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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1 (토)

한잔의 술, 죽음과 고별…실내악 버전 말러 ‘대지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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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메조소프라노 정수연. 스테이지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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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루하고 무상한 현세를 한탄하는 이백의 시에 붙인 첫 악장 ‘권주가’. 미성의 테너가 부르는 체념의 노래에 격정이 묻어 있다. 가을의 고독을 노래하는 메조소프라노의 그윽한 목소리는 애상으로 침잠한다. 지난 10일 서울 강남구 세일아트홀에서 테너 김효종(42)과 메조소프라노 정수연(54)이 피아노 반주에 맞춰 리허설에 몰두하고 있었다. 구스타프 말러의 ‘대지의 노래’를 아널드 쇤베르크가 실내악으로 편곡한 버전. 오는 30일 서울 예술의전당 아이비케이(IBK)챔버홀 공연을 앞두고 지휘자 진솔(37)과 처음으로 호흡을 맞추는 자리였다.



중국 당나라 시들에 마법처럼 빠져든 말러는 48살이던 1908년 이백, 왕유 등이 쓴 시에 곡을 붙여 ‘가곡 교향곡’을 썼다. 작곡 순서로는 9번째 교향곡이었다. 하지만 베토벤, 슈베르트, 드보르자크 등이 9번 교향곡을 끝으로 사망한 사실이 마음에 걸렸던지 말러는 이 곡에 기호 대신 ‘대지의 노래’란 제목을 붙였다. 이후 말러는 9번 교향곡도 썼지만, 10번을 완성하지 못하고 세상을 떴다. 결국 그 역시 ‘9번 교향곡 징크스’를 피하지 못했던 셈이다.



“5살 딸이 죽고, 자기도 심장병으로 곧 죽을 것 같고, 아내는 바람을 피우고…, 이런 시기에 말러는 도대체 어떤 마음으로 작곡했을까 싶은 마음에 저도 모르게 처연하게 부르게 되더라고요.” 정수연은 “지금까지 불러본 가곡 중에 가장 어려운 노래”라면서도 “음정과 리듬, 박자 등 기술적인 것들만이 아니라 가사 의미를 음미하게 된다”고 했다. 김효종은 “세상에서 나 혼자만 남아 있는 듯한 고독이 느껴진다”며 “가사의 세부 뉘앙스를 살리고 색채감을 풍부하게 표현하는 게 과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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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너 김효종. 스테이지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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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악장 구성의 이 독특한 교향곡은 말러 특유의 미학과 사생관이 잘 응축돼 있다고 평가받는다. 가곡을 노래한 교향곡답게 노래와 가사가 생명이다. 독일 문학을 전공한 나성인 음악평론가가 이번 공연을 위해 가사를 새롭게 번역했다. 우리말 가사를 자막으로 달아 관객이 가사를 음미하면서 감상할 수 있다. 메조소프라노가 30분 가까이 부르는 마지막 6악장 ‘고별’(맹호연, 왕유)은 이 곡의 백미로 꼽힌다. 중간에 장송행진곡이 있어서인지,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사랑스러운 대지처럼~ 저 머나먼 곳 또한 영원히 푸른 빛깔일 게야. 영원히, 영원히….” 마지막 부분은 말러가 이렇게 가사를 고쳐 썼다.



나성인 평론가는 “세상에 대한 회한 속에서도 증오를 남기지 않고 결연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태도가 읽힌다”며 “6악장은 박자를 지워버려 성악가들이 애를 먹는데, 온갖 속박을 풀고 누리는 자유를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말러는 이 곡을 초연한 지휘자 브루노 발터에게 6악장 악보를 보여주며 이렇게 물었다고 전해진다. “사람들이 이 곡을 과연 견딜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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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자 진솔. 스테이지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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쇤베르크는 말러의 이 장대한 교향곡에 매료돼 실내악 버전으로 편곡했다. 악기 편성이 단출해진 대신 노래와 가사가 도드라지게 들린다. 정수연은 “오케스트라 버전에서 말 백 마리가 달린다면 실내악 버전에서 말 한 마리가 달리는 듯한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원곡이 웅장하다면 실내악 버전은 고졸한 맛이 난다. 김효종은 “실내악 버전에선 목소리가 악기를 뚫고 뻗어 나가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했다. 진솔 지휘자는 “가곡 교향곡이란 형식에 맞춰 노래의 맛을 살리는 데는 대편성보다 실내악 버전이 더 낫다고 평하는 분들도 많다”며 웃었다.



진솔은 ‘말러리안 시리즈’를 통해 7개 말러 교향곡을 지휘한 ‘말러 스페셜리스트’다. 필리프 헤레베허가 지휘한 녹음이 ‘모범 교재’로 꼽힌다. 이날 공연에서 작곡가 최우정이 피리 독주와 실내 앙상블을 위해 작곡한 ‘환’을 초연한다. 이성주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재원장과 백주영 서울대 교수가 악장으로 참여한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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