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영화 ‘윌과 하퍼’ 포스터. 넷플릭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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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와 정극을 넘나드는 미국의 중견 배우 윌 페럴에게는 오랜 절친이 하나 있다. 시나리오 작가 앤드루 스틸이다. 이들은 젊은 날 코미디 쇼 ‘에스엔엘’(SNL)에서 배우와 작가로 만나 환갑 언저리의 나이가 된 지금까지 우정을 쌓았다. 코로나 유행 탓에 한동안 얼굴을 못 보고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앤드루가 윌에게 메일을 보냈다. 메일엔 이런 결심이 적혀 있다. ‘남은 인생을 여자로 살기로 했어. 지난 10년간 내가 왜 이러는지 이해해보려고 했고 몇번이고 머릿속에서 지우려고 했는데 이제 그 싸움을 그만하려 해.’ 앤드루라는 이름도 하퍼로 바꿨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영화 ‘윌과 하퍼’는 윌과 트랜스젠더 여성 하퍼가 미국을 횡단하는 과정을 담았다. 윌은 하퍼의 변화를 응원하며 ‘너의 새로운 버전으로 그동안 다녔던 여행지들을 다시 가보자’고 제안한다. 뉴욕과 워싱턴디시, 텍사스, 뉴멕시코를 자동차로 횡단하는 것이다. 준비물은 튼튼한 자동차와 넉넉한 연료, 여행 중간중간 꺼내 먹을 온갖 종류의 프링글스다.
윌과 하퍼는 서로에게 던지고 싶은 질문이 많다. 하퍼는 걱정이 앞선다. 그동안 ‘앤드루’라는 백인 남성으로 친구를 대해왔기 때문에 여성이 된 이후에도 전처럼 지낼 수 있을지 두렵다. ‘윌한테 트랜스젠더란 어떤 의미일까?’ ‘나를 여자로 생각할까?’ ‘트랜스젠더에 관한 부적절한 질문을 던지는 것은 아닐까?’ 같은 물음표가 가득하다.
하지만 윌의 궁금증은 성전환이 아닌 하퍼라는 사람에게 향해 있다. ‘왜 이름이 하퍼일까?’ ‘왜 이렇게 오랜 기간 가슴에 묻어뒀을까?’ ‘그 맛없는 맥주는 지금도 좋아하나?’ 윌은 하퍼의 생물학적 변화에 대해 묻거나 여자가 되기로 한 이유를 논리적으로 짚어내려 하지 않는다. 그저 그동안 하퍼가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에 대해 듣는다. 그리고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을 더는 두려워하고 싶지 않다’는 하퍼가 세상과 마주할 때 옆을 지킨다.
윌과 하퍼는 여행 내내 하퍼의 자매나 다른 트랜스젠더 여성 등 그들을 응원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환대받는다. 따뜻한 반응만 있는 것은 아니다. 둘은 텍사스의 한 스테이크 식당을 찾아 제한 시간 안에 스테이크 2㎏ 먹기에 도전하는데, 윌은 코미디 배우답게 다른 손님들의 호응을 이끌어내며 주목받는다. 동석한 하퍼에게도 많은 관심이 쏟아지는데, 이후 온라인에는 하퍼를 향한 악플이 가득했다. 윌은 자신의 행동으로 하퍼가 실망했을 거라고 생각하며 울먹인다.
‘윌과 하퍼’는 트랜스젠더가 느끼는 감정적 혼란과 사회적 혐오를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동시에 여행 내내 하퍼의 옆에 서 있던 윌을 통해 세상의 어떤 공격도 함께 버텨낼 수 있는 견고한 우정의 힘을 함께 알게 한다. 오랜 친구가 다른 성별, 혹은 다른 모습이 되어 나타났을 때, 그를 어떻게 맞아야 할까? 영화의 주제곡이 힌트가 될지도 모른다.
“하퍼와 윌이 서부로 떠나네/ 오랜 친구 단둘이서/ 새로 생긴 가슴 한쌍과/ 미국을 둘러보러 떠난다네/ …/ 탁 트인 도로를 달리며/ 일깨우게 될 한가지/ 역시나 친구는 영원히 친구더라”
김민제 기자 summ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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