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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1 (토)

'한글 참 멋있다' 붓 잡은 고사리손…광화문 뒤덮은 옥색 두루마기 [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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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8돌 한글날 기념 '제15회 대한민국 광화문 광장 휘호 대회'…외국인도 어린이도 한글 매력에 '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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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8돌 한글날인 9일 오전 10시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 '제15회 대한민국 광화문 광장 휘호대회' 참가자 이태경양(9)이 '한글 참 멋있다'는 문구를 쓴 자신의 작품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최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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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참 멋있다.'

제578돌 한글날인 9일 오전 10시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 벚꽃색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이태경양(9)이 한 손에 붓을 들고 천천히 글자를 써 내려갔다. 이양은 서예·캘리그래피 작가인 할머니와 함께 이날 열린 '제15회 대한민국 광화문 광장 휘호 대회'에 참가했다.

휘호 아래에는 '이태경이 쓰다'라는 문구와 함께 이양의 이름이 새겨진 붉은 낙관이 찍혔다. 이양의 어머니는 "문구는 아이와 할머니가 직접 정했다"며 "대회를 위해 강원 춘천에서 새벽 5시30분에 출발했다"고 말했다. 이양은 등교하는 날에도 일어나지 않을 시간인데 들떠서인지 이날 따라 일찍부터 눈을 떴다고 한다.

한국예술문화원이 주최한 이날 행사에는 총 300명이 참가했다. 참가자들은 고사리손으로 붓을 잡은 어린이부터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까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다. 프랑스·영국·멕시코·케냐·우크라이나·이란·네팔·일본 등 각국에서 온 외국인 참가자도 50명에 달했다.

시작을 알리는 징 소리가 3번 울리자 참가자들은 일제히 붓을 들었다. 조선시대 과거시험 참가자들인양 옥색 두루마기를 걸친 소매가 바쁘게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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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예술문화원이 주최한 이날 행사에는 총 300명이 참가했다. 고사리손으로 붓을 잡은 어린이부터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까지 남녀노소가 자리를 채웠다. 프랑스·영국·멕시코·케냐·우크라이나·이란·네팔·일본 등 각국에서 온 외국인 참가자도 50명에 달했다. 참가자들은 조선시대 과거시험을 연상시키듯 모두 옥색 두루마기를 걸치고 있었다./사진=최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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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온 이사벨씨(48)는 남편과 함께 대회에 참가했다. 한국말은 못 하지만 1년 전부터 한국에 머무르면서 한글 쓰는 법을 배웠다.

그는 "한글은 정말 멋진 글자"라며 "이를 기념하는 날에 뜻깊은 일을 하고 싶어 이번 대회에 참가했다"고 밝혔다. 이사벨씨는 '산 같은 기운으로 바다 같은 마음으로'라는 문구를 한지 위에 적어 내렸다.

영국인 페니헤일씨(42)는 이날 대회를 위해 지난 7일 일본에서 한국을 찾았다. 17년 전 일본으로 이주해 10년 전부터 일본에 있는 한국어학당에서 공부하고 있다.

페니헤일씨 옆에 놓인 주황색 가방에는 한국 아이돌 밴드 이름이 적힌 명찰이 달려 있었다. 그는 "한국 문화와 한글을 너무 좋아한다"며 "한국 방문은 7번째인데 어학당에서 함께 공부하는 일본 친구들도 대회에 같이 참가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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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회 대한민국 광화문 광장 휘호대회'에는 프랑스·영국·멕시코·케냐·우크라이나·이란·네팔·일본 등 각국에서 온 외국인 50명도 참가했다. 프랑스에서 온 이사벨씨(48·왼쪽)와 영국인 페니헤일씨(42·오른쪽)./사진=최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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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단위 참가자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딸 양해윤양(8)과 함께 대회에 나온 정소라씨(38)는 "한글날을 기념하고 싶기도 하고 서예를 배우고 있어 아이와 같이 참가했다"며 "저는 두달, 아이는 한달 전부터 연습했는데 막상 글을 쓰려니 긴장된다"고 말했다.

정씨 옆에 앉은 해윤양은 연습한 종이를 옆에 놓은 채 진중한 표정으로 한 자 한 자 조심스레 썼다.

뜨거운 가을 햇살을 피하기 위해 머리에 모자를 쓰거나 손수건을 덮은 참가자들도 있었다. 자신이 쓴 작품으로 모자를 만들어 쓴 왕은경씨(62)는 "4번째 참가인데 좋은 기운을 받고 싶어서 제가 쓴 글을 머리에 썼다"며 "한글은 독창적인 글자인 동시에 보편적인 글자인 것 같아 한글자씩 쓰다보면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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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정소라씨(38)와 함께 '제15회 대한민국 광화문 광장 휘호대회'에 참가한 양해윤양(8)이 글을 쓰는 모습./사진=최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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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귀와 함께 수묵화로 개성을 뽐내는 이들도 많았다. 황선호군(19)은 '훈민정음'이라는 글자 아래 '한글을 지켜준 분들에게 감사를 전합니다'라는 문구를 넣었다. 글귀 위로는 먹물을 흩뿌렸다.

황군은 "흔히 한글날을 떠올리면 세종대왕을 생각하는데 일제강점기에 우리 글을 지켜주신 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어 직접 문구를 정했다"며 "흩뿌린 먹물은 한글을 지키기 위해 선조들이 흘린 피를 표현한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양천구 목동에서 왔다는 신순자씨(65)는 보랏빛 포도송이를 잎과 함께 그렸다. 신씨는 "포도가 풍년과 다산을 의미한다고 들었다"며 "5년간 꾸준히 연습한 수묵화에 나를 표현하는 글씨체로 문구를 썼는데 한글을 쓰면 차분해지고 기분도 좋아진다"고 밝혔다.

한국예술문화원은 이날 참가자들이 제출한 휘호의 심사를 거쳐 오는 11일 입상자를 발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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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양천구 목동에서 온 신순자씨(65)가 출품할 작품을 손에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최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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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은 기자 choiji@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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