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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9 (토)

빼어난 것은 소탈하기 마련…여행중 만난 보물들 [E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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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전남 함평 돌머리해수욕장 일몰은 여행자들의 감탄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근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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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박쥐 서식, 조형물도 명물
3천종 다육식물, 바다 노을 명소



“도와줘요! 황금박쥐!” 악의 무리에 위협받는 주인공이 ‘황금박쥐’를 애절하게 부르면 어디선가 정의의 사도가 나타난다. 몸 전체가 황금색인 ‘황금박쥐’는 단박에 악당들을 물리치고 주인공을 구한다. 1960~70년대 브라운관을 탄 한일합작 애니메이션 ‘황금박쥐’는 ‘로보트 태권브이’(1976)나 ‘마루치 아라치’(1977년)가 등장하기 전 동심을 사로잡는 영웅담이었다.



번쩍이는 황금색 박쥐를 실제 만난다면 어떤 느낌일까. 전남 함평에 ‘황금박쥐’가 있다. 함평에서 차로 20여분 거리에 있는 무안에도 ‘보물’이 있다. 국가유산청(구 문화재청)은 지난 5월 ‘무안 목우암 목조아미타여래삼존상’을 국가지정문화유산 보물로 지정했다. 불상도 황금색이다. 오는 18일부터 17일간 함평에선 ‘2024 대한민국 국향대전’이 열린다. 국화 향 맡으러 함평 간 김에 무안까지 들러 ‘보물’까지 살펴보면 어떨까. ‘국향대전’에선 국화 분재 전시부터 국화차 시음까지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진다. 무안도 이에 질세라 페스티벌을 연다. 오는 11월15일부터 3일간 ‘용처럼 비상하라! 청년도시 무안!’이라는 주제로 ‘와이디(YD) 페스티벌’이 펼쳐진다. 이 두 도시 관광은 ‘보물’도 보고 페스티벌도 즐기는 일석이조 수지맞는 여행이 된다.







150억원 가치 황금박쥐 조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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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평엑스포공원’에 전시되어 있는 황금박쥐 조형물. 2005년 조성 당시에는 예산 낭비라는 비판이 일었으나, 지금은 함평 대표 효자 관광 상품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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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9일 ‘함평엑스포공원’ 안에 있는 ‘함평추억공작소’에 도착했다. 4년 전 호우 피해로 부서졌던 ‘함평문화유물전시관’이 3년6개월 만에 변신했다. 함평엑스포공원은 함평군립미술관, 곤충생태학교, 다육식물관, 자연생태관, 친환경농업관, 수생식물관, 생태습지, 자동차극장 등으로 구성된 99만㎡(약 30만평) 넘는 규모의 공원이다. 1960~80년대 생활상을 재현한 함평추억공작소에선 추억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딱지치기용 소품을 파는 슈퍼마켓, 난로에 달궈지는 양은도시락과 키 작은 의자가 있는 교실, 그 시절 재래시장을 재현한 장터까지 볼수록 정겹다. 교실 벽에 걸린 액자에 적힌 글귀가 유난히 눈에 들어온다. ‘흘리지 않고 먹습니다’ ‘열심히 경기에 임합니다’ ‘상대편도 응원해줍니다’ 등이 적혔다. 경쟁해도 서로를 격려해주는 미덕을 지켰던 시절 얘기다. 무엇보다 이곳의 명물은 ‘황금박쥐’다. 이 전시장 앞 공간에 ‘황금박쥐’ 전시관이 있다. 함평 황금박쥐는 사연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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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박쥐의 본래 이름은 ‘붉은박쥐’다. 애기박쥐과에 속하는 붉은박쥐는 몸의 털과 날개 역할을 하는 ‘비막’, 귀가 황금색이다. 언뜻 보면 오렌지색으로도 보인다. ‘황금박쥐’ ‘오렌지윗수염박쥐’로 불리는 이유다. 비막 가장자리는 검은색 띠가 둘러쳐 있다. 겨울철엔 동굴에 들어가 동면하는 황금박쥐는 1년에 한 마리만 새끼를 낳는다. 10월에 교미해 이듬해 6월 말이나 7월 초에 출산한다. 함평의 명물 황금박쥐가 세상에 알려진 건 ‘우연’이 작동했다.



1999년 지역 주민이 함평 고산봉 폐광에서 70여마리의 황금박쥐를 발견한다. 고산봉은 ‘쇠산’이라 불릴 정도로 금이 많이 채취되던 곳이었다. 함평 대동면 일대에서도 162마리가 발견됐다. 국내 황금박쥐 80%가 이 지역에서 집단동면을 한다고 한다. 2005년 환경부는 이 지역 8.7㎢ 일대를 ‘고산봉 붉은박쥐 서식지 생태계 보전지역’으로 지정했다. 함평 황금박쥐는 세계자연보전연맹 적색목록집에 멸종위기 야생동물 1급으로, 국내에선 천연기념물 제452호로 지정됐다. 함평군은 2005년 28억원을 들여 순금 162㎏, 은 281㎏ 포함 총 무게가 46㎏이나 되는 황금박쥐 5마리 조형물을 제작했다. 당시 예산 낭비라는 비판이 거세게 일었지만, 최근 금값이 치솟으면서 가치가 150억원에 달하자 ‘대반전’을 이루며 효자 관광 상품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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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박쥐 조형물 옆에 있는 ‘황금박쥐 오복포란’. 뚫린 구멍에 손을 넣어 만지면서 소원을 비는 여행객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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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황금박쥐는 2~3㎝ 두께의 방탄 강화유리로 만든 원통형 전시관에 보관되고 있다. 큰 망치로 쳐도 깨지지 않는다. 철통 같은 보안시스템도 갖췄다. 2019년 3인조 도둑이 황금박쥐 조형물을 훔치려 왔다가 경보가 울려 해머를 버리고 달아난 사건이 있었다. 경찰에 잡히긴 했지만, 도둑이 들 것이라고 생각도 못한 군은 관리에 더 집중하게 됐다. 안민수(67) 함평군 문화관광해설사는 “뉴스에 나고 하면서 황금박쥐가 더 유명해졌다”고 말한다. 황금박쥐 조형물 옆엔 ‘황금박쥐 오복포란’도 있다. 2010년에 만든 이 조형물은 금(19.31㎏), 은(8.946㎏), 동(34.395㎏), 보석(0.198㎏)으로 만든 가로 80㎝ 세로 60㎝ 높이 35㎝ 크기의 둥근 알이다. 안민수 해설사는 “손을 대고 기도하면 소원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파파야, 레몬쿼, 랑산, 체리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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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육식물관’에서 재배하는 다양한 다육식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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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원의 볼거리는 이것뿐만 아니다. 마당엔 2008년 함평세계나비·곤충엑스포를 찾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심은 나무가 있다. 2008년 4월21일 이곳을 찾은 노 전 대통령은 나무 아래 돌비석에 “아름다운 창조의 현장입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란 글을 남겼다. 바로 옆엔 2009년에 이곳을 찾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가 심은 나무도 있다. 아이들에게 더없이 좋은 자연학습장이 되는 ‘나비·곤충생태관’, 3000여종 다육식물이 여행자를 기다리는 ‘다육식물관’ 등도 가볼만 하다. 김오선 팀장은 “전국에 이렇게 많은 종류의 다육식물이 자라는 곳은 없을 것”이라고 자랑한다. 말을 마치자마자, 그가 갑자기 성인 남자 키의 두 배는 되는 선인장에 올라가 뭔가를 따서 건넸다. 붉은색 과일이다. “먹을 수 있는 선인장 열매입니다. 과즙이 많고 달콤합니다.” 한입 베어 무는 순간, 선인장이 연상시키는 사막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푸른 물결 출렁이는 바다가 떠올랐다. 그의 먹거리 자랑은 ‘친환경농업관’으로 이어졌다. 과일의 천국이 있다면 여기가 아닐까. 파파야, 바나나, 레몬쿼, 커피나무, 랑삿, 체리모아, 람부탄 등 이름도 생소한 과일들이 주렁주렁 나무에 달려있었다. 김 팀장이 파인애플을 깎아 준다. 과즙이 주르륵 흐른다. 입안은 다디단 바다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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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평엑스포공원’ 안에 있는 ‘다육식물관’ 김오선 팀장이 건넨 선인장 열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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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평도 근사한 낙조 명소가 있다. 돌머리해수욕장에는 무지개 색 다리가 있다. 오후 6시가 한참 넘어 해가 퇴근을 서두르자, 그 자리에 붉은 노을이 먹물 스며들 듯 번져갔다. 길이 1㎞, 너비 70m 정도의 아담한 백사장을 자랑하는 돌머리해수욕장은 수심이 얕고 울창한 곰솔숲을 껴안고 있다. 함평군 해보면에 있는 용천사 인근 ‘꽃무릇공원’도 ‘붉은 낭만’을 감상하기 더없이 좋은 명소다. 통상 10월에 만개하는 꽃무릇은 다홍치마를 입은 듯 화려한 붉은 색 꽃이다.



무안 ‘보물’은 어떤 얼굴일까. 함평 황금박쥐처럼 당당할까. 지난달 20일 ‘보물’이 있는 목우암을 찾았다. 목우암은 무안군 몽탄면과 청계면 경계에 있는 승달산 기슭에 있다. 승달산은 해발고도가 고작 333m밖에 안 되지만, 무안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예부터 산 모양새가 문무백관 탄생지로 맞춤한다는 풍수지리설이 전해 내려온다고 한다. 지난 7월 국가지정유산 보물 2265호로 지정된 ‘무안 목우암 목조아미타여래삼존상’(이하 삼존상)은 무안에서 첫번째로 지정된 보물이다. 보물을 만나러 가는 여정은 스산하고 앙상했다. 목우암으로 난 길은 차 한 대가 겨우 들어갈 정도로 폭이 좁다. 걷는 이가 한명도 없는 숲길을 따라 고불고불 올라가는 여행자의 마음은 기대라고는 없다.







김대중 광장의 김대중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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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무안 목우암에 있는 목조아미타여래삼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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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된 목조아미타여래삼존상
‘물·향기·바람’ 숲 속 산림치유



이윽고 도착한 목우암. 비탈진 산자락에 아담하게 자리한 목우암은 우려를 단박에 지워버렸다. 오르는 내내 마음에 똬리를 틀었던 쓸쓸한 잔상은 햇볕 아래 눈처럼 녹아버렸다. 띵~ 풍경 소리가 울려 퍼졌다. 청명한 울림에 마음이 차분해진다. 여행자의 마음을 위무하는 풍경 소리다. 이런 소박한 절에 보물이 있다니, 여행자는 그저 놀란다. 본래 빼어난 것은 소탈하기 마련이다. 목우암은 신라 성덕왕 24년 정명 스님이 세운 암자로 알려져 있다. 고려 의종 때 원명 스님이 절을 수리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목우암이란 이름엔 전해져 내려오는 두가지 얘기가 있다. 원명 스님이 꿈에 소가 나타나 지금 자리로 향하는 것을 보고 그 발자국을 따라 와 지었다는 설과 풀을 엮어 암자를 지었기에 ‘목우암’이라고 했다는 설, 두가지다.



이윽고 보물을 영접할 시간. 186㎝ 높이의 불상이 여행자를 맞는다. 둥근 어깨와 몸체에 흐르는 황금색에선 기품 있는 광채가 흘렀다. 영롱했다. 삼존상은 조선시대 광해군 6년에 제작된 대형 불상이다. 가운데 아미타여래가 있고 양쪽에 대세지보살과 관음보살로 구성돼있다. 임진왜란 이후 불교 중흥의 의미를 담아 웅장하게 제작된 불상이라고 한다. 17세기 한국 조각사에서도 학술적 가치가 크다고 평가된다. 비가 후두두 내렸다. 구름이 몰려오는 산사에 황금색 보물이 전하는 품격이 잔잔히 퍼진다. 매료되고 만다. 이날 목우암으로 안내를 자처한 송남순(56) 문화관광해설사는 무안엔 자랑거리가 더 있다고 말했다. 욕심을 삭히고 지워버린 삶, 더하기를 멈추고 뺄셈에 집요하게 매달린 삶만이 주는 평온함이 사찰에만 있는 건 아니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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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안 ‘물맞이 치유의 숲’에 조성된 숲길. 여행객이 사진을 찍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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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안 ‘물맞이 치유의 숲’(이하 숲)에 가면 승달산을 둘러쌌던 울창한 나무들을 만난다. 사람을 부르지 않는 숲은 폐허다. 이런 점에서 숲은 사계절 여행자를, 마음의 평화를 찾는 수행자를 부른다. ‘물, 향기, 바람’을 키워드로 만든 이 숲은 산림치유를 목적으로 한다. 산림치유란 나무, 숲 등 산림 환경에서 햇볕, 피톤치드 등을 통해 건강 증진과 면역력 향상 등을 도모하는 활동이다. ‘만남의 숲’ ‘사색의 숲’ ‘전망의 숲’ 등 3가지 주제로 구성된 이 숲은 황톳길도 조성돼 있다. 각종 명상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본래 사격장이었던 자리가 변신에 성공한 사례다. 강수미 산림치유사가 온열치유실에서 하는 반신욕과 족욕은 올해까지 무료라고 말한다. “한달 전 예약은 필수입니다.”



이곳도 함평처럼 김대중 전 대통령의 흔적이 있다. 올해는 김대중 전 대통령 탄생 100돌을 맞은 해다. 지난 1월엔 다큐멘터리 ‘길위에 김대중’이 개봉돼, 일주일 만에 6만5000여명의 관람객을 모았다. 방대한 자료로 구성한 다큐멘터리는 긴박한 한국 현대사를 ‘김대중’이란 인물을 통해 그려냈다. 무안군 삼향읍에 있는 ‘김대중 광장’엔 동상이 웅장하게 서 있다. 송남순 해설사는 “대죽도 앞바다를 매립해 만들었다”고 말한다. 동상을 한바퀴 돌고 지나는 바람에 여행객의 발걸음이 멈춘다. 여행은 ‘가다 멈추다’를 반복하는 수행 과정일지 모른다.



함평·무안/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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