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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5 (화)

‘미군 위안부’ 그 때는 애국이고, 지금은 수치인가 [플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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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작품들은 국가의 이름으로 저질러진 폭력에 대해서, 국가범죄에 대해서 성찰하라고, 그때 그곳에 있던 피해자들에 대한 공감을 가지라고, 그래야 인간존엄성을 향한 여정을 계속할 수 있는 거라고 말한다. 나는 그의 작품들을 그렇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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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위안부들의 모습 / KBS스페셜 ‘전쟁과 여성 3부-그녀의 꿈’ 중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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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인지 한강 작가의 수상 소식을 듣고 나는 ‘옛 성병관리소’ 철거를 저지하기 위해 철야농성을 벌이는 동두천 소요산 입구가 먼저 생각이 났다. ‘역사적 트라우마’로 남은 사건 중에는 국가가 나서서 미성년 여성들까지 달러 돈벌이에 내몰았던 일도 있다. 우리나라에는 ‘일본군 위안부’만 있었던 게 아니다. ‘한국군 위안부’도 있었고, ‘유엔 위안부’도 있었고, 지금도 ‘미군 위안부’가 있다.

[플랫]동두천시 ‘성병관리소’ 철거…시민단체 “미군 위안부, 지울 역사 아니라 반성해야 할 역사”

한국전쟁 뒤에 한반도 남쪽 곳곳에 미군기지가 생겼고, 미군기지 주변에는 기지촌이 형성되었다. ‘양공주’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여성들을 정부는 공식문서에서 ‘미군 위안부’로 명명했다. 그 여성들을 보호한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관리했다. 미군 ‘위안부’ 여성들은 1주일에 두 번씩 성병 검진을 받아야 했다. 국가는 이 여성들을 모아놓고 ‘미군에게 친절할 것’을 교육하고, ‘달러를 벌어들이는 당신들은 애국자’라고 추켜세웠다. 한때 동두천에서 벌어들이는 달러가 대한민국 전체 외화 수입의 10분의 1에 해당하던 때도 있었다. 그래서 ‘동두천에서는 개도 달러를 물고 다닌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고, 그래서 ‘돈두천’이라는 말도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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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위안부 국가손해배상 청구소송 원고와 기지촌 여성단체 공동변호인단 등이 2022년 9월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대법원은 이날 주한미군을 상대로 성매매를 했던 여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기지촌을 운영하고 성매매를 조장한 정부 책임을 인정했다. 문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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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복 입은 여학생이 길거리에서 납치돼 미군 위안부가 된 경우도 있었다. 시골에서 상경하여 서울역에 내린 여성이 밥 먹여주고, 숙소도 제공하면서 돈도 벌게 해주겠다는 직업소개소의 꼬임에 넘어가서 잡혀온 경우도 많았다. 그들은 오자마자 강간을 당하고 폭행을 당하고, 곧바로 성매매에 내몰렸다. 그들에게는 벗어날 수 없는 빚이 쌓여만 갔다. 너무 고통스러워서 도망을 치면 경찰이 이들을 잡아다가 포주들에게 넘겼다.

성병 검진을 받아서 양성반응을 보인 여성들(낙검자)을 강제 수용하는 곳이 성병관리소였다. 경기도에 여섯 곳이 있었는데, 현재는 동두천 소요산 입구에 있는 ‘언덕 위의 하얀 집’, 한 곳만 남아 있다. 이곳은 1973년에 세워져 1996년까지 운영되었다고 한다. 낙검자들은 이곳으로 끌려와 쇠창살 지른 건물 안에 갇혀서 페니실린 주사를 맞아야 했다. 기준치의 10배가 넘는 독한 페니실린 주사를 맞고는 기절하거나 심지어 죽어 나가는 사람도 있었지만, 정부가 한 일이라고는 의사들을 면책해주는 조치를 취한 것뿐이었다.

2022년 9월29일, 대법원은 여성 인권 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을 중요한 판결을 내렸다. 미군 위안부 122명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 판결에서 “기지촌 위안소를 운영한 것이 정부 주도의 국가폭력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는 내용이었다. 소송을 제기했던 2014년에는 122명이었는데, 8년 사이에 24명이 세상을 떠난 다음에 나온 판결이었다. 그 판결 이후 미군 당국과 공범이 되어 여성인권을 유린하였다고 국가의 이름으로 사과를 했을까? 대법원의 판결이 있었는데도 국가가 반성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플랫]“미군 위안부, 국가가 조장했다” 8년 기다린 대법원 판결, 남은 과제는

그래서일까? 쇠창살을 친 8개 방이 있는 2층과 페니실린을 주사하던 진료실 등이 남아 있는 허름한 그 집을 이제 동두천시가 나서서 철거하겠다고 한다. 소요산을 개발해서 돈벌이도 해야 하는데, 미군 위안부를 운영했던 그때의 일이 수치스러워서 빨리 없애버리겠다고 한다. 그때는 애국이었던 일이 지금은 수치라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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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두천시 낙검자 수용소 2층 방의 창문 쇠창살 너머로 감시초소가 보인다. ‘달러를 버는 애국자’로 추켜 세우던 정부는 그 일을 수행할 수 없는 여성들의 신체를 감금했다.김창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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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사회 활동가들의 천막농성은 오늘로 50일째다. 이 칼럼을 독자들이 읽을 때면 세상에 하나밖에 남지 않은 성병관리소는 철거되어 사라져버렸을지 모른다. 그래서 다급하다. 한강 작가의 노벨상을 축하하는 마음이 있다면, 5·18민주화운동만이 아니라 제주4·3사건만이 아니라 이 나라에서 일어났던 국가폭력 사건들에 대해 돌아보고, 그로부터 다시는 그런 아픔이 생겨나지 않도록 철저하게 반성해야 하지 않겠는가. 동두천시는, 경기도는, 국가는 동두천 소요산 입구에 남은 유일한 성병관리소 철거 계획을 중단하고 역사적인 문화유산으로 보전·활용할 방안에 대해 시민사회와 진지하게 토론해야 한다. 장소가 없어지면, 기억은 더욱 어려워진다. 기억하지 못하면 비극은 되풀이된다.

▼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이사

플랫팀 기자 fla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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