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역장성들 "대피명령 후 구호중단·대피거부자 사살" 제안
"네타냐후, 의회에서 검토중 확인…계획 일부 채택 실행중"
전쟁범죄 선 넘나…인권단체 "민간인 기아로 내몰 것 우려"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폐허가 된 가자시티의 연료 탱크 주변에 모인 사람들 |
(서울=연합뉴스) 김상훈 기자 =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가자지구 북부지역에서 하마스의 재건을 막기 위해 구호 중단 계획을 검토하고 있어 논란을 빚고 있다고 AP 통신이 1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스라엘군 퇴역 장성 그룹은 최근 네타냐후 총리와 크네세트(의회)에 가자지구 북부에서 하마스 세력을 몰아내기 위한 구호 중단을 제안했다.
'장군들의 계획'으로 불리는 이 제안은 최대도시인 가자시티를 포함한 가자지구 북부에 머무는 민간인에게 몇주간의 시한을 두고 대피 명령을 내린 뒤, 식량과 물 구호품 제공을 중단하는 방안이 담겨 있다.
이스라엘군은 시한까지 대피하지 않고 가자 북부에 머무는 사람을 하마스 무장대원으로 간주해 사살할 수 있으며, 물과 음식은 물론 연료와 의료 지원 대상에서도 제외된다.
그뿐만 아니라 이 계획에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남북으로 분할하고 북부 지역을 무기한 통제하면서 이곳에 하마스가 배제된 새로운 행정 및 통치 시스템을 구축하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이 계획의 주요 설계자인 지오라 에일란드 전 이스라엘 국가안보위원장에 따르면 이스라엘 총리실은 이 계획이 제출된 지난달 이후 구체적인 내용을 묻기 위해 여러 차례 전화를 걸어왔다.
또 현지 매체들은 네타냐후 총리가 크네세트 국방위원회에서 이 계획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에일란드 전 국가안보위원장은 구호 중단만이 하마스를 뿌리 뽑고 전쟁을 끝내는 유일한 길이라는 소신을 밝혔다.
그는 "그들은 항복하거나 굶어 죽게 될 것이다. 우리가 모두를 죽일 필요는 없다"며 "가자 북부에서 사람들이 살 수 없게 될 것이다. 물이 말라버릴 것"이라고 말했다.
가자시티를 비롯한 가자지구 북부 지역은 그동안 이스라엘 남부지역 주민들을 위협하는 하마스의 주요 요새로 활용되어 왔다고 이스라엘은 판단한다.
가자지구 북부 자발리야 난민촌에서 이스라엘 공습에 친척이 사망한 뒤 오열하는 젊은이 |
이스라엘군은 지난해 10월 7일 하마스의 기습공격을 받은 뒤 지상군 병력을 투입해 가자지구 북부지역에서 먼저 하마스 세력 제거를 시도했고, 이후엔 이집트와 접경한 최남단 라파까지 하마스 소탕 작전을 확대했다.
그러나 하마스는 이스라엘군이 휩쓸고 지나간 곳에서 반복적으로 조직을 정비해 이스라엘군에 맞서거나 이스라엘 남부를 향해 로켓 등을 쏘며 위협을 가했다.
그때마다 이스라엘군은 하마스의 재건 징후를 포착했다며 공습과 병력 투입을 통한 군사작전을 재개했고, 이 과정에서 엄청난 민간인 인명 피해가 이어지고 있다.
이런 악순환을 막고 하마스 대원들만 아사시키겠다는 '장군들의 계획'을 이스라엘 정부가 얼마나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스라엘군 대변인인 나다브 쇼샤니 중령도 지난 7일 가자지구 북부지역에 내려진 대피령이 이 계획 실행의 첫 단계인지를 묻자 "그런 계획을 하달받은 바 없다"고 답했다.
그러나 일부 이스라엘 관리들은 네타냐후 총리가 이를 검토 중이라거나, 이 계획 중 일부가 이미 실행되고 있다고 귀띔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관리는 계획의 일부가 실행되고 있다고 전했다. 다른 이스라엘 관리는 "네타냐후 총리가 이 계획안을 읽고 검토했다"고 했으나 이 계획이 채택되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가자지구 북쪽의 병원에서 활동 중인 2명의 의사도 가자시티와 인근 가자지구 북부로 이어지는 도로가 이스라엘군에 의해 차단돼 사람들이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고 상황을 전했다.
카말 아드완 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 라나 솔로는 "가자 북부는 이미 2곳으로 분할됐다. 검문소가 설치되고 검색이 진행되고 있어 모두가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한다"고 말했다.
가자지구 분리장벽 쪽으로 이동하는 이스라엘군 탱크. |
이런 가운데 유엔과 가자지구 구호활동을 관리하는 이스라엘 국방부 산하 팔레스타인 민간 업무 조직인 민간협조관(COGAT) 홈페이지에 따르면 지난달 30일부터 가자지구 북부에 식량과 물, 의약품을 실은 트럭이 들어가지 않았다. 또 이스라엘군은 13일부터 가자시티에 있는 자발리야 난민촌에 대한 공세를 재개해 이스라엘이 '장군들의 계획'을 실행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혹이 일고 있다.
인권 단체들은 '장군들의 계획'이 가자지구 북부에 있는 민간인을 기아로 내몰 것이며, 식량을 무기로 한 이주 강제를 금지하는 국제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이스라엘군의 대피 명령에 주의를 기울이는 가자 주민은 소수에 불과하다. 늙고 병든 주민들은 집을 떠나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고, 더는 안전한 곳이 없다고 생각하거나 이스라엘군이 고향으로 돌아오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가자시티에서 옥스팜의 구호 활동가로 일하는 조마나 엘칼릴리는 "모든 가자지구 주민이 이 계획을 두려워한다"며 "누구도 대피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안전한 곳이 없다는 것을 안다"고 하소연했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인권단체인 기샤의 타니아 해리 대표도 "탈출한 기회를 부여받은 민간인들이 그곳에 그냥 머물러 있을 경우 그들은 합법적인 군사 목표물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매슈 밀러 미 국무부 대변인은 이 계획에 대해 "미국은 물론 국제사회 모두가 명백히 가자지구 점령 또는 축소 계획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유엔 팔레스타인난민구호기구(UNRWA)의 필립 라자리니 사무총장은 소셜미디어 엑스(X)에 "약 40만명이 생필품 공급이 거의 이뤄지지 않은 채 그곳(가자북부)에 갇혀 있다. 기아가 확산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meola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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