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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1 (토)

[유레카] ‘러닝’과 ‘크루’의 잘못된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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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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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 크루’는 달리기인 러닝(running)과, 모임이나 조를 뜻하는 크루(crew)의 합성어다. 함께 모여서 뛰는 일종의 달리기 동호회다. 코로나19 이후 엠제트(MZ) 세대를 중심으로 러닝 크루 열풍이 불고 있다. 함께하는 즐거움을 추구하려는 의도인데, 뜻밖의 부작용도 속출한다. 많게는 수십명이 산책로나 러닝 트랙을 점령하다시피 하는 바람에 혼자 달리거나 조용히 산책을 즐기는 이들을 방해한다. 달리는 도중 함성을 지르고 단체 사진 촬영으로 민폐를 끼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유료 달리기 강습이나 유명 인사가 참여하는 행사를 공공장소에서 개최하기도 한다. 이로 인한 민원에 시달리던 지방자치단체가 결국 러닝 크루 활동을 제한하고 나섰다.



서울 서초구청은 지난 1일부터 러너들에게 인기가 많은 반포종합운동장 러닝 트랙에서 5인 이상 단체 달리기를 제한했다. 5명 이상이 달리려면 각 인원이 2미터 이상의 간격을 두고 달려야 한다. 달리면서 잡담을 나누는 등 다른 러너를 방해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실효성이 있어 보이진 않는다. 간격을 벌리는 대신 더 큰 소리로 떠들면 그만이다. 결국 러너 스스로 예절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 ‘달리기 문화’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일본 문학을 대표하는 무라카미 하루키는 달리는 작가로도 유명하다. 그는 마라톤 풀코스만 30회나 완주했고, 울트라마라톤과 트라이애슬론 경기에도 참여했다. 하루키는 달리기의 이점은 혼자 있는 시간에 있다고 했다. “달리고 있는 동안은 누구와도 얘기하지 않아도 괜찮고, 누구의 얘기도 듣지 않아도 된다. 그저 주위의 풍경을 바라보고, 자기 자신을 응시하면 되는 것이다. 그것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시간이었다.”(‘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그는 “하루 1시간쯤 달리며 나 자신만의 침묵의 시간을 확보한다는 것은, 정신 위생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 작업”이라고 했다.



달리기를 철학의 경지로 끌어올린 책 ‘달리기와 존재하기’의 저자 조지 쉬언 박사도 고독한 달리기를 예찬한다. “함께 뛰는 다른 사람 없이 혼자서 거리를 달릴 때 나는 만족감을 느낀다. 나는 고독을 원한다. 고독에 파묻히는 건 천국에 드는 길이다.” 달리기의 참맛은 혼자 달리는 데 있다. 함께 뛰면 즐거울진 몰라도 달리기의 정수는 느끼지 못한다. ‘러닝’과 ‘크루’는 애초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이춘재 논설위원 c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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