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라이브러리속의 모던 경성]경성방송국 1936~1940년 14회 출연, ‘문자보급가’ 음반 취입
동요가수 진정희는 1930년대 후반 경성방송국을 누빈 스타였다. 5년간 무려 14번이나 출연했다. 진정희가 부른 '문자보급가'는 조선일보가 1930년 말 현상공모한 작품으로 문맹퇴치를 호소하는 내용이다. 1937년 빅터음반사에서 음반으로 출시됐다.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 이연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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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11월19일 오후 6시 ‘동요가수’ 진정희가 경성방송국 라디오에 출연했다. 함께 출연한 동료 강임진과 번갈아 노래를 불렀다. 진정희는 윤석중 작사 ‘퐁당퐁당’과 김기환(아동문학가 윤복진의 필명) 작사 ‘동리의원’, 홍난파 작사 ‘병정나팔’ 등을 불렀는데, 작곡자는 모두 홍난파였다. 홍난파가 쓴 ‘조선동요100곡집’에 수록된 곡들이다. 당시 라디오 음악방송은 스튜디오에서 라이브로 연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1936~1940년 경성라디오 제2방송(조선어방송) 프로그램을 조사했더니 동요 프로그램에 가장 많이 출연한 가수 중 하나가 진정희였다. 진정희는 이 기간 모두 14차례 독창, 중창으로 방송을 탔다. 진정희만큼 인기가 높았던 계혜련과 함께 출연한 게 7차례나 됐다.
조선일보 1930년 12월5일자에 실린 '문자보급가' '한글기념가' 현상공모 사고. 신춘문예 공모 사고 안에 포함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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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요 음반 여러장 취입
진정희는 동요 음반을 여러 장 취입했다. ‘아버지는 나귀 타고 장에 가시고/할머니는 건너 마을 아저씨 댁에’로 시작하는 ‘맴맴’, ‘책상위에 오뚝이 우습구나야’로 시작하는 ‘오뚝이’(이상 윤석중 작사, 박태준 작곡), ‘엄마 앞에서 짝짜꿍/아빠앞에서 짝짜꿍’의 ‘도리도리짝짜꿍’(윤석중 작사, 정순철 작곡)은 빅터음반사에 출시했다.
‘짝짜꿍’은 계혜련과 함께 불렀다. 이 동요 셋은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진정희의 목소리로 들을 수있다. 목소리만 들으면 열살 안팎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같다. 힘있고 똘망똘망한 목소리로 가사 전달력이 좋다.
조선일보 1930년 12월7일자 사고. 문자보급가, 한글기념가 현상공모만 따로 소개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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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 ′문자보급가’ 음반 내
진정희는 1937년 빅터 음반사에서 이은희가 노랫말을 쓴 ‘문자보급가’ 음반도 취입했다.(장유정의 음악정류장 50, 한글날에 듣는 문자보급가, 조선일보 2022년 10월13일) ‘문자보급가’는 조선일보가 1929년부터 문맹퇴치를 내걸고 대대적으로 펼친 ‘문자보급운동’에 활용하기 위해 현상공모한 작품이었다. 문자보급가 현상모집 광고(1930년 12월 5일자) 에 따르면, 문자보급반 학생들에게 합창시킬 목적으로 많아야 3절을 넘지 않아야 하고, 반드시 후렴을 쓸 것을 요구했다. 처음엔 신춘문예 모집과 함께 나갔지만 ‘문맹퇴치와 한글운동에 2대 가요 현상모집’(조선일보 1930년 12월7일) 제목 아래 문자보급가와 한글기념가를 공모하는 사고를 따로 냈다. 1등 상금 30원, 2등 상금 20원, 3등 상금 10원을 내걸었다. 당시 신문기자 월급이 50원~60원 정도였으니 상금이 꽤 두둑했다.
◇‘아는 것이 힘, 배워야 산다’
공모 결과 ‘문자보급가’는 2등 2명, 3등 3명이 당선됐다. 이은희의 ‘문자보급가’는 2등이었다. ‘맑은 시냇가에는 고기 잡는 소년들/일할 때 일하고 배울 때 배우세’(1절) ‘푸른 언덕 위에는 나물 캐는 소녀들/일할 때 일하고 배울 때 배우세’(2절), ‘밭가는 아버지도 베짜는 어머니도/일할 때 일하고 배울 때 배우세’(3절). 후렴은 ‘아는 것이 힘, 배워야 산다’로 문자보급운동 구호를 사용했다.(’현상모집 2등 당선’, 조선일보 1931년1월2일)
심사를 맡았던 염상섭은 ‘한글만 깨우치면 보고 알고 외우고 불러야 하겠는 고로 가장 통속적이면서도 뜻이 핍진하야 감격을 일으키게 하고 그리고도 운과 향이 아름다운데에 두었다’(‘현상작품 선후감’, 조선일보 1931년1월7일)고 밝혔다. 염상섭은 이은희의 노랫말이 ‘쉽고 부르기 좋다’고 호평했다. ‘문자보급가’ 음반을 들어보면, 진정희의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호소력있게 들린다.
◇경성방송국, ‘문자보급가’ 7차례 방송
현상공모 당선 6년이 지난 1937년에 들어서야 음반 취입이 이뤄진 것을 보면 마땅한 작곡자를 찾기 어려웠던 듯하다. 음반엔 작곡자 이름이 없어 누가 이 곡을 썼는지 확인할 수없다. 경성방송국은 진정희를 스튜디오에 출연시켜 ‘문자보급가’를 부르게 하거나 ‘문자보급가’ 음반을 틀어주는 식으로 모두 6차례 방송을 내보냈다.1940년5월4일엔 경성방송동요회가 경성방송관현악단 반주로 ‘문자보급가’를 부르기도 했다. 1937~1940년 4년간 ‘문자보급가’는 모두 7차례 방송을 탔다.
◇출신, 행적 알 길없는 진정희, 계혜련
1930년대 후반 가장 정력적으로 활동한 ‘동요가수’ 진정희의 이력을 확인할 수없다는 점은 아쉽다. 나이나 학교는 물론 이후 행적도 알려진 게 없다. 가수나 음악가의 길을 가지 않은 듯하다. 진정희와 동시대에 활동한 계혜련의 행적도 드러나지 않은 건 마찬가지다. 1930년대는 ‘동요의 황금시대’(‘창작동요100년사’ 86쪽) 였다고 한다. 홍난파, 윤극영, 박태준, 김성태, 박태현, 강소천, 윤석중 등 기라성 같은 작곡, 작사가들이 20~30대 젊은 나이에 작품을 쏟아냈다.
1933년 4월 조선어방송을 따로 시작한 경성방송국은 매주 1~2회 동요 프로그램을 편성, 동요 보급과 확산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모던 경성, ‘윤극영 ‘반달’ 히트 이끈 라디오의 힘’) 많이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이 방송에 출연해 노래한 진정희, 계혜련 같은 동요가수의 활약도 역시 아는 게 없다. 한국동요사에 굵직한 자취를 남겼는데도 그렇다. 이래서야 우리의 근현대를 제대로 이해하는 게 가능할까 하는 회의가 든다.
◇참고자료
한국동요문화협회, 창작동요 100년사, 한국음악교육연구회,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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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철 학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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