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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0 (목)

[한은형의 느낌의 세계] 증명할 것인가, 넘어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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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넷플릭스 흑백요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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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급이 없었다면 재미가 없었을 것이다. ‘요리 계급 전쟁’이라는 부제가 붙은 ‘흑백 요리사’를 보고 생각했다. 100명의 참가자 중에서 한 명의 우승자를 뽑는 것은 이전의 요리 경연 프로그램과 같지만 특이하게도 계급을 설정했다. 이 계급론을 보라. 80명은 흑수저 요리사, 20명은 백수저 요리사다. 모두가 합의한 기준으로 흑과 백을 나눈 것은 아니고 제작진 마음이다. 더 유명하고 성취가 많은 요리사가 백이라는데 납득이 안 되는 사람도 있다. 방송에 얼굴 좀 비치면 백인가? 하지만 계급이란 게 원래 그런 게 아니던가? 납득이 되고 되지 않고의 이유로 계급이 정해지지 않는다. 그냥 어쩌다 내게 주어진 것, 그게 계급이다. 누군가는 천억대의 자산을 가진 집에, 누군가는 월세살이를 하는 집에 태어난다.

이 음식 경연은 처음부터 작정하고 불리하게 시작한다. 당연하지 않나? 계급이란 그런 것이니까. 평등하게 시작되는 경쟁은 없다. 평등이라는 단어는 어쩌면 사전 안에만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평등한 세상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순진하거나 이상주의자다. 흑백 요리사의 계급 설정은 이 세상과 닮아 있다. 흑수저 80명 중에 살아남은 20명만 백수저 20명과 대결할 수 있다는 경연의 규칙도. 연출도 노골적이다. 흑수저 80명은 제 발로 문을 열고 세트장으로 입장하고 백수저 20명은 애초에 흑수저보다 높은 위치에다 기계 장치의 힘으로 늠름하게 솟아오른다. 흑수저보다 높이 있는 백수저는 흑수저를 내려다볼 수밖에 없다.

흑백 요리사의 계급 설정은 그래서 불쾌하다기보다는 아팠다. ‘계급 전쟁’이라는 선명한 콘셉트는 어쩔 수 없이 나 자신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하기 때문이다. 나의 계급에 대해 생각하면 아찔해지는 것이다. 자신의 계급에 만족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게 나는 아니다. 남 일 같지 않아서 복잡한 마음으로 보고 있는데 성우는 그리스 비극의 코러스처럼 장중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한다. “계급을 증명할 것인가, 계급을 넘어설 것인가” 과연 말 그대로였다. 이 세계에는 두 가지 선택지만 있다. 누군가는 계급을 증명하지 못했고, 누군가는 계급을 넘어섰다. ‘흑백 요리사’를 본다는 것은 자신을 증명하거나 제대로 증명하지 못한 참가자를 지켜보는 일이기도 했다.

그러면 어떻게 계급을 넘어설 수 있는가? 누군가는 운을, 누군가는 인성을, 누군가는 실력을 말할 것이다. ‘흑백 요리사’에는 모든 사례가 있었다. 모험가도, 전략가도, 기회주의자도, 실용주의자도 있었고 우직하게 정공법을 택하는 참가자도 있었다. 그리고 참가자는 AI가 아니라 인간이라서 요리만 하는 게 아니라 말을 하고 표정을 지으며 자신을 뿜어냈고, 역시 인간인 우리는 그들에게 매력을 느꼈다. 탄탄한 실력과 집요함으로 요리에 헌신하는 트리플 스타, 손목이 걱정될 만큼 격정적으로 웍질하는 나폴리 맛피아, 방송의 서사를 이해하는 노련한 영 피프티 최현석, 만화를 보고 요리를 배웠다는 만찢남, 은은한 인품이 음식에도 스미는 듯한 한식대가, 미각적 착란을 가지고 노는 주방의 시인 에드워드 리….

그래서일까. 최근의 만남에서 ‘흑백 요리사’가 화제에 오르지 않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심사위원인 모수 안성재 셰프가 말한 ‘이븐(even)한 익힘 정도’는 너무 많이 패러디되어 벌써 지겨울 정도다. 누군가는 어떤 참가자가 셰프로 일한 식당을 운영했었다고, 누군가는 어떤 참가자와 같은 식당에서 일했다고 했다. 이모카세, 나폴리 맛피아, 에드워드 리, 트리플 스타, 만찢남, 한식대가의 음식을 먹어보고 싶다는 말도 들었다. 해당 참가자가 떨어졌는지 다음 경연에 올라갔는지는 그다지 고려 사항이 아니었다. 먹고 싶다는 음식도, 먹고 싶은 이유도 모두 달랐다. 요리와 미식을 즐기는 사람도, 요리를 하지 않거나 미식을 즐기지 않는 사람도 모두 ‘흑백 요리사’에 대해 말했다.

이 글을 쓰기 전 ‘흑백 요리사’의 최종 우승자가 누구인지 마지막 회차까지 보았다. 그 참가자만 우승자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멋짐이라는 게 폭발했던, 나만의 우승자가 있었다. 계급은 그리 중요한 게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우리에게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감각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그 능력이 우리에게 계급을 견딜 힘을 준다. 증명하거나 넘어서기 위해서는 일단 견뎌야 한다. ‘흑백 요리사’가 내게 준 교훈이다. 그러기 위해 일단 즐거워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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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형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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