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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5 (화)

[지평선] 희망이 로또뿐이어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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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한국일보

서울의 한 복권판매점 앞에 복권을 사려는 시민들이 줄을 서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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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 A는 매주 로또를 산다. 당첨만 되면 회사부터 그만두겠다는 계획이다. 친구 B도 로또 추첨 방송이 나오는 토요일 오후 8시 35분만 기다린다.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룰 수 있는 유일한 길은 1등 당첨밖에 없다고 믿는다. 우리 사회에서 이런 A나 B가 점점 늘고 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올 상반기 복권 판매액은 3조6,168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7% 증가했다. 일부 매체에서 판매액을 4조3,000억 원, 증가율을 26%로 보도한 건 착오다. 어쨌든 올해 복권 판매액은 처음으로 연간 7조 원도 넘을 전망이다.

□ 사실 복권은 사면 살수록 손해다. 로또 1등 당첨 확률은 814만 분의 1이다. 그럼에도 복권을 사는 건 그만큼 사는 게 힘들어졌다는 반증이다. 월급만 빼고 다 오른 물가는 내려가는 법이 없다. 대출 이자와 학원비 부담에 쓸 돈도 없다. 자영업자들은 코로나 때보다 더 힘들다고 한다.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는데 남은 건 빚뿐이다. 한강변 신축 아파트값이 60억 원을 찍는 등 양극화의 골이 깊어지며 상대적인 박탈감은 더 커졌다. 결국 ‘혹시’ 하는 마음으로 복권에 기대 헛꿈을 꾼다. 아무리 돌아봐도 로또 당첨 외엔 해결책이 안 보이기 때문이다.

□ 복권 당첨금을 올리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현재 로또 1등 당첨자는 매주 평균 12명, 1인당 1등 당첨금은 21억 원 안팎이다. 물가가 많이 오른 만큼 당첨금도 올려야 한다는 주장이 적잖다. 실제로 1969년 주택복권이 처음 나왔을 때 1등 당첨금(300만 원)은 당시 집 한 채를 거뜬히 사고도 남았다. 지금은 로또 1등 당첨자도 세금 빼면 강남 아파트 사는 게 쉽지 않다.

□ 그러나 당첨금이 커지면 복권을 사는 이는 더 늘어날 것이다. 당첨 확률은 줄어들고 복권값만 높아질 가능성도 있다. 무엇보다 정부가 나서 사행심을 부추기는 게 과연 옳은 방향인지 의문이다. 그보다는 성실하게 산 사람들이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을 구축하고 빈익빈 부익부를 해소하기 위해 힘쓰는 게 더 중요하다. 인생역전의 꿈을 땀과 노력이 아닌 요행에 기댈 수밖에 없는 나라, ‘희망은 로또뿐’인 사회로 갈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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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101313350005464)

박일근 논설위원 ik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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