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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3 (일)

“전세, 반전세로 단계 전환하고 기업형 임대 촉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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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민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인터뷰

[주간경향] 전세사기 문제는 수면 위로 올라온 지 2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전세사기를 ‘사인 간 거래’로 규정한 정부는 ‘전세 종말론’을 꺼내 들며 책임에서 비껴갔다. 피해자들의 노력으로 전세사기특별법이 만들어졌지만, 사후 구제책이라 사기를 예방하지는 못한다. 부동산 시장을 연구하는 김경민(53) 서울대 환경대학원(도시사회혁신전공) 교수는 올해 2월 유튜브 채널<김경민의 인사이트>을 개설해 전세사기의 사회·경제적 문제를 알리며 공론화하고 있다. 주간경향은 지난 10월 5일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김 교수를 만나 전세사기가 반복되는 구조적 원인과 제도 개선에 관한 의견을 들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경향신문

김경민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가 지난 8월 서울 강남구의 한 공유사무실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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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사기 문제가 공론화된 지 2년이 됐지만 여전히 끊이질 않는다.

“정부가 전세사기를 근본적으로 예방할 수 있는 실질적인 조치를 내놓은 것이 아직 없다. 정부의 법적·행정 시스템 미비로 전세가 생긴 이래 100년간 같은 유형의 사고가 반복되고 있다. 이는 구조적인 문제로 (정부가) 책임을 회피한 것이다. 최소한 전입신고 효력이 신고 다음날부터 발생하는 문제, 다가구 세입자가 선순위 임차인 존재 여부 등을 확인하지 못하는 문제 등은 해결했어야 한다. 다가구의 경우 2023년 주택임대차보호법을 개정해 임차인에게 선순위 임차인 정보를 제공토록 했지만 여전히 임대인의 사전 동의가 필요하다. 사기를 치려고 마음먹은 임대인은 동의 안 해주고 이해관계가 있는 중개인은 임차인을 속여서 계약한다. 개인정보가 문제라면 다른 세입자들의 이름이나 주민등록번호 등 신상정보를 가린 채 임대인 동의 없이도 임차인이 스스로 확인할 수 있는 권리를 줘야 한다. 지금 상태에서는 (임대인이) 시스템의 허점을 악용하기로 마음먹으면 누구나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있는 게 전세사기다. 사후 법적 제재도 약해 투기꾼들에겐 사기를 치는 게 더 유리한 구조다. 현재 전세사기는 목소리를 내기 힘든 특정 계층(청년층)·특정 지역(서민 빌라촌)에서 악랄한 형태로, 조직적으로 진화해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사인 간 거래’라고 호도하는데 부동산 개발사와 건설사, 금융사 간 거래인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에는 수십조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해 손실은 사회화하고 이익은 사유화하고 있다. 전세사기는 시스템 부재와 정책 실패, 제도의 한계가 만나 생긴 사회적 재난이다. 그런데 피해를 당한 후 법적 조력도 제대로 받지 못한다. 가장 안타까운 건 ‘네가 부주의했다’는 사회적 시선에 2차 가해를 당하면서 청년들이 ‘나는 사기를 당해도 되는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스스로 자신을 무너뜨린다. 저출생 시대 청년이 세상을 등지고 있는데, 사회가 등 떠밀고 있다.”

-근본적으로 전세제도 개선이 필요할 때라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정부가 제도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한국에만 존재하는 전세제도의 본질적인 위험이 있다. 상대적으로 돈이 없는 임차인이 은행 대출을 받아 돈이 많은 임대인의 갭투자를 도와주는 게 전세제도다. 임대인의 선함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본질적인 한계가 있다. 전세가 존재하는 한 갭투자는 사라질 수 없다. 갭투자는 가수요를 일으켜 장기적으로는 집값도 끌어올린다. 그렇다고 100년간 유지한 제도를 한 번에 없애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전세사기에 취약한 빌라를 시작으로 반전세를 단계적으로 도입하고 장기적으로는 전세를 서서히 줄여나가는 방향으로 사회적 논의가 진행돼야 한다.”

자기 돈 없이 보증금으로만 주택을 매입하는 무자본 갭투자를 막기 위해 전세 보증금이 시세의 일정 수준을 넘지 못하도록 전세가율을 일정 수준(70~50%)으로 규제하는 것도 필요하다.


-당면한 문제인 전세사기를 줄일 수 있는 대책도 필요하다

“아파트와 달리 비아파트 시장은 시세가 불분명해 정보 비대칭성에 따른 사기가 싹트기 좋은 환경이다. 프롭테크(Property+Technology·정보기술을 결합한 부동산 서비스 산업)를 활용해 임대인과 임차인 간의 정보 격차부터 줄여야 한다. 빌라 등의 시세를 제공하는 스타트업도 생기고 있는데, 국가가 정보 비대칭 해소에 손을 놓고 있는 건 의지가 없는 것이다. 자기 돈 없이 보증금으로만 주택을 매입하는 무자본 갭투자를 막기 위해 전세 보증금이 시세의 일정 수준을 넘지 못하도록 전세가율을 일정 수준(70~50%)으로 규제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 제도가 시행되려면 시가를 알아야 하므로 정부가 제대로 된 가격 추정을 고민하게 되고, 시장에선 반전세화가 진행될 수 있다. 보증금을 제3의 기관에 맡겨두는 전세 에스크로제도를 도입하는 것도 검토해볼 만하다. 계약 기간 보증금을 에스크로 계좌에 예치하는 것이 아니라 대항력 효력이 발생할 때까지 에스크로 계좌에 보증금을 넣고 임차인이 대항력을 갖춘 후 보증보험과 연계하는 식의 고민이 필요하다. 피해를 구제하기 위해서는 1순위를 사기 피해자로 하고 2순위를 선순위 채권자인 은행으로 바꾸는 것도 검토했으면 한다. 임차인과 달리 은행은 자체 법무팀이 있어 어떻게든 채권을 회수할 수 있다.”

-전세대출과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문제도 수면 위로 떠 오르고 있다.

“전세대출이 초기엔 서민 주거 안정을 위해 쓰였지만, 박근혜 정부에 이어 문재인 정부도 전세대출을 대폭 확대하면서 성격이 변질했다. 도입 취지와 달리 지금은 전셋값 상승과 집값을 부양하는 수단이 됐고, 부동산 가격의 변동성도 키우고 있다. 제도에 부작용이 커지면 이를 고치는 게 정부의 역할이다. 전세대출은 전 국민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예민한 문제지만, 정교하게 설계해 무분별한 대출을 줄이도록 정부와 국회가 나서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야 한다. 보증금의 80%가량까지 전세대출이 가능한 현재 환경에선 투기꾼들이 갭투자와 사기로 돈을 벌 기회가 너무 많다. 전세대출이 동전의 앞면이라면 전세 보증은 동전의 뒷면이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등의 공공기관이 해주고 있는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한도도 낮춰야 한다. 그러면 은행도 보증만 믿고 대출을 내주는 ‘땅 짚고 헤엄치기’ 식의 장사를 하지 않고, 위험을 더 자세히 검증할 것이고 전세대출도 자연적으로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전세사기로 망가진 비아파트 시장 활성화를 위해 추진하는 기업형 임대는 어떻게 보나.

“임대주택 공급 외에도 산업 측면의 다양한 관점으로도 접근해야 한다. 세계 최대 투자은행과 사모펀드들이 국내 임대주택 시장에 많은 관심을 보인다. 한국은 부동산 산업 선진화·고도화를 위해 다양한 기업형 임대 산업 섹터를 만들어야 할 단계다. LH와 SH브랜드는 더 시장에서 작동이 안 된다. 심지어 저소득층 거주 지역에서도 LH와 SH아파트 개발을 반대해 일각에서 주장하는 공공임대 활성화는 현실성이 떨어진다. 대신 SH가 토지를 공급하고 민간이 개발하고 운영하면서 일부 물건을 SH가 소유하는 방식으로 진행하면 된다. 이에 더해 공공리츠(REITs·부동산투자회사)를 키워 많은 자금이 이쪽으로 들어오게 해야 (수요자가 원하는) 다양한 형태의 임대주택 공급을 늘릴 수 있다. 기업형 임대 시장이 발달한 미국에는 영리 추구 기업형 임대아파트부터 정부 인센티브 부여 후 공익형 기업임대아파트까지 매우 다양하다. 월세 상승 등 해외에서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는 부분은 한국의 정책적 섬세함으로 극복하면 된다.”

-전세 축소·기업형 임대 등은 결국 월세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초기엔 임대료가 올라갈 수 있는데 주택의 총량도 증가해 장기적으로는 적정 가격이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새로운 금융상품이 나올 거고 시장을 세분화해 주거지원에 대한 접근 방식을 달리하면 된다. 주거복지 문제는 다른 차원으로 접근해야 한다. 정부가 전세를 폐지하려고 한다면, 재정을 투입해 월세 바우처를 지원·확대하는 등 재원을 늘려야 한다. 정부와 정치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다.”

김은성 기자 k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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