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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3 (일)

이슈 최저임금 인상과 갈등

[단독]최저임금 안 줘도, 안전수칙 안 지켜도 100명 중 1명만 ‘실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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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노동 사건 판결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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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경남 통영의 한 공사 현장에서 A씨가 안전모 없이 건물 출입문에 패널을 설치하는 작업을 하다 추락해 사망했다. 책임자 B씨는 작업 현장에 안전난간을 설치하고 A씨에게 안전모를 착용하도록 할 의무가 있었지만 준수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법원은 B씨가 동종 범죄 전력이 없다는 등의 이유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서울의 주류도매업체 사장 C씨는 2018년부터 5년간 법정 최저시급이 7530원에서 9160원까지 올랐음에도 직원 D씨에게 시급 7177원으로 책정한 임금을 지급했다. 이로 인해 D씨는 5년간 법정 최저임금에 비해 총 1300만원을 덜 받았다. 법원은 C씨가 92세의 고령이라는 점 등을 고려해 ‘벌금 100만원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최근 6년간 산업안전보건법과 최저임금법을 위반해 징역형, 금고형 등 실형을 선고받은 사례가 각각 100명 중 1명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안전 수칙을 지키지 않아 산업재해를 초래하거나, 정해진 시급대로 임금을 지급하지 않아 기소되더라도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3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대법원으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2019년부터 지난 6월까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재판에 넘겨진 4448명 가운데 실형을 선고받은 인원은 68명으로 1.5%에 불과했다. 벌금·과태료 등 재산형이 68.1%(3032명)로 가장 많았고, 집행유예가 20.0%(893명)로 뒤를 이었다. 무죄는 5.2%(235명)였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사업주가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해 취해야 하는 안전조치를 명시한 법으로서 이를 지키지 않아 노동자가 재해를 당하면 처벌받는다.

법정 최저임금을 지키지 않을 때 처벌하는 최저임금법 위반 사건의 실형률도 1%대에 그쳤다. 최근 6년간 최저임금법 위반으로 기소된 총 237명 중 1.6%인 4명만 실형이 선고됐다. 재산형이 58.2%(138명)로 절반 이상이었고, 집행유예 21.0%(50명), 무죄 6.7%(16명)였다. 올해와 지난해에는 실형이 선고된 사례가 단 한 건도 없었다.

임금체불 등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실형이 선고된 비율도 13.2%(2869명)로 10명 중 1명 수준이었다. 재산형은 35.3%(7635명), 집행유예는 22.0%(4773명), 무죄율은 2.3%(513명)였다.

법원은 사업주의 고의가 인정되지 않는 이상 과실범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벌어진 것으로 분석된다. 형법14조에 따라 과실범은 별도 처벌규정이 있는 경우에만 형사 처벌하는 것이 원칙이다. 한 현직 판사는 “비난 가능성이 큰 사안이면 달리 생각할 여지가 있겠지만, 사업주가 딱한 사정을 가진 사례도 많고 대체로 과실범으로 판단되므로 실형을 선고할 만한 경우가 많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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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주에 대한 법원의 온정적 시선이 작용한 결과라는 분석도 있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을과 병의 다툼’이라는 시각, 즉 사업주로서 충분한 적격성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 악의적이지 않을 수 있었다고 보는 관점이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이승길 전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전부 대기업 같은 환경은 아니고 열악한 곳도 많기 때문에 강한 처벌을 내리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노동계는 산재나 임금체불 등을 억제하려면 손해액에 관계없이 고액의 배상금을 내도록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등 보완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형사 처벌뿐 아니라 민사 책임 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권 교수는 “형벌을 부과할 때는 책임을 엄격히 따지지만, 민사에서는 책임에 대한 평가가 낮아져 솜방망이 처벌이 다소 줄어들 수 있기 때문에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유효할 수 있다”며 “노동 관련 범죄가 엄중한 사회적 범행이라는 경각심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지원 의원은 “미미한 처벌을 내릴수록 서민 경제는 안 좋아진다”며 “임금체불 등 범법 행위에 대해 처벌을 강화해야 경제도 활성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나연 기자 nyc@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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