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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2 (토)

노벨상 쾌거에 숨은 ‘적자 2조원’의 마술···구글은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글로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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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구글 딥마인드 인수 후
AI 인재 확보에 아낌 없는 투자
5년 누적 딥마인드 손실 2조원
톱기업 도약 위한 ‘의도된 적자’
“영국 작은 AI랩, 구글 없었으면
생존 못하고 이미 소멸했을 것”


매일경제

2024년 노벨화학상을 거머쥔 구글 딥마인드의 데미스 허사비스 최고경영자와 존 점퍼 수석연구원. <이미지=노벨위원회>


“손실이 계속되는 딥마인드가 16억 파운드(2조5000억원)를 꿀꺽 삼켰다.”

2021년 10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의 기사 제목은 이렇게 야박했습니다.

2014년 구글에 인수된 딥마인드가 혁혁한 매출 성과 없이 구글의 재정 지원에 기대고 있음을 꼬집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나 딥마인드는 구글 인수 정확히 10년 뒤 노벨 화학상을 거머쥐며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습니다.

딥마인드 최고경영자인 데미스 허사비스존 점퍼 수석연구원에게 수상의 영예가 돌아간 것입니다.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는 단백질 3차원 구조와 기능을 예측하는 인공지능(AI) ‘알파폴드’를 개발한 이들의 공로를 인정하고 수상자로 결정했습니다.

세계적 석학도 받기 어려운 최고의 영예를 거머쥔 민간기업 딥마인드. 그리고 이를 10년 전 인수한 구글.

단언컨대 누적된 적자와 실패를 기꺼이 껴안은 구글의 야성적 본능이 없었다면 연구밖에 모르는 두 천재 과학자는 아마도 노벨상을 수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딥마인드의 화려한 성공 뒤에 숨은 충격적 사업 지표에서 구글의 계산된 성공 전략과 주도면밀함을 실감하게 됩니다.

딥마인드가 머신러닝 고도화로 단백질 구조 분석성과를 내기까지 이 회사 뒤에는 꼬리표처럼 ‘눈덩이 적자’라는 염려가 따라붙었습니다.

2014년 영국에 있는 70명 수준의 이 작은 AI랩을 구글이 5억 달러(6500억원)에 인수한 뒤 이 회사의 수익성은 기하급수적으로 악화합니다.

그건데 적자의 이유가 딥마인드가 무능해서가 아닌, AI 시대의 파괴적 혁신자로 만들려는 구글의 ‘의도된 적자’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적자의 주범은 바로 인건비입니다.

매일경제

구글은 딥마인드 인수 후 우수한 연구진 확보를 위해 한 해 1조원이 넘는 막대한 인건비 부담을 허용했습니다.

인수 이듬해 4428만파운드였던 인건비 지출은 이듬해 1억477만파운드로 두 배 이상 뛰었고, 2019년에는 4억6759만파운드까지 올랐습니다.

2022년에는 사상 최대인 9억6937만파운드(1조5500억원)로 2015년 대비 22배 급증한 수준이었습니다.

그 결과 2019년 딥마인드가 구글에 갚아야 할 부채 원금과 이자는 11억파운드(1조7600억원)에 달했고, 구글은 이를 전액 상각하는 결정을 내립니다.

매일경제

딥마인드 연도별 수익 및 인건비 지출 추이(단위=파운드) ※딥마인드 공시 자료 기준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FT 등 당시 외신은 딥마인드가 구글 돈을 꿀꺽 삼켰다며 야박한 투의 보도를 쏟아냈지만 구글은 딥마인드가 신약 연구의 새로운 돌파구를 만들 수 있도록 글로벌 최고 수준의 AI 인재 영입에 돈을 아끼지 않은 것이죠.

딥마인드 초기 투자자로 유명한 후마윤 셰이크는 지난 2020년 CNBC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만약 구글이 딥마인드를 인수하지 않았다면 지금 딥마인드는 실패하고 세상에 없을 것이다.”

그는 AI 기반 사업의 상용화가 대단히 어렵다는 것을 투자자인 자신도, 딥마인드를 이끄는 허사비스도 알고 있었으며, 무엇보다 매출은 없는데 높은 보수의 데이터 과학자를 계속 채용해야 연구 성과를 담보하는 역설에 직면해 있었다고 토로했습니다.

2020년 마침내 딥마인드가 알파폴드를 통해 단백질 구조 예측 정확도 90%를 달성하자 구글은 이렇게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누적된 딥마인드의 적자 계정 위에서 생물학의 난제를 푸는 토대가 마련됐다”라고.

고통 없이는 성취도 없다(No pains, No gains)는 인생의 진리를 구글은 시장의 영역에서 흔들림 없이 실천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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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원으로 형상화한 단백질 구조 <이미지=딥마인드>


구글의 딥마인드 인수 후 영국 기업 중 또 하나의 혁신적인 피인수 사례로 일본 소프트뱅크의 영국 ARM 인수가 꼽힙니다.

당시 손정의 회장은 반도체 설계 전문회사 인수에 320억달러(44조원)라는 천문학적 금액을 쓴 게 지나친 것 아니냐는 질문에 “나는 ARM이라는 회사를 인수한 게 아니라 시대의 ‘패러다임’을 인수합병한 것”이라고 답합니다.

ARM에 비하면 구글은 6500억원이라는 낮은 비용으로 딥마인드를 인수했지만 인수 후 5년 간 쏟아부은 2조원의 인재 투자를 고려하면 실제 가격은 2조6000억원으로 봐야할 것입니다.

손정의 회장의 표현을 빌리면 구글은 ‘머신러닝’이라는 시대의 패러다임을 산 것이죠.

구글이 2014년 딥마인드 인수 후 5년에 걸쳐 지속적으로 최고의 AI 인재를 수혈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2019년 2조원에 육박하는 딥마인드의 부채를 면제하지 않았다면 이듬해 허사비스와 점퍼가 단백질 구조 분석의 새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했을 것이고, 올해 노벨 화학상의 주인공이 되는 멋진 스토리텔링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마지막으로 딥마인드가 매년 10월 제출하는 사업보고서의 내용 중 일부를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딥마인드는 투자자에게 제공하는 ‘주요 사업 위험과 불확실성’ 항목에서 시장 리스크, 법률 및 제도와 더불어 ‘인재 보유’의 중요성을 별도로 메모하고 있습니다.

딥마인드는 “인재의 확보와 유지는 자사의 연구 성취에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면서, 이러한 인재의 이탈이 자사의 첨단 AI 연구와 사업에 적대적 효과를 낳을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한국에서는 정말 희귀하게 네이버가 사업보고서에서 이처럼 인재 확보 및 유지의 중요성, 그리고 이를 위한 회사의 인센티브 제공 노력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

실제 지난 8년 간 딥마인드에서 획기적인 AI 논문을 발표한 인재 20명이 회사를 떠나 캐릭터AI, 코히어, 어뎁트 등 혁신 스타트업을 창업했습니다.

유럽판 오픈AI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미스트랄AI 창업차인 아서 멘쉬도 딥마인드 출신입니다.

모두가 AI 기업의 핵심 경쟁력이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인재임을 잘 알고 있지만, 막상 그 전략을 오롯이 실천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지금은 독점과 탐욕으로 얼룩진 빅테크라는 비판을 받고 있지만, 10년 전 런던의 작은AI랩을 키우는 과정에서 구글은 진정 최고의 기업가 정신을 발휘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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