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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5 (화)

[이승현 칼럼] 흘린 지갑, 가로등 밑에서 찾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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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WGBI 편입·금리인하, 호재 많지만
현행 모순 극복 못하면 시장 못살려
상속세 폐지 등 근본개혁 서둘러야


이투데이

코리아밸류업지수를 기초자산으로 삼는 상장지수펀드(ETF)들이 다음 달 초 나올 모양이다. 다른 초대형 낭보도 있다. 하나는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 성공이다. 내년 11월 이후 최소 75조 원의 자금이 유입된다고 한다. 다른 하나는 금리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지난주 기준금리를 3.25%로 0.25%포인트(p) 인하했다.

자못 우호적인 환경 변화다. 기업·가계는 이자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정부 재정운용 여력은 커진다. 그런데, 국내 1400만 주식 투자자는 어찌 될까. 이른바 ‘성투’의 문을 열 수 있나. 아쉽게도, 자신 있게 답하기가 쉽지 않다. 미래 주가는 며느리도 몰라서만이 아니다. 상장기업들의 내재 가치가 높아질지 도무지 알 길 없어서다. ‘산책하는 주인과 애완견’ 비유도 있지 않나. 주가는 실물경제, 기업 가치에서 멀리 벗어날 수 없다.

정부는 여전히 밸류업지수를 믿는 눈치다. WGBI, 기준금리도 원군으로 확보했다. 앞으로 잘 될 것이란 확신은 더 커졌을 것이다. 하지만 골목 진창길에 지갑을 흘리고 큰길의 환한 가로등 밑에서 찾는 꼴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현실을 보자. 코스피 지수는 7월 초 2900선을 넘봤다. 2020년 하반기부터 배터리 선풍 등에 힘입어 3000선을 돌파한 적도 있다. 그러나 어제 종가는 2623.29에 머물렀다. 이달 초 한국거래소 집계에 따르면 코스피의 지난 1년 상승률은 6.5%로 전 세계 주요국 중 최하위권이다. 전쟁 중인 이스라엘(12.7%)보다 낮다. 밸류업 ETF, WGBI, 기준금리가 과연 이런 시장의 돌파구가 될 수 있나.

바둑 한 판을 두더라도 정석을 알아야 힘을 낼 수 있다. 진정 밸류업을 바란다면 자본시장의 정석에 충실해야 한다. 기업 가치에서 답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기업 발목을 잡는 반시장 규제 철폐가 급선무다. 만약 그것이 쉽지 않다면 대안이 필요하다. 가장 유력한 것은 상속세 개혁이다. 범사회적 합의가 가능하다면 폐지가 답이다.

최고 세율 50%에 20% 할증까지 있는 우리 상속세는 세계 최악이다. 상속세제 개혁포럼이 지난해 내놓은 단행본 ‘국가의 약탈, 상속세’에서 경희대 황승연 명예교수는 “상속세를 적게 납부하기 위한 대주주들의 최선의 전략은 주식 가격이 가능하면 낮게 유지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필연적 귀결이란 것이다. 보태고 뺄 것이 없다. 모순투성이의 현행 구조하에서는 밸류업지수 개발이든 상법 개정이든 백날 해봐야 헛일이다.

다른 현실도 보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회원국 중 15개국은 상속세가 없다. 직계가족에게 상속할 때 상속세가 없는 4개국을 더하면 19개국이다. 상속세를 둔 국가도 평균 최고 세율은 26%에 그친다. 복지국가 스웨덴은 2005년 상속세를 폐지하고 자본이득세로 전환했다.

최고 세율이 55%로, 우리보다 높은 유일한 국가인 일본도 속사정은 다르다. 일본은 비상장기업에 대해 재산 80% 납세를 유예한다. 실제 세율은 55%가 아니라 11%다. 일본은 100년 기업이 3만3000개다. 대물림 재산이 상속 과정에서 연속으로 반 토막이 난다면 이렇게 많을 리가 없다. 우리나라 100년 기업은 10개도 되지 않는다.

우리 정부와 정치권도 방치해도 좋을 단계가 아니라는 사실을 모를 리 없다. 하지만 미온적이다. ‘부자 감세’ 프레임 앞에서 몸이 뻣뻣이 굳기 때문일 것이다. 정부가 정기국회에 제출한 상속세 개정안은 최고세율 50%를 40%로 낮추는 정도의 미지근한 대안이다. 더불어민주당 안은 더하다. 최고세율은 그대로 두고 공제액만 늘렸다. 둘 다 빛 좋은 개살구다. 가로등 밑에서 공연히 법석만 떨고 있다. 혀를 차지 않을 수 없다.

때마침 가을 코스모스가 화사한 10월이다. 미국 작가 마크 트웨인은 일찍이 “주식투자에 유난히 위험한 달 가운데 하나가 10월”이라고 했다. 채권과 기준금리 호재가 있으니 올해 10월은 근심을 내려놔도 무방하다. 하지만 상속세 폐지 등의 근본 개혁이 없다면 내년 이후는 모를 일이다. 트웨인이 앞말에 덧붙인 말을 각별히 기억해야 할 수도 있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위험한 다른 달은 7월, 1월, 9월, 4월, 11월, 5월, 3월, 6월, 12월, 8월, 그리고 마지막으로 2월이다.” trala2023@

[이투데이 (opinion@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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