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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3 (일)

“일본 ‘동화정책’에 잃어버린 말, 더는 회복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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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아이누족 전통문화계승자 구즈노 쓰기오씨가 지난달 28일 홋카이도 호로카나이초에서 아이누족의 ‘카무이’를 위한 전통 기도의식을 재현하고 있다.


“이랑카랍테!”(안녕하세요!)



7일 일본 홋카이도 지역 선주민인 아이누민족 구즈노 쓰기오(69)는 아이누 말로 인사를 했다. 아이누민족 전통문화계승자인 그가 이날 한겨레와 전화 인터뷰에서 쓴 아이누말은 유네스코(UNESCO·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가 지난 2009년 전세계 2500여개에 이르는 소멸위기 언어로 지정한 언어 가운데 하나다.



고대부터 아이누민족이 신으로 모셔온 ‘카무이’를 위한 기도의식 등을 재현하는 전통 계승자인 그도 아이누어로는 단어 몇 개를 이어붙이는 수준의 간단한 말 정도밖에 하지 못한다. 아이누어는 아이누민족의 정신적 지도자인 ‘에카시’(장로)였던 그의 아버지 구즈노 다쓰지로 때 ‘언어’로서 사실상 대가 끊겼다고 설명했다.



아이누민족이 말을 잃어버린 배경에는 일본 제국주의 역사가 있다. 아이누 사람들은 지금의 일본 도호쿠(동북) 지역과 홋카이도를 비롯해 사할린, 쿠릴열도 등에 널리 퍼져 살았던 선주민이다. 아이누민족은 자신들이 사는 곳을 ‘사람들의 땅’(아이누모시르)이라고 부르며 고유의 언어와 생활 방식, 종교, 문화를 유지하며 살았다. 하지만 13세기께 지금의 홋카이도 남부 끄트머리인 오시마반도에 이주한 일본인들이 아이누족과 본격 교역을 시작하며 불안이 싹트기 시작했다. 이들은 코샤마인 전투(1457년), 샤쿠샤인 전투(1669년) 같은 크고 작은 전쟁을 벌이기도 했다.



에도막부가 18세기 지금의 홋카이도 쪽으로 ‘북방 정책’을 펼치며 무력으로 아이누민족 땅을 장악했다. 메이지유신 이듬해인 1869년 메이지 정부는 ‘홋카이도’로 이름을 바꿨다. 일본 정부는 “메이지 시대의 근대화 과정을 통해 아이누민족 언어도 사라져 갔다”고 설명하지만, 실제 아이누민족에게 가혹한 박해가 가해졌다. 아이누 삶의 방식이던 사냥과 낚시가 통제됐고, 아이누의 종교 및 전통문화 활동이 금지됐다. 천년을 뿌리내려온 자신들의 땅에서 토지 소유권마저 박탈됐다. 아이누 사람들을 “구토인”(舊土人)이라고 부르며, 차별이 일상화됐다. 1899년 ‘홋카이도 구토인 보호법’이 시행되며 일본식 교육과 문화가 강요됐다. 이른바 동화 정책이었다. 아이누민족을 “토인” 취급하는 이 차별적인 법률은 1997년에야 ′아이누문화 진흥 및 전통 등에 관한 법’으로 대체하면서 폐지됐다.



한겨레

아이누족 전통문화계승자 구즈노 쓰기오씨가 지난달 28일 홋카이도 호로카나이초에서 아이누족의 ‘카무이’를 위한 전통 기도의식을 재현하고 있다.


구즈노는 “내가 아주 어렸을 때만 해도 아버지를 비롯해 동네 어르신들이 아이누말로 얘기하는 걸 볼 수 있었다”며 “100여년전 동화 정책이 시작됐고, 지금으로부터 60∼70여년 이전부터 아이누 말이 사라지기 시작해 결국 지금에 이른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제국주의사 연구자 마크 피티는 “(일본의 아이누 동화 정책이) 식민지 건설에 대한 실제 경험을 미리 제공한 사건”이라 평했다. 아이누를 통해 동화 정책 등 식민지 점령 정책에 대한 ‘학습 효과’를 얻어 이를 식민지 조선, 대만 등에 써먹었다는 것이다.



2019년 일본 정부는 ‘아이누시책추진법’을 만들어 아이누민족을 원주민으로 인정했다. 일본 국회가 지난 2008년 아이누를 ‘선주민’(원주민)으로 인정하는 결의를 채택한 지 11년 만의 일이다. 하지만 잃어버린 언어는 회복되지 않았다. 구즈노는 “일본이 아이누민족의 문화를 봉쇄했고, 이미 우리의 언어와 풍속을 대부분 잊어버렸다”고 말했다.





2009년 유네스코 소멸위기언어 지정
“현재 일상 대화 가능한 사람 없어
문화 기록이자 연구 자료로만 존재”





뒤늦게나마 아이누민족의 언어를 보존하려는 노력도 있다. 일본 문화청은 지난달 소멸 위기 언어를 말할 수 있는 이들을 육성하기 위한 ‘화자 육성 사업’에 4300만엔 예산을 배정했다. 소멸 위험이 가장 큰 아이누어가 우선 대상이 됐다. 아이누어와 관련해 문법이나 단어 등을 경험해본 이들을 선발해 대화할 수 있도록 학습 환경을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또 일본 문부과학성 등이 지원하는 아이누민족문화재단을 통해 아이누어 입문 강좌, 아이누어 라디오 체조 같은 것도 홍보하고 있다. 지난 4월에는 일본 중의원에 ‘아이누 정책 재고에 관한 청원’이 올라와 “중등교육에서 아이누 민족에 관한 언어·역사·문화·인권 등 교육과정 배치, 소정의 과정을 이수한 이에게 아이누어와 아이누 역사 교사 면허증을 수여” 등을 제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홋카이도환경생활부가 지난해 내놓은 ‘아이누 생활 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아이누민족 자체가 1만1450명밖에 남아있지 않다.



구즈노는 “(나의) 아버지가 아이누어가 사라지는 걸 막아보려고 일본어 ‘가타카나’ 표기를 빌려 아이누 말과 뜻을 하나하나 기록한 공책이 108권에 이른다”며 “하지만 동화정책 등 영향으로 아이누말로 일상 대화가 가능한 사람들이 사실상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며 “이제 아이누 말은 문화 기록이라는 가치와 연구 자료로만 존재하게 됐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제는 그의 아들이 할아버지가 남긴 ‘아이누 언어책’을 바탕으로 홋카이도대학에서 아이누 말을 연구하고 있다.



도쿄/글·사진 홍석재 특파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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