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자한' 편에 나오는 유명한 문장이다. 이 문장이 세인에게 널리 알려진 건 추사(秋史) 김정희(1786~1856)가 그린 '세한도(歲寒圖)' 덕일 것이다.
김정희 대명사가 된 작품이며 국보로 지정돼 있다. 문인화 정수로 꼽히며 그가 주창한 '문자향 서권기(文字香 書券氣)', 즉 '문자 향기와 책의 기운'이 집약된 작품으로 평가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
'세한도' |
널리 알려진 대로 제주 유배 시절인 1844년, 추사에게 수시로 책을 보내준 제자이자 역관인 이상적(1804∼1865)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며 그려준 그림과 글이다.
이 작품이 가치가 높아진 이유는 이상적이 중국 연경에 그림을 가지고 가 추사를 잘 알던 지인들에게 찬문을 받아 함께 표구했기 때문이다. '청유 16가 제찬(淸儒十六家題贊)'이라고 부른다. 거기에 조선 문사들도 글을 보태 20명 22개 감상문이 쓰여 있다. 모두 펼치면 가로 14m가 넘는다.
세한도와 찬문들 |
추사와 세한도를 발견해 세상에 알린 이가 청나라 고증학을 연구하던 일본인 후지즈카 지카시(1879~1948)이니, '세한도'는 가히 동아시아 문인 정신의 집대성이라 할 만하다.
세한도는 추사로 끝나지 않았다. 문(文)과 예(藝)를 결합한 표본이 됐다. 추사 오랜 벗으로서 헌종과 철종 때 영의정까지 지낸 권돈인(1783~1859)도 같은 제목 작품을 그렸다.
추사가 갈필(渴筆) 기법으로 버석하게 그렸다면, 권돈인은 온화한 느낌을 주는 윤필(潤筆)을 구사했다. 거기에 대나무와 매화가 어우러진 '세한삼우도(歲寒三友圖)'로 그려 감성 범위를 넓혔다. 추사는 후에 권돈인 그림을 보고 '높은 경지를 일군 작품'이라며 공감했다.
권돈인 '세한도' |
소치(小痴) 허련(1808~1893)은 '조선 남종화의 마지막 불꽃'으로 일컬어지는 화가로서 추사가 가장 아낀 제자였다. 제주 유배 시절 세 번이나 추사를 찾아 같이 생활하며 가르치고 배우는 사이였다.
허련이 세한도 정신을 좇아 그린 작품은 다수다. 대표작이 '방완당(傍阮堂) 산수도'(1874)다. 허련은 이 작품에 '완당의 필의(筆意)를 따랐다'고 적으며 추사 세한도 방작(倣作)임을 분명히 드러냈다. '완당'은 김정희가 후기에 사용한 호다.
허련 '방완당 산수도' |
다른 작품으로 '노송도'(19세기 후반)가 언급된다. 눈 덮인 채 홀로 우뚝 선 소나무를 가까이 들여다본 그림인데, 열 폭으로 그린 대형 작품이다. 세한도에서 소나무만 끌어낸 듯한 작품으로, 휘어진 줄기와 구불거리는 자태가 역동적이다.
'노송도' |
추사의 다른 제자였던 조희룡(1789~1866)이 그린 매화 병풍, '홍백매도(紅白梅圖)'(19세기 후반)의 소나무 버전 같다.
조희룡 '홍백매도' |
세한도 분위기는 메마르며 황량하다. 제자에게 준 선물이었지만, 유배 시절 자신의 처지와 마음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추사는 무려 제주에서 8년 3개월 유배당했다.
이는 그림 속 집과 나무들이 실제 대상이 아님과도 관계 깊다. 추사는 실경산수화나 진경산수화를 존중한 적이 없다. 마음속 이미지, '이념 속 공간'을 그린 것이다. 그래서 세한도에 구사된 여백을 '이념의 여백'으로 부르기도 한다.
어떤 이념일까? 시.서.화에 임하며 '문자향 서권기'를 언제나 강조한 사실을 볼 때 문인의 격조와 자긍을 향한 다짐이다. "알면 말하지 않은 것이 없고, 말하면 다하지 않은 것이 없다"라고 했다.
세한도에 남긴 위의 글귀도 논어에서 바로 취한 것이 아니다. 성기를 거세당하는 '궁형(宮刑)'이라는 치욕을 감수하며 사마천(BC 145~BC 86)이 집필한 '사기'에서 재인용한 것이다.
꼿꼿하다 못해 때론 오만했지만, 추사는 외로웠다. 사마천처럼 자부심이 강한 만큼 고독했다. 다시 세한도를 보며 '견디는 자긍'보다는 '고독한 결기'를 가늠하게 된다. 위대함은 때로 고독에서 발현된다.
dohh@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연합뉴스 앱 지금 바로 다운받기~
▶네이버 연합뉴스 채널 구독하기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