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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0 (목)

북 “남측 연결 도로·철도 끊고 요새화” 물리적 단절 공식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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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측에만 통보…남측은 배제

개헌 통해 ‘통일’ 삭제 여부 촉각

경향신문

접경지 공사 중인 북한 군인들 북한이 남측과 연결되는 도로·철도를 완전히 끊고 남쪽 국경을 영구 차단·봉쇄하는 요새화 공사를 진행한다고 선언했다. 9일 경기 파주시 오두산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 접경 지역에서 대거 동원된 북한군들이 작업을 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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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9일 남측과 연결되는 도로·철도를 끊고 군사분계선(MDL) 일대에서 요새화 공사를 진행한다고 발표했다. 북한이 올해 초부터 실시해온 남북 간 물리적 단절 조치를 공식화한 것이다.

북한은 지난 7일부터 이틀간 최고인민회의를 개최해 헌법을 일부 개정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당초 예상됐던 통일 표현 삭제와 영토 규정 신설 등 ‘두 국가론’을 반영한 헌법 개정을 했다는 언급은 없었다. 북한이 실제 개헌 조치를 했는지를 두고는 분석이 엇갈린다.

북한 조선인민군 총참모부는 이날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발표한 보도문에서 “우리 공화국의 주권행사 영역과 대한민국 영토를 철저히 분리시키기 위한 실질적인 군사적 조치를 취한다는 것을 공포한다”고 밝혔다. 이어 “9일부터 대한민국과 연결된 우리 측 지역의 도로와 철길을 완전히 끊어버리고 견고한 방어축성물들로 요새화하는 공사가 진행되게 된다”고 했다.

앞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12월 남북을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선언한 뒤, 북한은 남북을 잇는 경의선·동해선 도로에 지뢰를 심고 철도를 철거하는 작업을 진행해왔다. 또 군사분계선 일대에 방벽을 세우고 철조망을 보강하며 지뢰를 매설하는 작업도 이어왔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군령을 책임지는 총참모부가 그간 진행해온 단절 조치를 종합적·포괄적으로 공식화한 것”이라고 봤다. 북한은 그간 별다른 발표 없이 해당 작업을 해왔다.

총참모부는 “공화국 남쪽 국경 일대에서 일촉즉발의 전쟁 위기가 날로 고조되고 있는 엄중한 사태에 대처해”라며 한·미의 위협을 이번 조치의 이유로 들었다. 한국군의 훈련과 미국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 윤석열 대통령 등의 “북한 정권 종말” 발언도 거론했다.

경향신문

북한 최고인민회의 북한이 지난 7~8일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1차 회의를 열어 헌법 일부 내용을 개정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9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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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참모부 발표, 개헌 후속작” “선 단절 후 개헌 동력 확보”
‘적대적 두 국가’ 법제화는 신중…비공개·유예 두 가지 해석

총참모부는 한반도에 군사적 정세가 첨예하다고 평가하며 “제반 정세하에서 우리 군대가 제1의 적대국, 불변의 주적인 대한민국과 접한 남쪽 국경을 영구적으로 차단, 봉쇄하는 것은 전쟁 억제와 공화국의 안전 수호를 위한 자위적 조치”라고 했다.

총참모부는 이날 오전 9시45분 미군 측에 전화 통지문을 발송했다고 밝혔다. 총참모부는 “남쪽 국경 일대에서 진행되는 요새화 공사와 관련해 오해와 우발적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의도”라고 했다. 북한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 있는 직통 전화기인 일명 ‘핑크폰’으로 미국 주도의 유엔군사령부 측에 공사 사실을 알린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북한이 적대적 두 국가론에 따라 남측은 배제한 채, 미국과 상대하겠다는 점을 명확히 한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은 2023년 4월 이후 판문점 통신선과 동·서해지구 군 통신선을 통한 연락을 끊은 상태다.

북한은 앞으로 물리적 단절 조치를 군사분계선 일대 전반으로 확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군 관계자는 “현재 북한군의 특별한 동향은 식별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총참모부의 이번 발표 배경을 두고 여러 해석이 나온다. 우선 적대적 두 국가론을 반영한 헌법 개정과 연결될 수 있다는 분석이 있다. 북한은 지난 7~8일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1차 회의를 개최해 헌법 일부 내용을 개정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이날 보도했다. 회의에서는 노동 연령과 선거 연령을 수정한 내용의 개헌이 채택됐다.

그러나 김 위원장이 지난 1월 지시한 통일 조항 삭제와 해양 국경선 등 영토·영공·영해 조항 신설 등은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북한이 9일 물리적 단절 조치를 공식화한 점에 비춰 적대적 두 국가 개헌이 이뤄졌을 것이란 시각이 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개헌을 했지만 북한이 공개하지 않은 것일 수 있어 좀 더 지켜봐야 한다”며 “총참모부의 발표가 개헌에 따른 첫 번째 후속 조치일 수 있다”고 짚었다.

반면 최고인민회의에서 헌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은 것이란 분석도 있다. 북한이 물리적 조치를 먼저 진행하고 헌법을 개정하는 역순을 밟고 있는 것이란 얘기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미의 위기 조성을 명분으로 우선 단절 조치를 취함으로써 개헌을 위한 내부 설득력을 확보하고 대내외 여파를 줄인 뒤 헌법을 개정할 수 있다”고 했다. 북한군 총참모부가 이날 ‘대한민국 영토’라는 표현을 썼지만, 자신들에 대해선 ‘공화국 주권행사 영역’이라고 일컬은 점은 헌법에 아직 영토 규정이 담기지 않았음을 보여준다고 홍 위원은 풀이했다.

북한이 개헌을 미루거나 공개하지 않은 건 적대적 두 국가론의 법제화가 불러올 파장을 신중히 검토해 속도를 조절하려는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북한이 미국 대선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는 상황에서 개헌을 통해 남한과 소모전을 벌이는 건 실익이 없다는 판단을 했을 수도 있다. 양무진 교수는 “미국 대선을 앞두고 핵보유국으로서의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는 상황에서 개헌 공개는 남한의 거센 반발을 불러와 이슈가 분산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 듯하다”고 말했다.

정희완 기자 ros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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