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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9 (수)

이번 역은 '우리말역'입니다  [달곰한 우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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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욕설과 외계어가 날뛰는 세상. 두런두런 이야기하듯 곱고 바른 우리말을 알리려 합니다. 우리말 이야기에서 따뜻한 위로를 받는 행복한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한국일보

578돌 한글날인 9일 서울 세종대로 광화문광장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어린이가 훈민정음 해례본을 따라 쓰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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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 조선의 4대 왕 세종의 이름이다. 임금으로 살면서 쌓은 업적을 기려 그가 죽은 다음에 붙인 이름이 세종이다. 이도의 가장 빛나는 덕은 한글을 만든 일이다. “우리나라 말이 중국과 달라 한자와 서로 통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제 뜻을 제대로 전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가 이를 가엾게 여겨 새로 스물여덟 글자를 만드니 모든 사람이 쉽게 익혀 날마다 쓰는 데 편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다.”

이도가 직접 쓴 훈민정음 서문에는 한글을 만든 이유가 잘 나타나 있다. 문장에 군더더기가 없어 명쾌하다. 백성들이 쉽게 글을 익히고 쓰길 바라는 임금의 간절한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가엾게'라는 표현은 뜨겁게 읽힌다. 원문은 ‘어엿비’다. 어엿비를 ‘가엾게’로만 보기엔 뭔가 많이 부족하다. 가엾고 안타깝고 안쓰럽고…. 절대 권력을 가진 왕이 백성을 어엿비 여겨 (눈까지 멀어 가면서) 글자를 만들었다는 것에서 따뜻한 지도자였음을 알 수 있다.

570년이 훌쩍 지난 지금, 세종시는 갈 때마다 편안하다. 세종대왕에서 따온 이름 덕이다. 이곳에선 순우리말로 지은 고운 마을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둘레가 한 아름 넘치는 풍요로운 아름동엔 친구가 살고 있어 자주 간다. 야무지고 탐스럽다는 뜻의 ‘도담’동에 들어서면 이곳 주민들이 잘 살길 바라는 마음이 절로 든다. 비가 온 뒤 맑게 갠 하늘이 그려지는 해밀동, 왠지 마음이 너그러워지는 어진동도 정겹다.

서울에서도 우리말 전철역을 지나칠 때 반갑다. 역 이름에 담긴 이야기도 재미있다. 과천의 선바위역(4호선)은 개천 한가운데 바위가 서 있는 모습과 같아서 붙은 이름이다. 애오개역(5호선)은 고개가 아이처럼 작다는 뜻의 ‘아이고개’ ‘애고개’에서 왔다. 옛날 사대문 안에서 죽은 시체는 한성부가 서소문을 통해 내보냈는데, 아이가 죽으면 이 고개를 넘어 묻게 했다는 데서 생겼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잠실새내역(2호선)의 새내는 ‘새로 난 물길’로, 한강의 작은 물줄기를 뜻한다. 까치울역(7호선)의 까치울은 까치가 많은 마을을 일컫는다. ‘작다’는 뜻의 순우리말 ‘아치’가 까치로 변했다는 설도 있다. 노들역(9호선)은 수양버들이 울창하고 백로가 노닐던 옛 노량진을 ‘노들’이라고 불렀던 데서 유래했다.

이 글은 우리말을 지키려는 노력만 다뤘다. 외래어 한자어 신조어, 일본어 잔재가 마구 날뛰는 공공기관의 공문서 문제, 외국인지 우리나라인지 도통 모를 동네 축제 안내문과 간판 등 어두운 모습은 꽁꽁 숨겼다. 한글날 주간만큼은 이도가 환하게 웃길 바란다.

한국일보

노경아 교열팀장 jsjys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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