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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4 (월)

‘국가박사제’를 지지한다 [한승훈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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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훈 |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종교학)



이른바 ‘순수학문’에 종사하는 연구자들이라면 살면서 몇차례나 듣게 되는 말들이 있다. 하나는 “돈도 안 되는 공부를 왜 하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네가 좋아서 하는 공부니 고생되어도 참으라”는 것이다. 전자가 다소간 악의를 담고 있고, 후자는 얼마간 선의를 담고 있다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함의는 비슷하다. 일부 실용적인 분야를 제외하면 학문은 결코 생계를 보장해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아서” 연구에 생애를 투신하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나타난다.



분야마다 차이가 있지만, 한 사람의 박사급 연구자가 되기 위해서는 평균 10년 이상의 양성 기간 전업 학생으로서 교육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이들이 해당 분야의 전문가로서 연구를 지속해나갈 수 있는 일자리는 극도로 제한되어 있다. 대학과 연구기관은 학술적, 사회적 수요에 비해 너무나도 적은 수의 학자들만을 고용하고 있다. 더구나 학문 생태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정책 결정자들의 연구 예산 삭감과 구조조정 기조 속에서 대부분이 비정규직인 연구 노동자들의 고용 불안정성은 개선되기보다는 악화되는 경향마저 있다. 그래서 절대다수의 연구자들은 국가가 한국연구재단 등을 통해 기관별, 개인별로 지원하는 연구사업을 수주하는 데 사활을 걸고 있다. 이것은 연구자들이 제안한 과제를 심사하여 일정 기간 인건비 등 연구비를 지급하는 제도다. 그러나 지원 기간이 짧고, 예산 규모가 지나치게 작아 생계를 유지하기에도 부족할 뿐 아니라, 질적으로 우수한 연구들마저 누락될 위험이 있다.



결국 문제는 돈이다. 그런데 왜 그다지 실용적이지도 않은 지적 노동에 대해 공적인 자본이 투입되어야 하는가? 학자가 생산하는 지식은 쓸모가 있거나, 재미가 있거나, 의미가 있는 것이다. ‘쓸모’ 있는, 즉 정책적, 산업적으로 곧바로 활용될 수 있는 지식에 투자하는 것에 대해서는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져 있다. 가끔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이런 분야에 대한 지원마저 줄이는 정권이 있을 뿐이다. ‘재미’있는, 곧 당장은 직접적인 쓸모가 없어 보이지만 호기심과 지적 욕구를 자극하는 지식도 있다. 인간 문화는 집단적인 기억 속에 이런 부류의 지식들을 서사나 체계의 형태로 확장, 저장해두면서 풍요로워진다. 역사적 조건의 변화에 따라서는 그런 재미있는 지식에서 쓸모가 발견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의미’ 있는 지식이 있다. 이것은 먹고사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지도 않고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그다지 자극적이지도 않지만 중요한 지식이다. 인간과 사회에 대한 극도로 전문적이고 복잡한 정보, 전문가가 아니면 이해하기조차 힘든 수학적 원리나 자연과학적 이론들이 그렇다. 그 지식들은 언젠가 생각지도 않은 국면에서 인류를 위한 쓸모나 재미를 창출할 수 있지만 생산될 당시에는 그저 난해할 뿐 가치를 알기 어렵다. 그러므로 국가와 시민사회가 이런 지식에 필생을 바쳐 몰입하는 특이한 취향을 가진 학자들을 육성하고 지원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대구대 박치현 교수는 2023년에 발표한 논문에서 이 문제에 대한 대단히 구체적인 대안들을 제시하였다. 학령인구 감소와 대학 구조조정으로 학술 생태계는 붕괴 위험에 있다. 따라서 지방대를 중심으로 하는 고등교육 무상화, 프랑스의 ‘콜레주드프랑스’를 모델로 하는 학술 기구 설립 등의 정책을 고민할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 가운데 현재 연구자들 사이에서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것이 바로 ‘국가박사제’다. 이것은 일정한 조건을 갖춘 학자들을 국가박사로 지정하여 공공이 급여를 지급하고, 그들이 연구를 중단하거나 정규직 교원이 되지 않는 한 그 자격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박 교수에 의하면 이것은 기존의 유사한 제도를 확대하는 수준에서 설계할 수 있고, 선진국에 비해 과소하게 책정되어 있는 기초학문 분야 예산을 현실화하는 것만으로도 즉각 실현 가능하다.



안정적인 공적 지원의 반대급부는 사회에 대한 지적 기여의 확대다. 문화예술과 마찬가지로 학문은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 방식이 가장 양질의 성과를 도출할 수 있다. 생계의 위협에서 해방된 연구자는 한정된 자원을 둘러싸고 소모적인 경쟁을 하는 대신 학계와 시민사회에 자신이 생산한 가치 있는 지식을 활발하게 제공할 것이다. 사회는 그것을 활용하고 즐기며 미래를 위한 문화적 자본을 확보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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