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2〉 아이 성취가 실망스러울 때
일러스트레이션 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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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2학년 아이였다. 아이는 부모가 자신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왜 그런 생각을 하냐고 물으니 성적이 떨어졌기 때문이란다. 성적이 연거푸 2번 떨어지고 나니 엄마 아빠가 “도대체 왜 열심히 안 하는 거니? 정말 실망이다”라고 말했단다. 1등을 하거나 100점을 맞아 오면 환하게 웃으면서 따뜻하게 안아주던 부모가 지금은 찬바람이 쌩쌩 분다. 아이는 부모를 실망시킨 것이 너무 죄송하다고 했다. 하지만 어떻게 하는 것이 열심히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괴로워했다. 자신은 지금까지 한 번도 열심히 하지 않은 적이 없었단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오은영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
아이가 시험을 잘 못 보면 냉랭하게 대하는 부모들이 적지 않다. 분명 약간 실망하는 면이 있는 것이다. ‘우리가 너 공부하는 데에 얼마나 뒷바라지를 많이 했는데…’ 하는 마음이다. 걱정보다는 그동안 해 온 물질적인 지원, 마음의 지원에 아이가 부응하지 못한 것에 약간 괘씸해하는 마음일 것이다. 부모가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아이는 얼마나 부담스러울까?
나는 아이에게 “공부를 열심히 했음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점수가 잘 나오지 않은 것이 부모에게 미안해할 일은 아니야”라고 말해 줬다. 또한 “부모가 그런 걸로 너한테 실망하는 것은 좀 적절하지가 않아. 1등을 하든 5등을 하든 너는 너거든. 네 부모가 너를 사랑하는 마음은 언제나 같아. 점수에 따라서 너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면, 그건 네 부모가 좀 반성해 봐야 할 부분이야. 부모는 그런 걸로 사랑을 걷어가진 않거든. 그리고 부모라고, 어른이라고 모든 면에서 다 성숙하지는 않단다. 그렇다고 해서 너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란다”라고 설명해 줬다.
아이의 성적에 실망하고 조금이라도 괘씸함을 느낀다면, 부모의 기대치에 대해서 생각해 봐야 한다. 어떤 부모나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기를 바란다. 그런데 어느 날 아이가 감기에 걸려 왔다. 그럴 때 아이에게 실망하지는 않는다. 감기에 걸린 일이 아이가 부모에게 미안해야 할 일도 아니다. 어떻게 보면 부모의 기대치가 적절하지가 않은 것이다. 그 기대치 안에 본인들의 한이나 본인들이 해결하지 못한 짐들(갈등들)이 들어가 있는 것은 아닌지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
부모가 높은 기대치로 몰아붙이면 아이는 공부를 잘해야만 자신이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위험한 생각을 갖게 될 수도 있다. 부모가 시험을 못 봤다고 아이를 차갑게 대하면 아이는 부모가 기대하는 성취를 해내야만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 존재라고 느낄 수도 있다. 너무 슬프지 않은가. 아이는 점점 공부를 하면서도 못 하면 어쩌나, 시험을 보면서도 부모를 실망시키면 어쩌나 걱정이 앞서게 된다. 시험을 못 봐서 혼날까 봐 두렵게 되기도 한다.
아이의 성취에 실망했다고 하는 부모들은 종종 ‘열심히’와 ‘절실함’을 거론한다. 인간은 열심히 살아야 하는 것이 맞다. 이왕 할 것이라면 절실함을 가지고 하는 것이 좋긴 하다. 그런데 ‘열심히’와 ‘절실함’은 형체가 없다.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것에는 모든 사람이 동의하지만, 그 구체적인 기준은 사람마다 다 다르다. 부모들이 생각하는 ‘열심히’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먹고살지 못할 정도의 비장한’이다. 그래서 당사자가 많이 힘들어하고 고통스러워해야 좀 ‘열심히’ 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하지만 공부하는 당사자가 지난번보다 열심히 했다고 하면 열심히 한 것이 맞다. 조금 더 앉아 있었거나 조금 더 집중했다고 한다면 인정해 줘야 한다. 열심히 해도 결과가 좋지 않을 수 있다. 부모가 바라는 성취의 수준을 아이가 해내지 못했다고 “너 그렇게 하려면 다 때려치워”라고 하는 것은 강력한 지적, 무시, 비난이다. 아이들은 배우는 과정에 있다. 결과만 가지고 자꾸 야단을 치면 아이는 중간 과정을 배워갈 동기와 의욕을 잃는다.
30∼40년을 산 다 자란 부모들이 그 세월 동안 갖게 된 높은 ‘열심히’의 기준으로, 아이를 열심히 하지 않는다고 다그친다. 아이들이 한창 성장 중이라는, 중간 과정을 고려하지 않는 것이다.
부모들의 그 모든 행동이 아이가 잘되길 바라는 사랑이라는 데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열심히’와 마찬가지로 사랑도 형체가 없다. 형체가 없기에 전달할 때는 사랑이 느껴지도록 표현해야 한다. 방식도 잘 선택해야 한다. 이 점을 고려하지 않으면 아이는 성인이 되었을 때 부모의 사랑했던 마음보다 “네가 제대로 하는 것이 뭐 있어?” “제대로 안 할 거면 하지 마”라는 말만 기억날지 모른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오은영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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