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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0 (목)

327개 벌집매장 대신 9개 브랜드… 명동 밀리오레 6년만의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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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Inside Out] ‘불꺼진 상가’ 극복 비결은

구분상가 소유주 208명 동의 얻어 ‘통임대’로 외국인 타깃 공간 재편

올리브영-K팝 전용 매장 등 입점… “관광객 개장 전부터 입구서 대기”

동아일보

서울지하철 4호선 명동역과 연결된 구분상가 ‘명동 밀리오레’가 8월 재개장했다. 2018년 12월 문을 닫은 후 약 6년 만이다. 327실로 쪼개져 있던 1, 2층 공간을 9개 브랜드로 재편했다. 세빌스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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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시이네(涼しいね·일본어로 ‘선선하네’란 뜻).”

지난달 30일 찾은 서울 중구 쇼핑몰 ‘명동 밀리오레’. 오전 10시 30분 개장 시간에 앞서 지하철 4호선 명동역과 연결된 출입구에서 대기하던 30여 명의 외국인 관광객은 문이 열리자 곧바로 매장으로 들어갔다. 관광객들은 1층 올리브영 매장에서 화장품을 구경하고 2층에서 아이돌 포토카드 등을 판매하는 올댓케이 매장 등을 둘러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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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한복판에 위치하면서도 2018년 문을 닫아 ‘불 꺼진 상가’의 대표 격이었던 명동 밀리오레가 ‘구분상가’의 한계를 극복하고 올해 8월 6년 만에 다시 문을 열었다. 과거 의류점포 327개가 벌집처럼 밀집해 있던 1, 2층 상가는 9개 브랜드로 재편됐다. 업계 관계자는 “1층에 입점한 올리브영 하루 매출이 1억 원을 바로 넘겼을 정도”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 ‘패션의 메카’였지만 결국 문 닫아


9일 업계에 따르면 2000년 지하 2층, 지상 17층 규모로 문을 연 밀리오레는 젊은층 ‘패션의 메카’로 군림했다. 이후 2004년 1, 2층 상가는 327실로 쪼개져 208명에게 분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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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오레식 구분상가’는 과거 서울 동대문, 명동, 이화여대 상권 등에서 성행한 쇼핑몰 형태다. 1실의 규모를 약 10㎡까지 쪼개 팔았다. 건물주 입장에서는 손쉽게 분양대금을 회수할 수 있고, 분양을 받는 입장에서는 소액 투자가 가능해서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너무 잘게 쪼개다 보니 벽과 문을 만들 공간도 모자라 곳곳에 가벽을 세우고 옷과 잡화를 파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소유주가 너무 많아 트렌드 변화에 대응하기도 어려웠다. 명동 밀리오레는 인터넷 쇼핑이 일상화되고 단순 구매에서 체험으로 옮겨가는 유통업계 변화를 따라가지 못했다. 결국 2018년 1, 2층 상가가 문을 닫았다. 이후 나이키, 유니클로 등 글로벌 브랜드 영입을 위해 2차례 재기를 시도했지만 일부 소유주 반대로 좌절됐다.

● “중환자실까지 찾아가 208명 동의 얻어”

부활의 결정적 계기는 ‘마스터리스(통임대)’였다. 전체 매장을 한 사업자에 임대한 뒤 이를 재임대하는 방식이다. 명동 밀리오레 상가관리단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이 끝나고 외국인 관광객이 돌아오자 지난해 10월 상업시설 개발·운영 기업인 씨오디리테일과 마스터리스 계약을 맺었다.

관건은 소유주 208명 전원의 동의를 받는 일이었다. 상가 매출은 소유주 지분에 따라 나누고, 매출이 충분하지 않더라도 소유주에게 일정 수익을 보장하기로 했다. 소유주를 만나 1명당 2시간씩 이야기를 나누며 건물 운영 방향을 설명했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부동산 컨설팅 기업 세빌스코리아의 백종식 이사는 “수술을 앞둔 소유주를 설득하기 위해 중환자실을 찾아가기도 했다”고 말했다. 박기형 상가관리단 대표는 “매달 상가관리단에서 커피 한 잔 마신 것까지 상세하게 보고하며 신뢰를 쌓았다”며 “소유주마다 상가 위치에 따라 권리를 더 주장할 수 있는데 욕심을 버리고 따라와줬다”고 했다.

327개 점포가 다닥다닥 붙어 있던 공간은 9개 브랜드로 재편했다. 외국인 관광객을 타깃으로 하되 국내 이용객도 관심을 가지도록 공간을 구성했다. 최근 관광 필수 코스로 자리 잡은 올리브영을 1층 가장 넓은 공간에 배치했다. 캐주얼 패션매장 지오다노와 신발 편집숍인 폴더 등 명동에 입점하지 않았던 브랜드를 영입했다. K팝 상품 전용 매장도 들였다.

● 쇼핑몰 침체는 글로벌 현상… 경쟁력 갖춰야

올해 9월 3년 9개월 만에 문을 연 ‘던던 동대문점’(옛 롯데 피트인)도 비슷한 사례다. 지하 3층, 지상 8층 규모인 이곳은 2007년 ‘동대문패션TV’라는 이름으로 준공됐다. 하지만 소유주가 1500여 명에 달한 탓에 내부 갈등이 컸다. 2013년 겨우 영업을 시작했지만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갈등,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아 2020년 휴업에 들어갔다.

롯데자산개발이 운영하는 던던은 유니클로, 올리브영, 다이소 등 유명 브랜드와 함께 1인 가구를 공략한 소형 가전, 생활용품 전시 공간 등을 갖췄다. 편의점 세븐일레븐은 상가 내 매장을 패션 뷰티 특화 점포로 꾸몄다.

김지엽 성균관대 건축학과 교수는 “경기 둔화와 소비 환경의 변화로 미국, 일본 등 글로벌 시장에서도 쇼핑몰은 침체를 면치 못하고 있다”며 “국내 백화점이 대형 체험공간 등을 조성해 이용객을 끌어모으듯 방문하고 싶은 공간을 조성해야 상권이 되살아날 것”이라고 했다.

경쟁력 잃은 ‘다닥다닥’ 구분상가, 공실률 80% 넘는 곳도

트렌드 못따라가고 ‘도심속 흉물’로
“오피스텔 등 용도변경 개발시도도
지나친 차익 요구에 사업 지지부진”


4일 서울지하철 1·2호선 신도림역과 연결된 테크노마트 상가. 잡화 매장이 들어선 지하 1층과 지상 1층의 공실을 세어 보니 지하 1층은 326개 점포 중 88곳(27.0%)이, 지상 1층은 310곳 중 103곳(33.2%)이 문을 닫은 상태였다.

명동 밀리오레처럼 변화를 통해 재기를 노리는 구분상가들이 있는 반면에 아직도 많은 구분상가는 트렌드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도심 속 골칫거리로 남아 있다.

대표적인 곳이 동대문 패션상가 일대다. 9일 동대문패션타운관광특구협의회에 따르면 올해 3월 말 기준 소매상가 맥스타일은 전체 2654개 점포 중 약 2280곳(약 86%)이 공실이다. 인근 소매상가 굿모닝시티와 도매상가 디자이너클럽은 공실률이 각각 70%, 77%에 달한다. 굿모닝시티는 지난해 한 시행사와 손잡고 소유주의 동의를 받아 재건축 결의까지 마쳤으나 시행사가 금리 인상, 부동산 경기 침체의 영향으로 자금 사정이 악화되며 사업이 어그러졌다.

최근 부동산 업계에서는 경쟁력을 잃은 구분상가를 오피스텔, 오피스 등으로 바꾸려는 시도가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주차장, 피난 공간 등을 확보하지 못해 좌절하는 경우가 많다. 지대식 동대문패션타운관광특구협의회 사무국장은 “일정 면적 이상의 구분상가를 모아 오피스 등 다른 용도로 개발하게 되면 소유권마다 벽을 일일이 세워야 해 개발에 어려운 점이 많다”고 말했다.

개발 움직임이 감지되면 점포 매매가를 올려 차익을 누리려는 소유주들의 욕심도 사업을 가로막는 요소로 꼽힌다. 이재우 목원대 부동산금융보험학과 교수는 “상가가 전반적으로 공급 과잉인 상황에서 구분상가는 더 취약하다”며 “결국 소유주 등의 추가적인 자본 투자를 통해 건물의 가치를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축복 기자 bles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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