 방문했다. 인구 1500만명이 넘는 거대도시 이스탄불만큼 압도적이진 않아도 그 점이 도리어 좋았다. 어디 가나 북적이지 않고, 관광객을 긴장시키지 않는 분위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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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고르디온 고대도시. 발굴 현장 뒤편으로 봉분들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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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기아의 왕이었던 미다스의 거대 무덤은 안으로 들어가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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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카라 도심에서 남서쪽 90㎞ 거리에는 ‘고르디온 고대도시’가 있다. 지난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이곳에는 그리스 신화 속 미다스 왕의 거대 무덤을 비롯해 봉분 약 130개가 경주 고분군처럼 봉긋봉긋 솟아 있었다. 미다스의 것으로 추정되는 두개골과 유물 수천 점이 고분군에서 출토됐다.



한국 사찰 닮은 이슬람 사원



지난해 유네스코는 튀르키예의 5개 이슬람 사원도 세계유산으로 등재했다. 튀르키예에는 관광명소로 이름난 사원이 숱한데 5개 사원은 뭐가 다를까? 앙카라, 시브리히사르, 아피온카라히사르에 있는 사원을 직접 가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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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카라에 있는 아슬란하네 카미 사원. 지난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나무 기둥과 천장을 사용한 건축 양식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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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 중부 소도시 시브리히사르에 있는 울루 사원. 역시 나무를 활용해 기둥과 천장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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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원들은 하나같이 아담했고 벽돌로 지은 외관은 하나도 특별할 게 없었다. 그러나 문을 열고 들어가니 뜻밖의 모습이 드러났다. 한국의 사찰, 누각처럼 평평한 나무 천장과 목조 기둥으로 장식돼 있었다. 낯선 종교 공간인데도 친근하게 느껴졌다. 사원들은 모두 13~14세기 건축물로 섬세한 목조 장식, 탁월한 보존 상태 덕에 유네스코의 인정을 받았다. 관광 가이드 ‘아이발라 굑수’는 “튀르키예의 뿌리가 동아시아라는 걸 보여주는 사원”이라며 “기둥 상‧하단에 로마 시대 신전에 있던 대리석을 쓰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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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피온 외곽에 있는 '아야지니 마을'에는 고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동굴이 많다. 사진은 '인류 최초의 아파트'로 불리는 동굴. 계단을 활용해 4층짜리 주거 공간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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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75만명에 달하는 도시 아피온카라히사르(이하 아피온)는 사원 말고도 볼거리가 많았다. 도시 외곽 ‘아야지니’라는 동굴 마을이 특히 흥미로웠다. 응회암, 사암으로 이뤄진 동굴은 고대로부터 거주지, 무덤, 기독교 교회 등으로 쓰였다. ‘인류 최초의 아파트’라는 별칭이 붙은 동굴도 있었다. 천연 굴을 확장하고 내부에 계단을 만들어 4층짜리 주거지를 꾸몄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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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피온은 유네스코가 인정한 '음식 창의 도시'다. 지난달 달 열린 음식 축제에서는 다양한 전통음식을 맛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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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피온은 우유 지방을 활용한 크림 '카이막'이 유명한 도시다. 아피온 사람들은 이 지역 소가 지방이 많아 카이막이 더 맛있다고 말한다. 빵 위에 얹은 하얀 크림이 카이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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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피온은 세계적인 미식 도시이기도 하다. 정신을 번쩍 깨우는 단 디저트 ‘로쿰’과 소고기 소시지 ‘수죽’, 담백한 크림 ‘카이막’이 대표 먹거리다. 아피온 코카테페대학 ‘무스타파 산디크치’ 요리경영학과 교수는 “우리는 매일 아침 새로 만든 로쿰을 먹는다”며 “이스탄불 기념품점에서 파는 쿰쿰한 로쿰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말했다. 과연 이 지역 로쿰은 꿀떡처럼 차졌다. 카이막을 넣은 로쿰이 가장 맛있었다.



이슬람 신비주의의 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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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시디아 안티오크에 있는 로마 원형 극장. 뒤편에 사도 바울이 세웠다는 교회 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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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피온에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외국인 관광객 중 한국인이 가장 많다는 말이었다. 일반적인 패키지여행 코스에 들어가는 도시가 아닌데도 말이다. 알고 보니 방문객 대부분이 기독교 성지순례객이란다. 사도 바울의 초기 활동지인 피시디아 안티오크, 카파도키아, 콘야 등이 모두 튀르키예 중부 지역이었다. 피시디아 안티오크를 가보니 로마 원형 극장 옆에 바울이 제자들을 가르쳤던 것으로 추정하는 작은 교회 터가 있었다. 성서에 따르면, 최초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린 이들은 안티오크의 신도였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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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야 지역 실레 마을에 있는 성 헬레나 교회. 기독교를 공인한 로마 콘스탄티누스 1세의 어머니인 헬레나 여사가 4세기경 지어준 교회다. 정교회답게 내부 장식이 화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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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카라에서 여정을 시작한 지 나흘만에 콘야에 도착했다. 이곳 역시 기독교 역사에서 중요한 도시다. 기독교를 공인한 로마 콘스탄티누스 1세의 어머니인 성녀 ‘헬레나’가 콘야 사람들의 신앙에 감읍해 교회를 지어줬다고 한다. 성 헬레나 교회는 화려한 내부 장식이 인상적이었지만 교회의 기능을 안 한 지 오래여서 서늘한 공기만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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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마 댄스는 이슬람 분파인 수피즘 창시자 잘랄루딘 루미가 고안한 춤이다. 콘야 시내 IRFA 공연장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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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야의 아이콘은 누가 뭐래도 잘랄루딘 루미(1207~73)다. 페르시아 출신의 이슬람 신비주의 사상가인 그는 콘야에서 숨을 거뒀다. 그의 무덤이 있는 메블라나 박물관은 콘야에서 방문객이 가장 많은 관광명소다. 루미가 만든 일종의 선무(禪舞)인 ‘세마 댄스’ 공연도 인기다. 세마 댄스는 신과의 소통을 꾀하는 동시에 죽음으로 넘어가는 과정을 묘사하는 춤이란다. 태양계 행성이 자전과 공전을 하는 듯한 춤 자체보다 무아지경에 빠진 듯한 무희들의 표정이 더 인상적이었다. 기쁨과 체념을 모두 품은 듯 신비한 얼굴이었다.

■ 여행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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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원 기자


튀르키예는 한국보다 6시간 느리다. 이번에 방문한 지역은 고원 지역이어서 일교차가 크다. 10월 중순 현재 낮 기온은 한국과 비슷하지만 밤에는 영하 가까이 기온이 떨어진다. 튀르키예 화폐는 리라다. 1리라 약 38원. 중부 지역을 여행하려면 이스탄불에서 국내선 항공을 이용하는 게 편하다. 앙카라, 콘야에 공항이 있다. 터키항공·아시아나항공·대한항공이 인천~이스탄불 노선에 취항한다.

튀르키예=글·사진 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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