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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4 (월)

‘노벨상 특수’ 나흘간 50만부 팔려...한강 친필 사인본 50만원 거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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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채식주의자’ 읽고 싶은데.” “지금은 이거밖에 없다잖아.”

13일 서울 교보문고 광화문점에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 증쇄본이 입고됐다. 시민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잽싸게 책을 집어 들었다. 매대에서 책이 훅훅 빠졌다.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 발표 하루 만에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책 재고가 바닥났다. 말 그대로 ‘완판 사태’. 교보문고에선 절판된 2017년 판본 ‘여수의 사랑’을 창고에서 꺼내 와 파는 일까지 벌어졌다. 저자 친필 사인이 있는 초판본이 중고 거래 사이트에서 50만원에 팔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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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오후 서울 교보문고 광화문점. 202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 관련 코너가 방문객들로 붐비고 있다. /장련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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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풀 가동 파주출판단지 인쇄소

“주말 근무라 화 나냐고요? 전혀요. 오랜만에 일이 많아서 좋지요. 한국인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나와서 자부심이 넘칩니다.”

12일 오후 경기 파주출판단지 인쇄 업체 ‘영신사’ 공장. 20년 넘게 이곳에서 일한 직원 최정순(62)씨가 손으로 ‘V’ 모양을 만들어 보였다. 기계가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었다. 11일 오후 문학동네에서 ‘증쇄가 급하다’는 연락을 받았다. 곧바로 한강의 ‘희랍어 시간’ ‘흰’ 표지를 인쇄했고, 12일 새벽 2~3시쯤 본문 인쇄를 시작했다. 스무 명 넘는 직원들이 주말을 반납하고 특근에 나섰다.

기자가 공장을 찾은 오후 3시쯤 책 3만5000부의 본문 인쇄 작업은 이미 마친 상황. 제본 작업 중 하나인 접지 공정이 한창이었다. 본문이 찍힌 종이를 기계에 넣으면 책 모양으로 접어준다. ‘다다다다’ 소리가 귀를 때렸다. 기계 아홉 대가 일사불란하게 접은 종이를 뱉어냈다. 28년 경력 인쇄 베테랑인 김경연(51) 영신사 인쇄 파트 부장은 “오랜만에 정신없이 바쁘다. 노벨상이라 확실히 레벨이 다르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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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경기도 파주출판단지 인쇄소 '영신사'. 인쇄된 '희랍어 시간'과 '흰'을 접는 제본 작업이 한창이다. /황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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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근 ‘천광인쇄소’ 1공장. 한강의 가장 최근작 ‘작별하지 않는다’ 인쇄와 제본 작업으로 분주했다. 잉크와 화학약품 냄새가 그득했다. 인쇄한 ‘작별하지 않는다’ 십여 더미가 사방에 쌓여 있었다. 160cm쯤 돼 보였다. 두 인쇄기가 굉음을 내며 돌아가고 있었다. 이 중 한 대는 13일 밤까지 멈추지 않고 돌릴 예정이다. 30년 경력 직원 전대근(64)씨는 인쇄된 종이를 몇 분에 한 번씩 꺼내보며 상태를 확인했다. “날파리라도 들어가면 까만 점이 찍혀서 계속 인쇄되거든요. 급하게 작업하는 만큼 꼼꼼히 잘 봐야 합니다.” 천광인쇄소 관계자는 “급한 대로 2만부 먼저 찍어 (물류 센터로) 보냈고, 3만부, 2만5000부 순으로 더 보낼 예정”이라고 했다. 주말 동안 이 공장에서만 약 7만5000부를 찍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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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경기도 파주출판단지 '천광인쇄소'. '작별하지 않는다' 표지가 출력돼 묶음으로 쌓여 있었다. /황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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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 출판사들 ‘긴급 증쇄’ 결정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와 ‘흰’을 낸 문학동네는 15만부와 6만부씩 먼저 증쇄하기로 했다. ‘채식주의자’와 ‘소년이 온다’를 펴낸 창비는 “주말 동안 인쇄소 6곳을 돌려 되는 대로 10만부를 먼저 풀려고 한다”고 했다. 문학과지성사도 한강의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를 비롯한 도서 6종을 주말 내내 찍었다.

주말에 인쇄된 따끈따끈한 증쇄본이 서점에 입고되면서 판매량은 더 치솟고 있다. 수상 직후부터 13일 오후까지 교보문고·예스24의 누적 판매량은 각각 26만부, 27만부로 집계됐다. 나흘 새 50만부가 넘게 팔린 것이다. 김현정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담당은 “월·화 중 차례로 더 많은 물량이 들어올 예정”이라고 했다.

해외에서도 품귀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프랑스 파리 서점에서도 씨가 말랐다. 프랑스판 현지 출판사 그라세도 ‘작별하지 않는다’ 8000부를 긴급 추가 인쇄한다고 밝혔다. 미국 뉴욕 맨해튼가 서점에서도 매진 행렬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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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 맨해튼 5번가에 있는 대형 체인 서점 반스앤드노블(Barnes & Noble) 매장의 모습. 한강의 저서는 매진돼 찾을 수 없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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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비 갈린 출판사, 독자는 ‘한강 파고들기’

문학과지성사·문학동네·창비 등 출판 3사와 인쇄소는 ‘즐거운 비명’을 지르지만, 한강 작가 책이 없는 출판사들은 부러운 눈길을 보내고 있다. 문학 애독자들이 ‘노벨 문학상 생중계 맛집’이라 부르는 유튜브 채널 ‘민음사tv’에는 노벨 문학상 발표 당일 특집 방송에 해외문학팀 편집자 세 명이 출연했다. 당연히 해외 작가가 받으리라 예상한 것이다. 이들은 중국의 찬쉐, 일본의 다와다 요코, 캐나다 시인 앤 카슨 등을 수상 후보자로 점찍었다가 ‘한강’이라는 말을 듣고는 “와!” 하고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패널들은 “기쁜 마음(?)으로 퇴근한다” “내년에는 한국문학팀 편집자를 모시자”며 방송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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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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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은 책 구매에 열을 올리는 한편 외연을 넓혀가고 있다. 한강의 최신작인 ‘북향 방’ ‘고통에 대한 명상’ 등 시 두 편이 실린 ‘문학과사회’ 가을호를 찾아보는 등 본격적인 ‘한강 파고들기’에 나섰다. 2019년 발매한 악동뮤지션의 노래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는 국내 음원 플랫폼 멜론에서 역주행을 시작했다. 한강이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 초고를 쓸 때 이 노래를 인상 깊게 들었다고 이야기하는 영상이 퍼진 영향이다.

[황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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